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담장이 되다 / 김원순

 

 

수백의 덩굴 바늘이 일제히 초록실을 꿰었다. 검버섯 핀 담벼락을 수틀 삼아 밤낮으로 수를 놓는다. 웅크렸던 담벼락이 그제야 가슴을 편다. 가붓하다.

땀땀마다 곡진히 수놓은 ‘공생, 우정’이란 꽃말의 잎들. 미풍에도 하르르 파문을 지으며 초록으로 화답한다. 낱낱의 덩굴손이 식은 열정에 불씨를 댕기는 일촉즉발의 도화선이다.

검버섯 핀 담벼락에 생기가 돌고, 을씨년스런 골목이 갓밝이처럼 환하다. 한 땀 한 땀 진심盡心하더니 솟구치는 열정에 풍구질한 걸까. 무덕무덕 잎을 매단 기골이 장대한 장골 같다. 갖은 풍상을 견뎌낸 담벼락에게 내린 포상이지 싶다.

잉걸불 같은 가슴이 활활 타오른다. 젖버듬한 삶의 담벼락이, 골목이 환해지려는 걸까. 당찬 덩굴잎은 우주를 번쩍 들어 올리고 무소불위의 흡착근도 보란 듯이 담을 넘는다. 나는 습관, 관습 따위에 함몰된 나를 혁명하려고 반란을 일으킨다. ‘나’라는 암담한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무한 신뢰하는 두꺼비 혀, 거미의 방적돌기, 달팽이 더듬이를 가진 덩굴손의 의중을 헤아린다. 집과 골목의 경계에 서서 안위를 살피는 담벼락의 심지가 미더웠나. 비바람을 맨살로 받아내는 심덕이 갸륵했나. 하찮은 담쟁이에게 선뜻 등을 내주는 배려와 우정에 뭉클했지 싶다. 활기찬 담벼락이 집과 골목을 지키는 호위무사로 나섰다. 쓸쓸하고 헛헛한 골목이 아니다. 마냥 서성이고 싶은 창연한 골목이다.

호위무사가 없던 나는 두꺼비, 거미, 달팽이집을 기웃거린다. 검은 담벼락에 전생을 써놓은 담쟁이의 육필도 읽었지만 여전히 난해하다. 담쟁이처럼 몸을 낮춰서 더 낮은 곳으로 스며들 때 젖버듬한 생에 화색이 돈다. 진정한 호위무사는 남의 힘에 기대지 않는 자존과 자긍을 가진 자신이다. 담쟁이보다 낮게 엎드린다.

성벽 같은 옆집 바위담, 꽃으로 단장한 앞집 하얀 철제울타리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되겠다. 검버섯을 떼지 않아도, 벌어지고 어긋났다고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가년스럽거나 몰골스러워도 검은 담벼락처럼 환희의 순간이 찾아오는 법.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절망과 좌절의 벽을 뛰어넘는다. 담쟁이보다 더 담쟁이인 이들의 들숨 날숨이 타는 노을빛이다.

덩굴 중에서 제일 평담하고 돌올한 것이 담쟁이다. 벌어지고 어긋난 담벼락을 등나무나 칡덩굴이 메우랴, 매화나 난초가 제 향기로 위무하랴. 담벼락의 안위는 절망과 좌절의 벽을 넘어본 자만이 처방, 치유할 수 있다. 세상 도처에 숨은 화두話頭를 풀려면, 육신 곳곳에 담쟁이를 심어보면 안다.

괴괴한 골목에 가로등이 세워졌다. 외지거나 막다른 골목에도 빛이 고이면 맥박이 뛰고 힘이 생긴다. 별안간 삶의 외줄에서 떨어졌을 때 바닥을 차고 오를 수 있는 것은, 담쟁이처럼 손을 잡아주는 가족이 있어서다. 골목엔 가로등, 가정엔 가족, 담벼락엔 담쟁이가 도도히 흐르는 맥박이고 힘이다. 돌이 쌓여서 돌담이, 골목이 모여서 마을이 생기듯이.

벌어지고 어긋난 담벼락은 이제 아니다. 덩굴 바늘로 총총 꿰맸으니 남루한 담벼락이라 누가 말하랴. 의지에 따라 생멸하는 맥박과 힘은 전생全生을 피고 지게 하는 원동력이다. 담쟁이의 연금술과 분장술, 최면술에 전율이 인다.

담쟁이덩굴 사이로 고도가 키운 풍란향이 난다. 해풍과 땡볕의 체취로 빚은 향내. 회한을 서릊는 자리에 스며들면 좋을 회심灰心의 향내다. 나는 서둘러 꽃을 피우라고 흡착근을 은근히 재촉한다. 쉿, 연록의 꽃송이가 잎새 뒤에 숨어 있네. 고사목 같은 담벼락이 드디어 꽃을 피웠다.

절벽 위의 소나무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담벼락이다. 가을걷이 내도록 밤잠을 설쳤던 탈곡기 소리, 대여섯 번이나 밝힌 조등 아래 쏟던 통곡 소리, 칠 남매 제 둥지 찾아 떠나는 나래깃소리…. 휑한 뒷마당에 흘린 땀과 눈물은 아직도 뜨거운 간수 맛이다. 고까운 새경에 강주정 부리던 머슴의 막걸리 사발에 옆구리를 맞은 날이 차라리 그리운지 먼 산 바라기한다. 마당과 골목, 난장은 시끌벅적해야 사는 재미와 맛이 난다. 마당의 품만큼 애환 서린 담벼락에 기대어 사라진 소리를 맡는다. 들큼하다.

삼백예순날 활짝 귀를 연 담벼락이다. 소리, 소문을 제 키 너머로 발설하지 않는 신실하고 충직한 지기다. 굴왕신같다고 소임을 팽개치거나 태만한 적이 없다. 빈부, 미추, 대소유무를 구분 짓거나 비교하지도 않는다.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담벼락은, 한생전 자식들의 담벼락으로 살다 가신 부모님의 분신이며 환영이다. 볼 때마다 문안 인사드린다.

벌어지고 어긋난 담벼락을 단장하고 위무해주려고 선산 소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담벼락에 심었다. 의기충천한 덩굴손이 서너 해를 뻗더니 기어이 담벼락을 점령했다. 탁월한 전략, 전술도 없다. 벌어지고 어긋난 곳을 나 대신 품고 다독이는 담쟁이에겐 모성애를, 선뜻 등을 내주는 담벼락에겐 부성애와 경외심마저 느낀다. 담쟁이와 담벼락은 영원한 삶의 동반자, 동병상련의 정 때문에 별리가 없다. 둘만의 연정과 공생, 우정이 더없이 부럽다.

단내를 털어낸 담벼락이 휴식을 즐기는 동안에 덩굴손은 아름차게 초록 벽화를 그린다. 차마 육필로 쓰지 못한 얘기를 들숨 날숨으로 색칠한다. 벽화 사이로 O. 헨리의 ‘마지막 잎새’ 화가 베어먼의 초췌한 모습이 얼비친다.

위층의 젊은 화가 존시에게 삶의 희망을 주려고 밤새워 그린 붉은 담쟁이 잎 한 장! 베어먼의 목숨과 맞바꾼 고절苦節의 잎이다. 잎을 달아주기는커녕 달린 잎도 떼가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손가락질을 내게로 돌리니, 관계의 매듭이 스르르 풀린다. 세상살이의 매듭은 제 마음이 묶은 것. 담쟁이처럼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창고 옆에 드러누운 사다리를 바라본다. 한 생명을 살리려고 진눈깨비를 맞으며 오르내린 사다리보다 견고하지만, 소임을 잊은 채 하늘만 쳐다본다. 살은 자와 대신 죽은 자 사이에 놓인 사다리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면 누운 저 사다리는 어디로 가는 계단일까. 벌떡 일으켜 담벼락에 세운다. 담쟁이의 맥박이 사다리를 타고 흐른다. 어디라도 당장 오를 기세다. 누운 사다리는 생을 접은 쇳덩이에 불과하다. 사람도 그렇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사느라 담쟁이 닮은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고 핑계만 댔다. 그러나 담쟁이는 손도 잡아주고 칡덩굴처럼 생목숨을 옥죄지 않았는데도 겸손하다. 벌어진 담벼락의 때는 안 놓치면서 생의 때는 번번이 놓치느냐고 내게 일갈할 만한데 시종 묵연하다. 담대, 담박, 담연한 담쟁이가 나를 한없이 무색하게 한다.

담을 넘는 담쟁이를 보면, 혼삿날을 앞두고 호롱불 밑에서 수를 놓던 J 언니가 울컥, 떠오른다. 흡착근 닮은 오기와 독기로 절망의 벽을 잘도 뛰어넘던 언니다. 못다 이룬 꿈을 담쟁이잎으로 수놓았던 것일까. 빽빽한 담쟁이 잎이 언니의 애화哀話인 듯 아리다.

넌출대는 잎들이 언니의 전생을 비장하게 증언한다. 열정과 의지의 잎을 피우려고 인내, 끈기의 뿌리를 혹독하게 담금질했다고. 진물 꾸덕한 가슴 벌어지지 않게 희망과 도전의 덩굴로 칭칭 동여맸다고. 담쟁이로 태어나 담쟁이로 살았기에 세상을 품어 안을 수 있었다고.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남은 생을 수놓고 있을까.

수틀에 끼운 천이 방석인지 베갯잇인지 잘 모르겠다. 목단도 매화도 아닌 담쟁이를 수놓던 언니의 심중은 더욱 모르겠다. 일찍이 여읜 아버지 빈자리를 메우려면 담쟁이의 억척과 투지가 절실했던 것일까. 지금쯤 세상에 버려진 담벼락을 위무하고 단장해서 세상 바닥에 우뚝 세워주는 담장이가 되었지 싶다. 담쟁이를 담장이로 만들어주는 이는 세월밖에 없다. 누린 만큼 대가를 치르고, 부족한 만큼 보상받는 세월의 도량에 코끝이 시큰하다.

추림秋霖에 담쟁이덩굴이 한층 초롱하다. 발바닥이 데일듯한 여름을 건너온 흡착근이 오기와 지기志氣의 심줄을 잔뜩 세운다. 어느 길로 가야 부귀영화를 누리는지, 어떤 손을 잡아야 권세를 움켜쥐는지 머리를 굴릴 줄 모른다. 지나온 길 돌아보지 않고 갈 길 머뭇대지도 않는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기어갈 뿐이다. 기어간 발자국마다 단내가 진동한다.

무쇠처럼 달구던 여름, 얼음 박던 겨울은 담쟁이의 발바닥을 담금질하는 절호의 계절이다. 절망과 좌절, 체념과 절명의 벽도 훌쩍 뛰어넘는 생존방식을 흡착근마다 적어 놓았다. 등을 내주어도 타고 오를 줄 모르는 무시근한 담쟁이들이 익혀야 할 경구다. 저글링하듯 사는 세상, 균형과 중심을 잡으려면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 부귀영화 목단도 정절의 매화도 아닌 담쟁이를 수놓던 언니의 심중을 이제야 알겠다.

된 겨울이 온다고 막새바람이 기별했나. 붉은 실로 바꿔 꿴 덩굴 바늘이 불뱀처럼 기어오른다. 검은 담벼락이 순식간 불길에 휩싸였다. 황홀한 불꽃, 꽃보다 찬란한 담쟁이다. 밤새도록 장명등을 켜고 골목의 안녕과 번성을 기원한다. 수직벽을 수평지게 평정하는 흡착근의 심지가 세상을 끌어안는 구심력이지 싶다.

절벽과 구멍을 만나도 절망하지 않는, 바위너설 고주박이 길을 막아도 좌절하지 않는, 심약한 것들에게 등을 내주고 보폭이 빠른 덩굴을 시기하고 비교하지 않는 그런 담쟁이, 담벼락이 되고 싶다. 고색창연하게 담을 쌓는 담장이는 죽어도 아니 될 것 같아 꿈을 접는다.

내 삶의 담벼락이 초록으로 물드는 날, 담쟁이꽃으로 낙관을 찍겠다. 뒷산 솔숲 정연한 바위가 붉은 담쟁이덩굴로 화룡점정을 찍듯이. 생의 마침표는 까만 담쟁이 씨앗이다.

네 살배기 담쟁이가 서른 살 먹은 담벼락을 업고 막새바람을 따라간다. 황혼을 수놓던 나도 집착의 바늘을 놓고 뒤뚱뒤뚱 뒤따른다. 씨앗 한 톨 품지 못하는 담벼락인데 까만 씨앗을 주저리 매달고 일찍이 봄마중 나선다.

잘 익은 생은 저토록 눈부신 깜장색. 덩굴손이 냉큼 내 팔짱을 낀다. 아, 고목생화枯木生花인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