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그리움대로 / 한복용
중학교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새로 부임해온 국어담당 남자 선생으로, 키가 작았고 몸이 통통했으며 얼굴이 보통 사람들보다 큰 편이었다. 쌍꺼풀 진 눈과 중저음의 안정된 목소리는 부정적이었던 첫인상과 달리 무척이나 매력 있어 보였다.
학생은 이름이 뭐지? 선생님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내 이름을 대자 대뜸 우리 교실 환경미화를 맡아보라고 했다.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지만 대답과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다.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거북하고 떨리고 설레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줄반장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에게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우리 반 환경미화부장을 맡긴 거였다.
친한 친구 몇 명과 환경미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자진하여 나와 같은 팀이 되었다. 선생님은 4월에 있을 환경미화 심사에 좋은 성적을 거두라고 전달하고는 월요일 아침조회를 마쳤다.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몇 명씩 팀을 짜서 다른 반과 다른 학교 교실을 둘러보기로 했다. 태안읍내에 학교라고 해봤자 태안여상과 태안중고등학교 그리고 태안여중이 전부였지만 환경미화를 핑계로 남학교도 가보고 여상과 고등학교에도 가볼 참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기꺼이 선생님 자전거를 내주셨다. 문구점이나 서점 등 먼 곳을 갈 때 언제든 이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간신히 직진 운전만 할 수 있었던 나는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 자전거를 끌고 학교 뒤 작은 운동장으로 올라갔다. 다리가 짧아 페달 밟기가 조금 불편했지만 탈만은 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돌다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도 가보고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한 손을 놓고 페달을 밟았다. 잠시 뒤뚱, 하는가 싶었지만 금방 중심을 잡았다. 이번에는 양손을 다 놓아보았다. 마치 날개라도 단 듯 씽씽 나아갔다.
“잘 타는데? 그런데 손 놓고 타는 건 좀 위험하다.”
선생님이었다.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셨는지 박수까지 쳐주며 응원해주셨다.
친구들과 한 달여를 주말까지 쉬지 않고 교실 꾸미기에 집중했다. 선생님도 우리들 간식을 챙겨주며 학교에 머무르셨다. 교실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 보이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와아’ 소리 지르며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하늘이 새까매질 때까지 한참동안을 서쪽 하늘에 붙들려 있던 우리들. 그런 우리들을 마냥 바라보고 계셨던 선생님.
그해 환경미화 심사에서 1등은 놓쳤지만 선생님과의 시간은 그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팀을 이끌고 계획한 바대로 우리 교실을 멋있게 꾸며줬다며 선생님은 나를 크게 칭찬해주셨다. 나는 뭔가 해낸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뛰어 준 한복용. 너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며 “함께 잘 따라 움직여준 팀원들도 수고 많았다” 칭찬하셨다. 하지만 오로지 1등을 목표로 숨차게 달렸던 우리는 선생님의 그런 칭찬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저 위로의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눈치를 채셨던 것일까. 선생님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1등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자신이 정해 놓은 목표에 어떻게 도달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팀원들과 갈등 없이 꾸려간 시간이, 그 과정이 더 중요한 거라고, 그것이 우승을 한 거나 다름없는 거라고 큰 박수를 쳐주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는 나를 자기중심적 인간이라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생각하기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맞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것도 옳다는 말이다. 그 확신은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심어주셨다. 작은 일 하나도 ‘그건 아니지’하고 제지하기보다는 ‘네가 생각한 대로 해봐. 길은 여러 개야.’라며 도전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고 기다려 준 선생님이 계셨기에 나는 나의 직관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어떤 일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런 나를 믿은 때문이었다. 실패를 해도 비관하지 않고 오래 쓰러져있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야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걸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다.
그 시절 그때, 어둑해지도록 자전거를 타던 나를 지켜보신 선생님은 “너는 뭐를 해도 분명히 해낼 애구나.”하시며 믿음을 주셨다. 환경미화 준비를 하는 과정에 항상 우리 곁에 계셨고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참견은 하지 않으며 너희 생각대로 해보라고 자신감을 주셨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수업시간에도 나만 본다며 놀렸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혼란스러웠다. 기분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사실이건 아니건 선생님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선생님 자전거를 빌려 친구를 태우고 외곽도로를 달리다가 마주오던 차를 피하면서 자전거를 박살내고 친구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일 때문이 아니라도 더는 선생님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선생님이 부르면 대답을 피했고 수업시간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렇게 철부지였던 나의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어지럽게 지나갔다.
친구들의 놀림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사라졌다. 가끔 한 친구가 “그때 선생님이 네게 잘해주긴 했어”하면 가슴이 뜨끔해지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부러 선생님을 지우려 한 것이 아니었는데, 선생님은 내 기억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가끔씩 자전거를 보면 선생님 생각이 나곤 한다.
선생님이 그립다. 십년 전인가, 선생님 찾기 프로젝트를 어느 인터넷사이트에선가 한 적이 있다. 나는 충남교육청으로 들어가 선생님의 함자를 한 자씩 적었다. 하지만 선생님을 찾을 수 없었다. 본인이 신상을 공개할 경우에만 가능했다.
선생님을 한번은 만나 뵙고 싶다. 내가 망가트린 자전거도 사드리고 싶고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으로 모시고 가 식사도 대접해드리고 싶다. 가능하기는 하려나. 그리움만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