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 / 정목일

 

 

하루의 기분을 좋게 하는 데는 목욕, 한 달의 기분을 좋게 하는 데는 이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에게 이 말은 마음의 짐이며 부담이다.

식구들로부터 이발 좀 하라는 채근을 받고서야 비로소 이발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도 시간이 있고 기분이 내켜야만 이발소에 가게 된다.

소요 시간만도 두 시간 가량 드니, 무작정 이발소에 갈 수도 없다. 시간이 아깝거니와 ‘면도’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싫어서 한동안 미장원을 이용하기도 했다. 여자들 틈에 끼어 미용사의 손에 째까째까 머리카락을 잘리는 것이 편안하지는 않았으나, 30분 정도로 간단히 끝낼 수가 있어 좋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미장원 출입도 마땅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의 온갖 잡담을 들어야 하고 흘깃흘깃 훔쳐보는 시선을 받기도 싫었다. 어쨌거나 이발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한 달 보름 간격으로 직장 부근의 이용원에 간다.

윗옷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의자에 앉는다. 앞쪽 거울에 타인 같은 낯익은 얼굴을 대하기가 싫어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미적(美的) 환상을 펼쳐보던 나이는 이미 지나 버린 것이다.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서 떠올리는 것은 좋은 기분이 아니다. 이발이란 자신을 타인에게 천연덕스럽게 맡기는 행위이다. 남자가 윗도리를 벗고 넥타이를 풀어버린 것은 긴장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발사는 흰 가운을 걸치게 하고서 이발을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머리카락만큼 민감한 부분도 없다. 정원사가 전정가위로 나뭇가지를 자르듯 나의 사유가 한 웅큼씩 잘려 나간다. 퇴색된 생각들이 째각째각 잘려간다. 이렇게 깎아나가면 나의 과거까지 몽당 잘려 나가는 것이 아닐까.

눈을 감고 있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이발이 끝나면 다음 차례는 면도다. 앉았던 의자를 뒤로 젖혀 편안히 눕는다. 가위를 든 이발사가 물러가고 칼을 든 면도사에게 맡겨진다.

칼 아래에 누워서 편안함을 느끼니 모를 일이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가장 날카로운 칼날로 가장 부드럽게 사각사각 수염을 깎아낸다. 그 다음엔 콜드크림을 묻혀 더 부드럽게 섬세하게 솜털을 깎아낸다. 칼끝에 미세음을 내며 쓰러지는 솜털, 손가락의 감촉이 얼굴 위로 스쳐간다. 얼굴 전체가 이렇게 넓을 줄 몰랐다.

불씨를 가다듬어 공들여 닦고 인두로 옷깃의 섬세하고 고운 선을 잘려내 듯 날카로움만이 부드러움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긴장이 풀어지고 봄날처럼 아지랑이가 아물거린다. 졸음이 오는 듯 하지만 잠에 빠지진 않는다. 면도날은 비단 자락처럼 지나간다. 편안하지만 식민통치 속처럼 꼼짝도 할 수 없다. 반항은 커녕 아기처럼 안온에 길들여져 휴식에 빠진다. 면도사는 칼을 들고서 음모와 배반의 생각들을 싹둑싹둑 잘라 나간다. 눈을 감고 평화를 받아들인다. 편안하다. 실핏줄까지 아득히 흘러가는 의식, 맡겨두니 아득한 고요…. 칼 아래서 나는 안온하기만 하다.

면도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움직이지 마라. 잠잠히 있기만 하면 달콤하게 해줄 테다. 칼을 들고서 솜털의 뿌리 밑까지 눕히면서 부드럽게 부드럽게….이렇게 속절없이 길들여져서 안 되는데, 나른해서는 안 되는데…. 눈은 감고 있지만 의식은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콧구멍의 코털도 몇 낱 부서져 내린다.

다음은 귀다. 간질간질 하면서도 짜릿짜릿하다. 갑자기 신경이 곤두선다. 자꾸만 깊게 들어오는 공포, 찔리우고 말 것 같은 공포 속에도 점점 귀후비개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즐긴다. 한계선이 어딘지 알 수가 없어 아슬아슬하다. 팽팽한 긴장의 줄다리기…. 귓속을 후비며 곡괭이로 신경을 파헤치듯 소리의 긴 동굴로 들어오고 있다. 누가 묻혀 있는 내 소리 감각의 비밀들을 캐내려 하는가.

면도사는 안마를 시작한다. 관절을 주물러 경직된 의식의 고리들을 이완시킨다. 좀 부드럽게 했으면 좋으련만, 손마디 관절에서 뚝뚝 소리를 요령껏 차례대로 내면서 그것이 숙달된 솜씨나 되는 것처럼 해대는 것이 곱지 않다. 온몸의 관절과 신경이 풀어져서 나른해진다. 죽음과 평화는 동전의 안과 밖처럼 양면에 위치해 있다. 날카로움 속에 부드러움이 흐르고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 속에 평화가 숨쉬고 평화 속에 죽음이 웅크리고 있다.

면도사는 지배자처럼 나를 다스리고 나는 목숨을 맡겨놓고 복종하고 있다. 칼 아래서 편안함을 느낀다. 부드러움 밑엔 피가 있다. 항거하면 피를 흘릴 지도 모른다.

삶이란 이렇게 편안함에 나태함에 부드러움에 공포에 길들여 가는 것일까. 꼼짝없이 관행의 덫에 걸려서…. 완전무결하게 피동적으로…. 못이기는 체 편안함을 즐기면서…. 지금의 삶의 환경을 박차고 모험을 걸긴 싫은 게 아닌가. 이나마 맞아들인 평온을 깨뜨리기 싫어 안주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나는 번데기를 벗어버리고 혁명을 꿈꾸고 싶다. 이발을 하고 나면 나는 항상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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