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 천경자

 

 

 

외할머니 눈썹은 초생달처럼 둥그런 데다 부드럽게 송글송글 겹쳐진 편이었다.

어머니의 눈썹은 외할머니의 초생달 같은 눈썹을 산산(散散)이 짝 뿌려 놓은 듯 눈두덩이까지 부드러운 털이 더욱 송글송글한 편이었으나 인생을 호소(呼訴)한 듯한 고운 눈빛은 하나의 대조(對照)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한 모계(母系)를 닮은 것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여학교를 갓 나오던 해였다.

그 무렵부터 나는 얼굴에다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엇보다도 화장용 크레이언으로 눈썹을 그리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스스로 숱이 작은 눈썹에 대하여 어떤 열등감을 느꼈든가, 눈썹이 솔밭처럼 짙은 딴 여성을 부러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발관에 가서 면도를 할 때마다 눈썹을 지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어야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의례 세수를 다시 해야 했던 것이다.

내가 정작 눈썹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게 된 날이 다가온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結合)이 된 날부터였다.

동이 터 올 무렵엔 나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눈썹을 그려야 했고 그 때문에 눈보라 치는 겨울 날에도 얼음을 깨고 새벽같이 세수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내가 눈썹에 대한 저주 같은 생각마저 해야 했던 것은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여윈 후였다. 생존경쟁(生存競爭)의 마라톤으로 처절한 고독감에 젖어 있었던 것인데 그때 어느 관상가(觀相家)의 막연(漠然)한 말에 무척 신경을 기울였던 것이다.

“눈썹이 약하니 형제녹(錄)이 없고 고독하리라……” 는 말이었다.

세월은 흘러 가고, 흘러 가는 세월따라 크레이언도 무수히 나의 눈썹을 거쳐 사라져 갔다.

서로 만나고도 10여 년- 사이에 두 아이까지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세수를 하고 난 얼굴을 남편에게다 보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버젓이 눈썹을 그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오랫동안 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아 왔으나 타고난 자학적(自虐的)인 성품 때문인지 그 사랑의 척도(尺度)를 완전히 수학적으로 재기까지는 불안이 따르고 있었다.

도대체 사랑의 척도(尺度)를 수학적으로 잰다는 생각부터가 어리석고 욕심장이 같은 이야기인지 모르나 감각적(感覺的)인 구상적(具象的)인 또 그 이상의 사랑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설령 안심이 된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인 안심에 불과했다. 나는 눈썹 그린 것과 더불어 긴 세월을 그렇게 사랑의 척도를 수학적으로 풀어보지 못한 채 언제나 척도한 수학이 풀리기를 원하며 살아왔다.

어느 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오래도록 거리를 거닐어서 온 얼굴에 먼지가 뿌우하였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도 차고 해서 식모(食母) 보고 타월을 더운 물에다 짜 오라고 하여 거추장스러운 세수를 정리하였다.

그때 남편은 그 후의 내 얼굴을 닦아 주겠노라고 전예(前例)없던 친절을 베풀어 주었는데 나는 쑥스럽게 생각했지마는 젖은 타월을 남편의 손에 맡기고 말았다. 얼굴의 어느 부분에 타월의 감촉이 올 것인지도 걱정스러웠지만 눈썹 일이 걱정스러웠다.

남편은 먼지가 덜 닦인 부분의 먼지를 두어 번 씻은 후 눈썹이 있는 자욱에 가서는 엄지손가락 위에다 수건을 걸치고 마치 화공(畵工)이 그림을 그릴 때처럼 그레이언만 제끼고 교묘하게 그 부근을 닦아 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사랑의 척도니 뭐니하는 것이란 이만저만 어리석은 자학심(自虐心)이 아닌 것을 느꼈고 그 다음 순간 그 자학심(自虐心)이 스륵스륵 무너져 가는 것도 느꼈으며 가슴 깊이 눈물조차 고이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다.

평소에 무뚝뚝한 편의 사람이었기에 나의 느낌은 한결 더 강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눈물을 억제하고 타월을 다시 받아 내 손으로 남편 앞에서 눈썹에 그린 크레이언을 용감히도 싹싹 문질러 버렸다.

사랑이란 미태(美態)나 미태(媚態)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 불단(不斷)한 생명력을 저축하면서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사랑을 척도할 수학은 영원히 풀리지 아니해도 영원한 사랑은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자학(自虐)이란 자존(自尊)의 편린(片鱗)일 것이라는 것과 수학으로 척도 할 수 있는 사랑이란 윤기 없는 사랑이 아닐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