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 2018년 1월호, 현대수필가 100인선 엿보기] 바다 엽서 - 박종숙 


바다 엽서   -   박종숙


   푸른 바다가 망망하게 펼쳐져 있는 엽서를 받았다. 하늘을 찌를듯한 석벽 위에 이끼 낀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섬과 섬 사이로 적막을 헤치고 끝없이 열려있는 하늘이 금방이라도 내 동공 안으로 쪽빛을 자르르 흘려줄 것만 같다. 구름 한 점 떠 있는 침묵도 온전히 정겹기만 하다.
   “부족한 대화를 메우고자 하늘 뚫린 바다 엽서 한 장 드립니다.”
   새해 들어 처음 받는 지인의 잉크 묻은 사연이다. 짧지만 그 말 한마디가 숨겨진 정성을 대신하고 있다. 수많은 말들을 함축하고 있는 언어가 고달프고 힘들었던 내 삶을 저만큼 사라져가게 한다. 건기가 지속되었던 가뭄 속에서 해갈을 준 촉촉한 봄비와 같다 할까?
   우리는 얼마나 척박한 땅에서 살아왔던가. 가진 자는 가진 자 대로 굶주린 자는 굶주린 자 대로 살아내기 힘든 세월을 견디기 위해 남이 뛰니까 나도 정신없이 달려야 했다. 기계문명의 날선 저항 속에서 남을 견제하기 위해 미움과 질투는 접었어야 했는데 적대감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 땅을 녹이는 봄비같은 지우의 바다 엽서가 내 가슴을 푸근하게 감싸준다.
   봄꽃은 온몸을 던져 피어나지만 겉으로는 평온을 노래한다. 사투를 벌려 혹한을 이겨낸 환희의 찬가를 부르지만 그의 고통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잠시 일손을 접고 새로운 날들을 노래할 침묵의 언어를 훠이훠이 풀어 놓기로 했다. 산과 들 인생굽이를 넘기기에 벅차 상대가 베풀어준 고마움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승을 떠날 때는 애지중지하던 모든 것들을 미련 없이 남겨두고 떠나지 않던가. 그 짐을 풀어낼 시간도 많지 않다는 걸 서서히 느낀다.
   오늘은 작은 것도 실천하지 못한 지난날들이 부끄러워 바다 엽서를 들고 삶의 궤도를 수정하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세심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마음 활짝 열고 척박했던 땅에 비를 내리는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리라 다짐해 본다.



    박종숙 1990년《수필문학》등단. 저서: 『호수지기』외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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