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개를 올려놓고 있는 여인 존 버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안젤린은, 늘 생각해 오던 대로 아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의 모습이다. 젊은 날의 그녀 모습을 떠올려 보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세상을 떠났고, 그런지 이미 삼 년이 지났음을 받아들이려 애쓰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그녀가 나를 계속 바로보고 있다. 그녀는 나를 보면 늘 즐거워했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을 때일수록 더 재미있어 했는데, 세상에 없는 그녀가 지금 커다랗게 웃고 있다. 비록 소리는 나지 않지만! 무슨 장난을 할 것인지 미음먹은 눈치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다음 날 아침 해야 하는 거짓말에 대해 혼자 비밀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장난이란 바로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 능청스레 지난 밤 단 한 번도 눈을 감아 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그런 장난.

안경을 벗으면, 엄격하던 눈이 이내 경이에 가득 한 눈으로 바뀌곤 했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젊은 사람으로 기억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한번은 내게 부어 오른 무릎에 약을 발라 달라고 청한 적이 있었는데, 무릎과 허벅지가 마치 젊은 신부의 그것처럼 부드러웠다. 땋은 머리를 풀기라도 할 때면, 하얗게 세긴 했지만 숱이 풍성한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곤 했다. 혹 드물게 그녀에게 입맞춤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를테면 신년인사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나를 구석으로 끌고 가곤 했다. 이런 여러 기억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젊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가 없다.

생각건데 그녀의 상복이 아마 그 이유인 것 같다. 상복을 입고 있으면 -그녀는 삼십 년 동안 그걸 입고 있었다- 젊음은 영원히 가려진 채로 있게 된다. 언젠가 길에서 결혼 행렬 때문에 차들이 멈춰 섰을 때, 자전거를 타고 있던 어느 남자가 한 말이 기억난다. 창문가에 이불을 한아름 안고 있는 젊은 여자가 보이면 신혼이라는 뜻이며, 도끼로 땔나무를 패고 있는 늙은 여자가 보이면 그건 홀로 된 여자라는 뜻이라고 그 남자는 말했었다.

안젤린은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늘 행복했다. 숲에서 죽어 넘어진 나무를 땔감으로 가득 주워 돌아올 때, 그녀는 행복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상복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 때 은밀한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치가 있었다. 방금 들은 말을 마치 칼로 자르듯이 싹둑 잘라내어 그걸로 되받아치는 작전을 구사했다. 화면에 지스카르 데스탱이 나오면 주머니에 숫염소 똥을 넣어 두고 있네 하고 말하는 식이었다. (이 전직 대통령은 종종 염소로 희화화 된다-역자)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그녀의 부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우체부의 웃음소리를 나는 한참 동안 들어야 했다. 때때로 나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웃기도 했다. 예수도 마리아도 요셉도 다 바보예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의 상복은 남편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돌아간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때의 고통- 그녀는 이 고통을 삼십 년 동안이나 껴안고 있었다. 고통이야말로 아들로부터 자신에게 남겨진 모든 것이었기에- 을 통해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병든 사람들을 찾았다. 남겨진 유족을 찾았다. 그녀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찾아갔고 서로 의지하여 함께 설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지난 밤 텔레비전에 나온,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에 돈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러 번 내게 물어 온 적도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사치에 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염소 세 마리에, 돈은 세어 볼 수 있을 정도이고, 사는 곳이 열다섯 평도 안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치를 즐길 수 있었다. 게으르게 빈둥거린다는 말이 그녀가 가장 사랑스럽게 던지는 나무람인 점에서 이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개와 염소들을 보며 빈둥거린다고 나무랐다. 내게도 그럴 위험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젤린이 젊었던 때, 그 시절의 가장 큰 사치가 다름 아닌 빈둥거림이었다.

미키마우스를 본떠 이름을 지은 미키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다. 요란스럽게 움직이면서도 천진한 검은색 작은개. 도무지 몸집이 자라지 않는 개였다. 야단을 치면서 바깥에서 키웠다. 아플 때면 그녀가 한 주에 두 번씩 윤이 나게 닦아 주는 스토브 아래 숨어들곤 했다 그러나 다른 개에게 물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치 오디세우스를 간호하는 칼립소처럼 개를 무릎에 놓고 간호했다. 그런 안젤린이 나와 장난하기 위해 이 아침에 오는 것을 기다린 것이다.

테이블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계획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들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분명한 이유를 지니고 이루어진 마을도 있다. 두 계곡이 만나는 곳 혹은 강폭이 좁아지는 곳 등의 입지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처음 시작에서부터 또 그 마음이 앉은 자리에서부터, 능숙한 솜씨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도 있다. 날카로운 안목에 의해 만들어진 듯한 마을 말이다. 우리 마을이야말로 이런 종류의 마을에 속한다.

마을은 실제보다 더욱 행복해 보인다. 교회의 첨탑은 아름답다. 묘지는 마치 그 위에 자리한 발코니처럼 보인다. 길 위쪽으로 조금 물러서 있는 마을 사무소는 삼색기를 날리며 마치 성채의 자태로 당당히 서 있다. 레퓌블리캥 리르를 포함해 층계참을 통해 입구에 다다르는 두 개의 카페가 있다. 그리고 그 뒤의 언덕으로는 마치 커다란 녹색 극장의 특별석들처럼 밭이 이어져 있었다.

오늘 아침, 겨울 햇빛을 받으며 마을로 다가가면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마을은 근년 들어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겨울 햇빛 아래 멀리서 보면, 마을은 이 세기가 시작되었던 때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오늘 아침 갑자기 마을은 내게 그렇게 보였다. 그 이전에 무수히 보아 온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마을은 신비한 약속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을 교회에서 결혼할 거예요. 아이들은 마을의 학교에 다닐 거고요. 남편은 해마다 봄이 오면 3 14일에 맞춰 신부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 암말을 몰고 나게겠지요. 순간 나는 그녀의 소리 없는 웃음을 들었다. 마을을 보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그녀였고, 그녀는 나로 하여금 자기 눈을 통해 마을을 보게 했다. 젊은 날의 눈을 통해 보게 해준 것, 그것이 그녀가 지금 웃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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