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없는 영혼의 텃밭 / 홍혜랑

계절 없는 영혼의 텃밭 / 홍혜랑

 

다작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글방에는 5만여 권의 장서가 빼곡했었다. 생전에 그는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저 책을 다 읽었느냐고 무례하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물어본 사람은 분명 글 쓰는 작가는 아니었을 것이다.

 

평범한 작가의 글방에도 장서는 하루하루 늘어나기 마련이다. ‘글을 쓰려고 하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공포에 질린다’라는 어느 젊은 시인의 직설은 창작하는 많은 예술가의 경험이기도 하다. 사유의 세계에는 규칙도 없고 금기도 없다. 거미줄보다 복잡하게 엉킨 생각들을 풀어내는 천착이 창작 아니겠는가. 작가의 사색은 홀로 걷는 산책길에서 발현할 수 있지만 ‘공포’로 표현된 사색의 혼미는 흔히 글방의 서가에 꽂힌 장서들의 행간 어디쯤에서 진정될 때가 있다.

 

장서 중에는 빨려 들어가듯 정독한 책도 있지만, 정독하지 못한 책들이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사유의 연기 따라 언제 어느 길목에서 조우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적 무한의 컨텍스트들이다. 책 속엔 많은 사람이 깊은 고뇌와 방황 속에서 정신의 선혈로 그려놓은 ‘생각의 지도’가 들어있다. 개미굴에 갇혀 퇴로를 찾지 못하는 내 영혼은 장서들의 행간에서 지남의 눈을 뜨곤 한다. 그 순간을 위해 글방의 서가에는 얼핏 보기에 필요 이상의 넘치는 책들이 ‘때’를 기다리며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 준비는 버릴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구별해서 가려내는 일이었다. 옷가지, 살림살이를 선별하는 작업과 비교할 수 없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책 정리였다. 책이 유별나게 많아서가 아니었다. 새로 이사 갈 집의 글방 크기는 살던 집의 절반 정도다. 책꽂이도 책도 적지 아니 포기해야 한다. 어느 것을 데려가고 어느 것을 포기할 것인가. 간직할 책과 폐기할 책을 구별해서 덜어낼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한 권 한 권 책장을 넘기며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판정하는 일이었다.

 

평소 옷 정리는 반드시 제철에 해야 한다는 나의 불문율은 여러 번의 낭패가 안겨준 깨달음이었다. 겨울에 처분한 여름옷이, 여름에 없애버린 겨울옷이 철이 바뀌면 다시 생각나 후회할 때가 많았다. 육체의 겨울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창작의 계절만큼은 겨울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영혼에 불을 지피는 행위가 작가의 글쓰기다.

 

작가의 글방에는 사계절이 따로 없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없앨 책은 없다. 장서들의 갈피마다 인간 정신의 사계가 숨 쉬고 있어서다. 누구보다 많이 읽고 많이 쓴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서 5만 권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작가의 탐구 대상은 인간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는 5만 권의 장서에 담을 수 있는 존재 물음이 아닐 터다.

 

이사 날짜가 부득부득 다가오는데 책 정리는 지지부진이다. 한 권 한 권 펼쳐볼 때마다 내가 표현하지 못한 내 모습의 초상이, 내가 알지 못하던 인간 영혼의 신대륙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부풀려진 기대가 책마다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생이별의 그리움이 부추긴 미련이었는지 모른다. ‘사람은 너무 넓어. 나는 그걸 좀 좁히고 싶어’라던 어느 문호의 절규가 책들 속에서 웅성거렸다. 감당 못 할 크기의 인간 존재 속에서 조약돌보다 작은 내 정신의 주형을 조각해보는 시도가 글쓰기다. 빈약한 정신의 폐활량을 힘껏 몰아 호흡해본들, 숨을 내쉬는 순간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모양이 바뀌는 실존의 주형을 어찌할 것인가.

 

마음먹었던 것만큼 많은 책을 덜어내지 못하고 결국 이삿짐 속에 ‘실릴 것은 다 실려’ 이사를 마쳤다. 좁은 공간에 옹색하게 자리 잡은 책들에 미안했다. 그보다 더 난감한 일은 좁은 공간의 물리적 답답함이었다. 심기를 옥죄어 오는 익숙하지 않은 공간적 압박이 책들과의 교감을 방해했다.

 

글쓰기 책상은 끝내 글방을 떠나 거실로 옮겨졌다. 글방이 따로 있나. 글 쓰는 곳이 글방이지. 거실과 글방이 통합된 공간으로 따라 나온 액자 하나가 있다. 사반세기쯤 전, 첫 수필집 《이판사판》을 출간하고 수필가라는 이름이 익숙하기도 전이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서 시인 구상 선생님을 만날 적마다, 인간 정신의 궁극인 종교에 대하여 이름을 따지지 않는 그분의 활연 관통함에 매료되었었다. 망설임 없이 선생님께 졸저 한 권을 우송했으니 나는 참 용감했었다. 한 달쯤 후 뜻밖에도 우리 집 전화에서 선생님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보내준 책을 늦게 읽었노라’라며 외람되게도 선생님의 시집을 보내주시겠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출발이 늦은 무명의 문학도는 힘이 솟았다. 전혜린이 독일 유학 시절 헤르만 헤세의 편지를 받고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훗날 내가 ‘성천 아카데미’에서 동서양의 인문학 고전을 공부하게 된 것은 구상 선생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인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수필가에게 당시 석학들의 인문학 고전 강의는 환희로 이어지는 삶의 활력이 되었다. 여의도의 ‘성천 아카데미’ 강의실과 선생님 댁은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을 찾아뵙던 어느 날 벽장에서 서예 두 편을 꺼내며 그중 한 편을 고르라고 하신다. 가톨릭 신자인 구상 선생님이 애지중지 간직하던 <반야심경>도 신선했지만 나는 돌쟁이가 돌잡이를 집듯 사양하지 않고 선생님의 시 <꽃자리>를 택했다. 정성스레 표구를 마친 <꽃자리>는 오늘도 나의 ‘거실 글방’에서 주인의 앉은 자세를 지켜보고 있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인간 존재의 크기만큼 넓은 글방은 어차피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인간 존재를 만날 수 없을 만큼 막힌 글방도 없다는 것이 고맙다. 계절도 없고 칸막이도 없는 글방에서 주인과의 눈 맞춤을 무던히 기다리고 있는 장서들의 면면은 내 영혼의 혼미가 위로받을 수 있는 구원의 텃밭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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