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밭에 구를 바엔 저승이 좋아 오차숙

 

 

 

화장터 대기실에 우두커니 앉아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번호표를 바라보고 있다.

몇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화장(火葬)할 순서가 돌아왔는지 전광판의 글자가 발광하고 있다그 순간 미친 듯이 뛰쳐나가 저 멀리 연통 주변에서 검붉은 색으로 너울거리는 한계의 실체 뱀의 꼬리처럼 제멋대로 비비꼬는 연기의 퍼포먼스를 바라본다.

침묵만을 머금은 채 하늘로 주춤거리며 솟아오르고 있는 검고 붉은 연기무슨 한()이 많아 흙구름처럼 뿌려지며 중천(中天어느 마을 지점에서 뱅뱅 맴돌고만 있을까.

 

하데스에 가서도 비통한 마음을 지우지 못해 아케론(Acheron) 강을 건너지 못할까 걱정이 돼서일까세상의 모든 것을 망각하기 힘들어 레테(Lethe) 강을 건너지 못할까 염려가 돼서일까뱃사공 카론(Charon)에게 건네 줄 노잣돈을 잊고 와서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달려온 길을 되새겨 보려는가.

아니면 생()의 부질없음을 잠시 느껴 강죽에 망연하게 앉아 명상에 잠길 하는가아니면 짧은 생()에 못다 이룬 꿈이 많아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사뭇 아쉬워 나룻배에 올라서길 거부하려는 심산 때문일까.

아아, ‘은 괴물 같은 것지독히도 괴물 같은 것소크라테스도 이라는 괴물을 치료할 수 있는 대상은 죽음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괴물을 치료할 수 있는 것 역시 이었음을 왜 몰랐던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오직 그 사람에게 빚을 갚는 마음으로그 사람이 떠난 그 모습 그대로 그 사람 뒤를 따라가고 있는 내가 아닌가.

이제 비로소 너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 있어이젠 대()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양심과 심장을 활짝 가동하고 유황불 속이라도 날아다니고 싶어라고 환호성 지르며 생명 다하는 순간까지 진정 희열을 느끼곤 했는데아아 그러나 이승에 남은 두 나무 그들에겐 제우스의 물벼락보다 더 큰 불벼락을 내리치고 말았으니, ‘라는 존재는 정녕아니 아니 라는 존재는 정녕구제받지 못할 죄인임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나 이제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소이다.

삶을 살면서도 삶 자체를 깨닫지 못한 삶()을 살면서도 존재 자체를 깨닫지 못한 생오직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으로 허우적대며 헤엄치다 보니도박판 같은 세상에서 한 구성원이 되어 타짜에 중독된 채 귀한 실체를 보지 못했으니아아그러나 이제 하데스의 다섯 대 강을 건너가면 당신이 파우스트 영혼을 구원한 그레트헨이 되어연옥(煉獄)의 세계에서 컹컹거릴 나의 영혼을 감싸 안아다오.

우리 이승 곳곳에 대()혼란을 주었으나 이제 그곳에선 당신과 나스틱스 강에서 목욕을 한 불멸의 원앙새로 부활하여 잘 살아 보자구려.

 

 

음음 이 시대를 통탄하며 그 누군가 말했듯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누군가 급하게 달려올지 모를 그 사람을 위해 몇 초만 더 기다려 주는 삶,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클렉션을 빵빵 거리지 말고 잠시 정차해 생()의 기로에 서서 갈등하며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몇 초만 더 기다려 주는 삶,

친구와 헤어질 때도 혹시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살짝 웃어줄 수 있도록 몇 초만 더 기다려 주는 삶,

저녁에는 넉넉한 웃음으로 술 한 잔 따라줄지도 모르니까 출근 준비를 하다가 폭풍 같은 소리를 질러대도 몇 초만 더 인내해 주는 삶을 살아 보자구려.

 

이제 우리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삶천상(天上) - 그곳에서 제우스와 메티스 같은 사랑을 꽃피우며 살아 보자구려.

어쩌다 가게에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러 가서 생각이 나지 않게 되면 아주머니, ‘망설임’ 만 원어치만 주세요라고 할 때까지은행에 통장을 재발급 받으러 가서 아가씨이 통장 재개발해 주제요라고 할 때까지.

한 살 차이 노모님을 둔 우리에게 연세가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어오면 우리 부모님은 연년생이세요라고 할 때까지출근 준비에 바쁜 자식에게 빨리 포크레인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며 식탁 위에 콘플레이크를 내놓을 때까지,

소보로 빵을 사러 빵집에 갔다가 곰보가 심한 주인을 보고 아저씨곰보빵 오천 원어치 싸주세요라고 할 때까지식물인간 딘 환자를 병문안 가서 그 어머니 손을 붙잡으며 어떻하죠아드님이 야채인간 되셨으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라고 할 때까지우리 그렇게 살아 보자구려.

 

아니 아니 그보다

당신 도대체 누구시오?” “그럼당신은요라며 서로가 서로를 앙칼지게 밀어내며 사람 살려도둑이야라고 비명을 지를 때까지,

우리 그렇게 살아 보자구려.

 

그러나 무슨 소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만약이 순간에 꿈이라고 한다면 당신 진정 제우스의 권력을 부러워할 수 있겠소?

만약이 순간이 꿈이라고 한다면 당신 진정 메티스의 지혜를 부러워할 수 있겠소?

 

그 남자

헤민 스님의 금언이 아니더라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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