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왜 이럴까. 요즈음 뉴스에는 부모가 자식을 죽였다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젊은 엄마가 자기 아이를, 이모가 조카를 죽였다. 외할머니가 제가 난 아이를 딸이 난 아이와 바꿔치기하고 끝내는 그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짐승이 제가 낳은 새끼가 사람의 손을 타면 제 새끼를 죽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어찌 인간이 제 새끼를 죽인단 말인가.
남자들이 평생 가도 군대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팔순의 큰 누나는 나만 만나면 피난길에 겪었던 일을 전설처럼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겪은 전쟁의 참화는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일이기에 가슴에 맺힌 아픔도 컸으리라. 나는 어렸기에 기억나는 순간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누나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기에 그 사건은 내 기억처럼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한국전쟁 전까지 우리 가족은 평안북도의 조그만 섬에서 살았다. 전쟁이 나자 우리 가족은 섬사람답게 배로 피난길에 올랐다. 바다로 내려오던 배는 진남포항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피난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일단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귀동냥이라도 듣고 갈 셈이었다. 그런데 뭍에 내려 허리도 펴기 전이었다. 미군의 함포사격이 있을 것이니 피신하여야 한다고 온통 난리였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저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데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바다는 썰물이어서 우리가 타고 온 배는 이미 개펄에 걸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직 개펄에 걸리지 않은 조그만 어선이 하나 있는데 이미 그 배에는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다행히 고향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어서 우리 식구도 동행을 허락받았다.
그 배를 타기 위해서는 뭍에 걸려 있는 큰 배에서 옮겨 타야 했는데, 높이 솟은 뱃머리에서 작은 배로 뛰어내려야 했다. 그때 나는 큰누나의 등에 업혀있었다. 큰누나는 나를 업고도 뛰어내렸다. 형도 뛰어내렸다. 작은누나를 업고 있는 어머니가 뛰어내리기에는 뱃머리가 너무 높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엉거주춤 망설이는 사이 선장은 ‘배 나간다.’라는 매몰찬 소리와 함께 삿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여서일까, 이웃이란 것도 알고 지냈다는 사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전장(戰場)에서의 삶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처절한 아귀다툼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헤어졌다.
어디쯤 왔을까, 검은 물이 넘실대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 배는 멈추었다. 다행히 남한으로 가는 배는 아니었다. 함포사격이 끝날 때까지 잠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포사격이 시작됐다. 쿵쾅, 쿵쾅 소리와 함께 진남포항은 불바다가 되어 훨훨 타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누나 등에 업혀 배고파 울고, 엄마 찾으며 울기만 했다. 부모와 헤어져 동생 둘만 데리고 있는 열여섯 살의 누나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양식과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도구들을 싣고 있었다. 우리 삼 남매는 달랑 몸만 실었다. 누나는 배가 고파 우는 나에게 주려고 밥 끓는 물이라도 조금 달라고 애원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한 숟가락의 밥도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바다에 던져버리라는 끔찍한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미 포격으로 죽었을 텐데, 제 몸 간수도 힘든 어린 여자가 어떻게 어린애를 데리고 머나먼 피난길에 버틸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생명을 담보한 살벌한 전쟁터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잔인한 속성의 발현이 아니었겠는가.
도움을 줄줄 알았던 이웃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누나는 그들이 있는 선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옷마저 제대로 입지 못한 밤바다의 바람은 매우 찼다. 누나가 없는 선실에 혼자 있을 수 없는 형도 밖으로 쫓겨났다. 삼 남매는 오들오들 떨며 서로 부둥켜안고 밤을 지새웠다. 넘실대는 검은 파도의 공포와 쿵쾅대며 귀청을 찢어대는 함포 소리의 공포에 가슴이 타들어 갔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함포사격은 끝날 줄 몰랐다. 심장을 떨게 하는 공포의 시간은 얼마나 길고 지루했을까.
밥 한 톨,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었던 나는 울 힘조차 떨어졌다. 누나는 나에게 손가락을 물려 빨게 하고, 젖까지 물려보았다고 했다. 참혹한 전쟁보다 더 무서운 이웃의 몰인정에 치를 떨며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누나의 눈엔 이제 흐를 눈물도 말라버렸다. 모두의 생명을 하늘에 맡긴 채 멍하니 검푸른 바다만 바라볼 때, 머리 위를 쏟아붓던 소낙비가 멎듯 함포사격은 멈추었다. 배는 왔던 곳으로 다시 들어간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나의 머릿속엔 온통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할 말이 얼마나 많았으랴. 어머니, 아버지가 없어 동생을 죽일뻔했다는 말도 해야 했을 것이다. 포탄이 떨어졌든, 총알이 빗발처럼 날렸든 그건 궁금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계시기만 하면 된다. 나이 어린 누나가 다른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겠나.
배가 항구에 가까워지자 저 멀리 부두에선 실루엣 같은 어떤 움직임이 보였다고 했다. 그것은 살아있음의 증명이었고 아버지, 어머니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자식들과 헤어진 아버지, 어머니도 당신들만 살겠다고 몸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함포사격이 끝날 때까지 배에서 떠나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포탄은 항구에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 위로 쌩쌩 소리를 내며 날아갔는데 어디로 가서 터졌는지는 모른다. 이산가족이 되었던 우리 가족은 다시 만나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요즈음 가족 해체, 가족 경시의 세태를 바라볼 때마다, 사람이 죽는 게 일상인 전쟁터에서 내 목숨을 지켜준 누나가 고맙다. 누나는 나에게 늘 엄마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