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4호에 실린 글

 

 

 

 

 

꽃 진 자리 두 개의 무덤

공순해

 

  참외를 깎으려면 늘 떠오르는 후배가 있다. 무려 50여 년 전에 헤어졌건만. 그 애는 우리 일행이 해인사 여행하고 있을 때 뒤미처 거기에 왔다. 출가하려 한다고. 말하자면 우리는 그 애가 속세에서 만난 마지막 사람들이었던 셈. 거기서 며칠 지낸 뒤 그 애는 비구니의 절 석남사로 떠났다. 세상이 왜 공평하지 않은가, 이유를 알고 싶어서란다.
  그 애를 한 번 더 만난 건 오대산 적멸보궁에 간 길에서였다. 하안거를 위해 그 근처 절에 제 스승과 머물고 있었다. 세상이 왜 불공평한지 이유를 알아냈을까. 평생의 업이 될지도 모르는 일. 그 애 얼굴엔 평안과 비구니가 경험하는 노동의 피곤이 살짝 갈마들었다. 제 스승과 우리 앞에 참외를 깎아 내놓는 모습에 영혼의 고요가 느껴졌다. 서걱 씹히는 참외의 식감 속에 궁금함을 꿀꺽 삼켰다. 그 후로 그저 소문만 들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 공부의 도를 잘 이루어가고 있다고.
  그 애의 출가가 지금까지 내 안에 납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이유는 사실 나조차 그게 궁금했기 때문이다. 왜 공평하지 않은지 예민하게 따져 볼 여유 없이 뉴욕에서 23년, 시애틀에서 15년의 객지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내 안에서 이따금 살아나는 질문을 거둘 수는 없었다. 가령 「아모스」 5장 24절, ‘정의를 강물처럼 공의를 시냇물처럼 흐르게 하라’,를 읽다 보면 안으로 울컥 흐르는 눈물을 저절로 삼키게 된다. 바람에 우는 문풍지처럼 왜 이 문장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까.
  이유는 없다. 그저 내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 받은 본질이 그것 때문이 아닐지. 굳이 따져 보자면 어린 시절의 경험 탓일지도 모른다.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나왔을 때 오빠들은 뭘 했기에 내가 그 배급을 받으러 갔는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동회에 갔으나 초등학생인 내겐 차례가 오지 않았다. 힘세고 덩치 큰 어른들 사이에서 온종일 밀리며 울분을 삼키며 밀가루 한 포대 받기까지 세상은 힘센 사람의 자리밖에 없다는 걸 톡톡히 알게 됐다. 공평이란 무엇일까. 학생 혁명 과 군사 혁명을 거치며 사회는 그래도 줄 설 줄 아는 사회로 변모해 갔고, 줄 서기 할 때마다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고 감동 비슷한 걸 느끼곤 했다.
  그간 이런 연유로 내 글 속에 공평에 관한 피력이 많았나 보다. 최근 내가 펴낸 책을 받은, 한국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유와 평등, 이 중에 자신은 자유를 선택할 것이라고. 평등은 마르크스 이후에 생긴 현대 개념이며 자유는 근원적이라고. 뭐, 동의하긴 한다.
  하지만 근원적인 평등 개념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구약의 「 출애굽기 」 부터다.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는 뒤이어 바로 11계명쯤에 해당하는 순서로 종에 관한 율법을 주셨다. 종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공평하게 적용된다고. 신약의 예수님 제자들은 가르침에 따라 물자를 공용했다. 물자 공용 사회, 신약의 에덴이 아니었을지. 이 이상 사회는 사재(私財) 욕망을 드러낸 한 인간으로 해서 다시 깨졌다. 욕망의 존재인 한 인간은 평등 상태, 즉 에덴 상태를 지속하기 어렵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셨으나 인간은 걸을 수 없다. 언제나 욕망의 파도가 일어 수면을 뒤집으므로 그 위를 걸을 수 없다. 착지가 안 되기에 보행이 불가능하다.
  자유로 말하면 이는 에덴 시절부터 받은 천부(天賦)다. 자유를 누릴 것인가, 반납하고 욕망을 선택할 것인가, 인간의 대표 하와는 욕망의 존재 선조답게 선악과를 선택했다. 이걸 그림으로 그려 보면 천부적으로 받은 자유가 수직을 이루고, 인간이 구현해야 하는 공평이 수평을 이루게 된다 . 두 막대기, 이 이분법을 없애려 예수님이 오셨다. 십자가 가운데 못 박힐 수밖에 없는 분이셨다.
  하기에 자유와 평등은 둘로 나눌 수 없다. 인간의 기본권, 둘이며 하나인 기본권이기에. 인간은 자유와 평등 두 날개로 나는 새와 같다. 욕망으로 젖은 날개를 균형 잡으려 애쓰는 고단한 존재다.
  부득불 하나를 선택할 일이 생기면 전쟁이 일어난다. 우리는 2차 대전 이후 개편된 세계 질서를 알고 있다. 자유와 공산(=평등). 그러나 이상 사회로 생각했던 공산권은 무너지고 지금 남은 건 불쾌한 독재뿐이다. 더욱이 한국은 2차 대전 연장선에서 한 번 더 전쟁을 경험했다.
  한국 전쟁 동안 자유를 거세당했던 존재의 부조리를 선명하게 드러낸 문학 작품엔 장용학의 『<요한 시집>』이 있다. 예수가 오심을 알리기 위해 태어나 은쟁반 위의 제물이 됐던 요한처럼 자유를 그리워하고 추구하던 토끼는 실명하고 말았다. 토끼가 실명의 고통 속에 죽고 그 죽은 자리에 버섯이 피어났다. 다른 짐승들은 그 버섯을 자유의 버섯이라 불렀고, 그 버섯에게 절 한 번 하고 나면 왠지 마음이 후련해지곤 했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 큰 충격이었다. 내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금에 와 생각하니 좀 아쉬운 점도 있다. 자유만 침해당한 게 아니라 평등도 깨졌는데 장용학은 왜 이 점에 대해 모호할까. 그도 자유와 평등을 이분화한 것일까. 하긴 그가 이 작품을 쓴 동기가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서였다니… 이제 나이 먹은 내 생각은 짐승들이 찾아와 절한 무덤이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여야 맞지 않을까 이다. 섬, 빈민굴, 해안선, 철조망 등으로 상황의 한계를 설정한 장용학은 극복해야 할 철조망에 목매 죽은 누혜로 인간의 비극, 즉 비인(非人) 탄생을 조명했다. 가난의 한계는 자유의 문제만이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도 있건만. 그러니 자유와 평등, 두 개의 무덤이 설정돼야 인간의 문제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을지. 인간이란 꽃이 지고 드러난 자리에 흔적처럼 남을 두 개의 무덤.
  그동안 참외를 대하면 후배가 떠오르곤 했는데, 이젠 독후감을 보내준 친구도 떠오를 듯하다. 그러면 달큰한 참외 맛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레고 같이 딱딱하게 변질되는 건 아닐지. 하지만 참외가 제 본질인 달큰한 맛을 잃을 리 없고 후배도 친구도 그리운 존재이니 그리움이 가실 리 없을 듯싶다. 자유와 평등을 간섭이나 억압 없이 공기처럼 호흡하는 상태, 에덴이 영원성을 갖기에 그리움의 대상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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