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어 낚시 고경서

  

불 꺼진 방 안은 심해를 방불케 한다한낮의 쪽빛 바다를 여러 번 덧칠한 듯 검은 색채를 띤다자정이 지났으나 파도 소리에 뒤척이는 잠을 열고 문밖으로 나선다캄캄한 어둠을 끌어다 덮은 바다도 잠들지 못한 채 출렁거린다심연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이곳은 대뇌라는 바다다리아스식 해안처럼 들쭉날쭉한 전두엽의 해역이다먼 과거로부터 현재미래에 이르는 생의 해류를 타고 이동해가는 욕망의 바다이를테면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생각이나 기억 따위가 유영하는 황금어장인 셈이다.

나는 감성 낚시를 한다아니 감성어 출조에 나선다시각과 청각후각이 가장 예민하다는 '바다의 제왕'을 포획할 참이다슬픈여*가 마주 보이는 해안에 포인트를 잡는다갯바위에 몸을 앉히고대물을 낚아 올릴 기대와 예감으로 한껏 들떠 있다뜰채인 펜과 종이는 심장 가까운 곳에 두는 것으로 모든 채비를 끝낸다바늘에 꿴 미끼는 상상력.

저인망을 펼치는 대신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을 유혹한다고통이나 슬픔이 큰 사람은 아무 데나 낚싯대를 던지지 않는 법물때 맞춰 이목구비가 생겼다 사라지는 암초에 밑밥을 친다망망대해는 먹잇감을 노리는 나의 속셈을 눈치채고도 애써 태연하다갯바위에 부서진 포말이 짭조름한 갯내가 후각을 파고든다오늘은 기필코 놈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섬은 알몸의 바다에 유방처럼 봉긋 솟아 풍경을 살리는 배경이 된다썰물 때는 한쪽으로 기울지 못하게 바람벽이 되어 무게중심을 잡아준다해안절벽에서 등대가 빛이 침몰한 항로를 밝힌다깜빡깜빡 명멸하는 불꽃은 길을 잃어 표류하는 배들의 나침반이 되고새 떼는 지친 날갯짓을 내려놓는다바다의 자궁이 잉태한 어린 바람에게 젖을 물려 키우는 서식처요뛰놀고 장난치는 놀이터다이들이 있어 무인도가 외로움의 산실이라는 상투적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내가 섬을 경배하는 이유다.

바다가 깊고 내밀한 속을 열어 보일 때마다 흰 갈기를 가진 바람이 자맥질을 한다이러한 쉼 없는 역동성이 생명의 발원지로서 바다가 갖는 진정성이다나 역시 인생이라는 대양을 항해하면서 풍화와 침식의 세월을 견디고 버텨낸다그러는 동안 뇌리엔 나만의 고유한 주상절리가 형성되고중첩된 시간의 퇴적층 속에 내가 공략하는 감성어들이 몸을 숨기거나 갇혀 산다이들은 달빛이라도 쏟아지면 물비늘 사이로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만월이다교교한 달밤에 어디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부르는 세레나데인가영혼을 울리는 선율이 감성을 자극한다섬과 바다를 오가면서 장성한 바람이 떠날 때가 온 모양인가달빛을 껴안은 물비늘이 파르르 떨고 있다윤슬이다섬을 기점으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펼쳐 보이며 유선형의 무늬로 확장해 간다그 문양이 마치 비상하는 바람의 날갯짓이요내가 잡으려는 대물의 형상이다반짝이는 잔물결 사이로 놈들의 환영을 좇는다.

나는 바다가 입질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다시 밑밥을 투적하고 낚싯대를 흔들어 대물을 유인하고 상상한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이 잔챙이처럼 휘익 달아난다파도 소리가 내 몸을 서서히 좁혀온다턱을 괴고 앉아 어둠을 응시한다관조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다이때의 기다림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다기다림이 간절할수록 대물을 향한 열망도 덩달아 커진다집요하게 탐색전을 펼치며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물고기들이 나보다 한 수 위다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감각의 촉수를 자극하는 낚시야말로 기다림의 미학이 아닌가.

해수면이 차오르는 만조 물때다나는 심해어처럼 해연海淵을 암중모색한다심층 깊숙이 억압된 욕망이 달과의 접선을 시도한다드디어 입질이 들어온다낚싯대를 바투 쥔 손끝에서 찌가 움찔하는 미세한 기척이 느껴진다고대하던 어신魚信이다이리저리 끌고다니는 묵직한 손맛으로 봐서 그 대물이 틀림없다가벼운 직관번뜩이는 영감을 기민하게 포착한다팽팽한 긴장감이 놈을 잽싸게 낚아챈다긴 포물선을 그리며 낚싯대가 휘어지고미끼를 집어삼킨 물고기 한 마리 수면 위로 솟구친다이때 바람도 달빛을 쳐서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감성어다!

은백색 광휘가 돌올하다곧추세운 등지느러미며 형형한 눈빛이 제왕의 풍모답다전광석화처럼 번쩍한눈에 읽히는 바다의 긴 문장들황홀한 손맛에 쾌감마저 짜릿하다순간낚싯대가 공중에서 심하게 버둥거린다치열한 사투다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찰나에 놈이 그만 자취를 감춘다. 아뿔사! 뜰채를 심장에 넣기도 전에 도망쳐버린 것이다머릿속이 그물망처럼 헝클어진다.. 헛된 희망을 봉돌처럼 매단 채 물거품을 게워내는 바다의 동태를 살핀다대물을 빼앗긴 허탈감으로 잠시 휘둘린 바다가 평온을 되찾고거대한 아가미를 벌름거린다대물을 잡았다가 놓친 낭패감이 감정 수위를 상승시킨다그러고 보니 월척을 순순히 내놓는 바다는 없다기쁨과 희열의 순간이 너무 짧아서 놓친 물고기가 더 커 보였는지도 모른다.

새벽 바다가 푸른 뇌수로 일렁인다비록 공상에 그쳐 조황은 나빴지만 만월을 욕심껏 담은 망태기가 무겁다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의 비의 만 보여주고 도망친 그놈이 두고두고 그립다이렇게 번번이 놓친 감성어들은 내 마음속 청정도량에 풍경으로 매달려 있다어느 날문득 섬을 떠나 뭍에서 떠돌던 바람이 뎅그렁뎅그렁 제 몸을 부딪쳐 올 때마다 둔감한 나를 흔들어 깨운다풍경 소리는 바람의 사유思惟인가넘실거리는 맥놀이시시때때로 표정이 변하는 바람은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섬과 달바다가 바람의 전언을 듣는다훌쩍 사라진 대물이 철썩 철썩 쏴아아내 안의 갯바위를 때리고 있다.

세상이라는 난바다를 헤엄쳐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물고기 한 마리씩 키운다 했거늘 잡았다 놓친 물고기가 어디 이번뿐일까사는 일이 그날 그날일 때 세상을 힘껏 비틀어 쥐어짜고삐딱하게 바라보리라낯섦에서 오는 긴장과 설렘신선한 충격이 나를 변화시키는 미끼로 낚아챌 것이다감성이 메말라 가는 나이에 펄떡펄떡 살아 있는 감성 언어의 출몰을 기대하며 야간 조업에 나선 나는 초보 낚시꾼이다.

원고지 칸칸은 빈 가두리 양식장이다.

 

홍도에 있는 갯바위 이름을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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