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속으로 난 길

 

                               정채봉

 

  내 방의 반닫이 위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놓여 있다. 수석 수집가도 아닌 내가 보고 있는 이 돌멩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늘도 아무에게나 밟히고 있을 그런 돌멩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내가 이 돌멩이를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두고 있는 것은 이 돌멩이에 우리 고향으로 잦아든 노령산맥이 곧은 뼈로 질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햇김 같은 동심의 순결이 묻어 있는 고향의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 돌멩이를 주워 가지고 오던 날이 떠오른다.

  직장 일로 한 달에 사나흘씩은 꼭꼭 들러야하는 인쇄처가 서울역을 거쳐 가야하는 길목에 있다. 건너가는 육교가 역사 바깥에 있기도 한데 나는 열차를 타고 어디라도 갈 것처럼 유유히 역 구내로 들어가곤 한다. 그럴라치면 몇 시 몇 분 출발 어디 행 무슨 호가 개찰을 시작하였다느니, 어디 행 무슨 호가 지금 곧 발차한다느니 하는 안내 방송이 귀를 온통 차지하면서 '그 내음'도 훅 코에 끼쳐든다.

  내가 말하는 그 내음이란 많은 사람들이 들고나는 대합실의 독특한 내음을 말한다. 내가 사실 그냥 지나쳐도 좋을 여기를 굳이 들르곤 하는 것은 고리타분하다고 해야 할 이 유쾌하지 못한 내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내음을 대하면 고향을 떠나오던 날의 새벽이 떠오르고 고향을 찾아가던 날의 환희도 되새겨지는 것이다.

  고향 사투리가 가을날의 낙엽처럼 나뒹구는 역 대합실. 때로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자면 흘러가 버린 나의 옛 모습이 홍안의 젊은이들 속에 오버랩되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사람의 그림자가 스치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 날 일을 마쳤을 때는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비닐우산으로 받치고 동료들과 함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그 날은 빗소리가 안주보다 더 술잔을 비우게 했던 것 같다.

  술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과 헤어져 역 구내로 들어서니 '전라선 오늘의 마지막 열차'라는 안내 방송이 귓속 깊이 들어왔다. '그래 가자'라고 나는 나한테 말했다.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어 표를 살 때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막상 열차에 오르고 보니 비가 들치고 있는 유리창 저편에 아내와 아이들이 들어섰다. 나는 '봄비 때문이야'하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작은 책 한 권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차를 타고선 잠을 자지 못하는 이상한 면이 있다. 3년째 한권으로 쓰고 있는 수첩을 꺼내어서 지난 메모나 반추하기로 하였다.

 

  신문 사회면에서. 전주에서 일어날 사건. 땅이 없는 농부가 하천 부지를 개간해 옥수수를 갈았다. 옥수수는 무럭무럭 자라 수염을 늘어뜨리고 여름 태양 아래 한창 익어가고 있는데 구청 단속 반원들이 들이닥쳐 도시 미관에 해된다고 옥수수를 베어 버리라는 통지. 농부는 열흘만 주면 그 열흘 동안에 옥수수가 익을 터이니 그 때 옥수수를 딴 다음에 베겠다고 통사정을 하였으나 단숙 반원들은 그 열흘을 기다려주지 않고 트레일러로 갈아엎어 버리고 말다. 이에 절망한 농부는 농약을 막걸리에 타 마시고 죽음.

 

탱크, M16, 핵미사일, 이런 것들이 박물관으로 들어갈 날은 언제 올까.

소녀의 첫 문장이 특별하다.

'야릇한 봄이 또 오고 있다.'

 

백양사에서. 짧은 나뭇가지도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가을 해 질 무렵 객사로 드는데 참새 한 떼가 뒤따라와 감나무 가지위에 앉는 것을 보다. 창호를 닫고 앉으니 바람이 불 적 마다 한두 마리씩 날아가는 것이 거기에 비치다. 한정 없이 날아가고도 아직 남아 있는가 싶어서 문을 열고 내다보니 날은 것은 낙엽이고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참새인 것을……

 

  밤새 달린 열차에서 줄기차게 내린 비와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러나 고향의 비는 서울에 오던 비와는 달랐다. 역 근처에는 벚꽃비로 내리고 있었고, 방죽에는 냉이꽃비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가는 여인의 머리에는 조롱조롱 은구슬비로 내리고 있었으며. 

  내가 자랐던 마을로 가는 버스는 2시간 후에나 있다고 했다. 나는 모처럼 이 십여 리 길을 걸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어린 날의 삽화가 있었다.

  그래, 고향 마을에서 기차를 구경하기 위해 무단 출타해서 이 길을 걸어왔던 적이 있었지. 초등학교 일이 학년 때였을 걸 아마, 신작로를 따라가면 기찻길이 나온다는 말만 믿고 서너 아이들과 함께 동구를 떠났었다. 레일 위에 올려놓아 기차가 지나가 주면 칼이 된다는 못을 하나씩 지니고서 말이지. 그런데 진달래 꽃잎을 따 먹으며 마침내 이른 기찻길에는 황혼이 드리워지고 있었어. 침 묻힌 못을 레일 위에 올려두고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고 어느덧 하늘에는 별이 돋았고. 그래. 돌아오던 깜깜한 밤길은 무섭기만 했어. 돌에 채이고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아아, 그리하여 마침내 오리목 숲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꿈결처럼 수많은 등불이 공동묘지 갈래길에 줄지어 오고 있었지. 우리들의 이름 부르며.

  그러나 그 날의 그 길에서 나는 실비 속에 떠오는 상여를 보았다. 누구인가. 대처로 가는 길이 아닌 공동묘지 길로 돌아서 가는 우리 동네 저 사람은.

  그 길에서 나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었다. 그 때는 너무나 허해지는 공복감 때문이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참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해주는 돌멩이다. 고향과 동심, 그리고 생과 사의 갈림까지도.

  저 돌멩이 속으로 난 길을 알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