분갈이 / 박헬레나

 

이사 갈 날을 앞두고 화분을 선별했다. 버릴 것과 새 거처로 가져갈 것을 골라 흙 만지기 좋은 마당에서 분갈이를 할 참이었다. 화초 죽이기를 밥 먹듯 하는 내 손끝에서 명이 길어 살아남은 것들이 이젠 생과 사의 심판대에 놓였다.

모든 선택에는 그 물건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기준이 된다. '귀한 것', '값나가는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매기는 보편적인 잣대다. 그러나 사람의 판단 기준으로 생명체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것 같이 무모한 일이 있을까. 나는 나의 푸대접,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오래 살아남아 준 끈기와 생명력에 점수를 주었다. 늘어서 있는 화분들 중에서 사또 기생 점고하듯 내 기준과 취향에 맞는 걸 몇 개 골랐다. 선택받지 못한 생명들에 대한 연민과 일말의 가책을 삼키며 내 손가락 끝에 점 찍힌 소수에게 정성을 좀 기울여 볼 요량이다.

먼저 관음죽 화분을 옆으로 눕혔다. 비좁은 공간에서 뿌리가 얼마나 세(勢)를 불렸는지 힘껏 당겨도 꿈쩍을 안 했다. 화분 밑동을 툭툭 치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어 나무를 겨우 빼냈다. 흙과 뿌리가 얽힌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왔다. 큰 뿌리, 잔뿌리, 실뿌리까지 서로 엉켜 손톱도 들어가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이것이 숨인들 제대로 쉬었겠는가. 환경이 척박할수록 생명력이 강해지는 것이 살아있는 것들의 속성이다. 뿌리가 수세미 뭉치가 된 것은 제한된 공간에서 목마름을 견디며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었지 싶다.

칼로 치고 가위로 자르며 대부분의 실뿌리를 사정없이 쳐냈다. 모양새가 참한 놈을 골라 가지치기도 했다. 빈 화분에 새 흙을 넣고 실한 뿌리가 달린 아담한 줄기 하나를 옮겨 심었다. 다이어트한 몸, 얼마나 홀가분할까. 알맞은 공간에 마음껏 다리를 뻗고 앉은 양이 참 여유로워 보인다.

적절한 시기에 분갈이를 해 주지 않으면 식물이 묵은 흙에서 제대로 생장하기 어렵다. 농부가 윤작(輪作)을 하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사람의 삶이라고 그에 다르랴. 최근에 나는 삼대를 어울렀던 넓은 집을 처분하고 두 사람 들기에 마침한 새 거처를 마련했다. 화초 분갈이하듯 나 자신의 삶도 분갈이를 하려는 것이었다.

읽지도 않으며 쌓아놓은 책, 유행이 지나 걸려있는 옷, 긴히 필요치도 않으면서 아까워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구석구석 공간을 채우고 있다. 화분 안에 실뿌리 엉키듯 나를 얽어매고 있는 욕망의 뿌리들. 윗대 어른들이 쓰던 세간, 분가한 아이들이 남긴 물건, 수십 년 한자리에 머물며 품고 있던 물건들을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추려냈다.

잘라내고 정리하는 일, 간단치 않다. 버릴까 말까 숱한 갈등이 따른다. 물건 하나하나에도 연(緣)이 된 내력이 있고 쌓인 정과 깃든 추억이 있다. 그것들이 내 마음을 움켜잡을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냉혈한이 되어야 한다.

버리기에 가장 망설여지는 것이 책이다. 큰맘 먹고 《세계 대백과 사전》열두 권과 《세계문학전집》백 권을 동네 도서관에 기증하려다 거절당했다. 오 년 이내 발간된 출판물이 아니면 받지 않는다고. 손에 쥐고 다니는 디지털 시대의 만능기기 스마트폰이 있는데 부피 큰 종이책이 무슨 소용이랴. 안방 살림 자개장은 그냥 가져가래도 물물교환센터에서 손사래를 친다. 우리가 물자 풍부한 부국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기회였다. 내가 쓰지 않을 물건은 필요한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 남은 것은 고물상이 가져가기도 했지만, 버리고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수월찮았다.

엉킨 나무뿌리를 과감하게 쳐내듯 오래 손때 묻은 물건에 내 집착과 욕망을 함께 실어 잘라내고 떠나보냈다. 섭섭함보다는 홀가분함이 더 크다. 분갈이의 본질이 화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자양분인 흙을 바꾸는 작업이라면 나의 분갈이는 새 거처에 어떤 것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최소한의 소유로 최소의 소비를 하는 작고 가벼운 삶을 지향하고 있으니 값진 것이나 귀한 것일 필요는 없다.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챙기면 된다. 그리고 여백, 빈 공간의 여유를 만끽할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필요 이상의 뿌리는 불리지 않아야 한다. 뿌리는 곧 욕망이므로.

현관 앞에 놓인 분갈이한 화초, 예전보다 더 때깔이 좋아 보인다. 생기가 느껴진다. 이제 새 거처로 옮겨가면 나의 분갈이도 완성이다. 단순한 삶, 가볍고 여유로운 노년, 오래 품어온 소망이다. 나의 분갈이,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새 흙을 만난 화초처럼 나도 덩달아 심신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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