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꽃으로 피어나다 / 허정진

 

 

오래된 시골집이다. 처마 밑에 제비집처럼 한때는 올망졸망한 식구들 들썩거리며 살았던 곳이다. 새벽을 알리는 장닭 울음소리, 아래채 가마솥에는 소 여물죽이 끓고, 매캐한 연기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정지문 사이로 쿰쿰한 청국장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뒤란 대숲을 출렁이며 바람이 지나가면 수다스러운 참새 떼 마당으로 몰려왔다가 한꺼번에 지붕 위로 날아오르곤 했다.

아침마다 싸리 빗질 자국 선명했던 그 마당에 이제 제멋대로 자란 잡초들로 무성하다. 먼 산 울음 같던 쇠마구간도 주인 없는 어둑한 동굴처럼 휑뎅그렁 남겨져 지나간 세월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사람 냄새 물씬하던 온기는 사라지고 기름기 빠진 빈집은 여름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처럼 초라하기만 하다. 눈길이 머무는 구석진 자리마다 허연 거미줄이 묵은 시간을 켜켜이 쌓아놓았다.

먹감나무 아래 그늘진 장독대에는 이끼들이 자리 잡았다. 우물터와 돌확, 그늘진 기와지붕, 나뒹구는 세월의 부유물마다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허물어진 돌담마저 청태의가 차렵이불처럼 돌 층계참을 둥글게 뒤덮고 있다. 하루를 탁발해 하루를 사는 민달팽이들이 뿌려놓은 조그만 채마밭 같다. 오래된 가문을 지켜온 수호신이기라도 한 듯 푸른빛의 이슬방울을 머금고 침묵 속에 빠져 있다.

줄기인지 잎인지 구분도 없는 여린 손이 세상을 향해 한없이 꼬물거린다. 녹색 비단 치마를 두른 새색시처럼 사뭇 곱상하고 음전한 자태다. 갈맷빛 실타래 풀어 십자수 놓는 밤마다 한 땀 한 땀 시린 눈물이 발묵하듯 번져갔을 이끼, 허공을 가르는 청둥오리 떼 시퍼런 그리움을 뚝뚝 떨구며 아침을 밟고 지나간 세월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부드러운 존재가 이끼다. 살아남기 위한 가시나 독성 하나 품지 않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곳에서도 견뎌내고 우주공간에서도 생존 가능한 식물이라고 한다. 겉보기에는 연약하기 그지없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살아있는 끈질긴 생명력 앞에 고개가 수그러진다.

산에 이끼가 없으면 죽은 산이 된다고 한다. 산불이 나거나 흙이 무너져 맨땅이 드러난 곳에서 맨 먼저 나타나 정착하면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식물이다. 이끼가 자라면서 생긴 부식토 덕분에 식물들이 뿌리내릴 수 있고, 이끼 스스로 작은 동물들에 안식처와 먹이를 제공한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생물체이지만 알고 보면 숲과 지구의 옷이며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준 셈이다.

그래서 꽃말도 ‘모성애’인가 보다. 억척같은 삶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 그 생애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한 법이라고 했다.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 푸른 제 목숨을 소신공양하는 이끼, 관다발이 없어도 자식들 들썩이는 숨소리만으로 배가 부르다. 목숨과도 같은 자식 사랑, 이끼 같은 삶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곡진한 생애가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힘들고 외진 자리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윗목보다 아랫목이었고 이글거리는 햇살보다 눅진한 달빛에 더 익숙했다. 나무나 꽃도 되지 못하고 해나 별이 되기를 꿈꾸지도 않았다. 어머니란 자리는 남 앞에 빛나거나 화려한 존재가 아니었다. 기꺼이 음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더럽고 어려운 일을 가리지 않았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식구들의 그림자로 살면서도 누군가의 버팀목이고 받침대 역할에 생을 다 바쳤다.

이끼에게 꽃이 있었던가. 헛꽃만 피고 져 벌 나비 날아든 적 없지만 파르스름한 녹태에 달빛 향기 가득하다. 말보다 손발이 앞서고, 머리보다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고유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끼를 먹고 자란 은어에게 수박 향이 난다고 했던가? 어머니 품에는 안정과 평안을 주는 수더분한 향기가 있다. 원시적이고 태곳적인 느낌, 인류의 시원이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을 것 같은 느낌, 절대적인 사랑이란 그렇게 순결하고 정결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일도 없고 바닥을 벗어나 본 적도 없다. 맨바닥이면서도 뿌리인 모성, 돌 틈마다 자란 이끼가 석축을 견고하게 만들 듯 비바람 맞으며 어머니는 삶의 고빗사위를 견디어내었다. 살아내기 위한 하루하루가 생의 마디였으며 걸어가야 할 길목 하나하나가 삶의 곡절이었다.

뼛심을 다하느라 잃어버린 여자의 손, 닳고 닳은 빈손이면서도 내 자식 생각하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고 한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어떤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은 수호자였다. 고단한 무릎을 펴지 못한 달팽이들의 숲이며, 꺾이고 부러지지 않는 바람이 쉬어가는 안식처가 그곳이다. 그래서 이끼에서는 흙내가 나는 모양이다.

늦더위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댓돌에는 누르스름한 이끼들이 삶의 더께처럼 달라붙어 있다. 삭정이마냥 거죽뿐인 무게로 등걸잠을 자는 어머니를 마주 대하는 듯하다. 저렇게 죽은 듯이 말라비틀어져 있지만 한바탕 소나기 긋고 지나가면 푸르게 살아나 꿈틀거린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말라하다가 먼발치에서 발소리만으로도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어머니가 그렇다. 아마도 이끼는 어린 새들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 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달의 순례를 마친 그믐처럼 이제는 바늘에 실 꿰느라 헛손질만 하는 노모가 마음 아프다. 추운지 더운지, 밥은 먹었는지, 그저 무탈한지, 늙수그레한 자식들 안위를 챙기느라 마음은 아직도 종종걸음이다. 밥 잘 먹고 아픈 데 없다는 한마디가 어머니의 하룻밤 안식과 평안을 담보한다. 상처는 감추고 그리움은 숨기느라 순하고 느린 눈빛에는 주술처럼 자식 잘되라는 기도만 정화수로 남았다.

목마른 어둑새벽, 돌담 곁에 비손하는 어머니가 보인다. 빛다발 들자 움츠러드는 응축과 희생의 세월이었다. 침묵과 기도만으로 반짝이는 별빛처럼 가슴 언저리 텃밭 하나 푸른 융단처럼 일구며 살았던 어머니, 흘림체로 쓴 삶의 비문 같은 이끼에 손을 얹어보면 비릿한 슬픔의 속살 냄새들이 손금 사이로 배여 나올 것 같다.

우리 살던 옛집에 해지면 분꽃 피어나고 이끼 낀 돌담 아래 귀뚜라미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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