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가 100인선 엿보기] 향香을 말하다 - 정광애(程光愛 |

향香을 말하다   -  정광애


   집 근처에 유명 메이커 커피전문점이 있다. 한추위만 아니면 항상 문이 열려 있고 여름에는 야외 파라솔도 펼쳐진다.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풍기는 구수한 커피향도 향이지만 파라솔 아래 빈 의자가 매번 가던 길을 멈칫하게 한다. 앉아보고 싶은 의자와 냄새로 사람을 유혹하는 상술인지 알지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 생활에 커피는 필요 불가분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촌스럽게도 난 커피에 문외한이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커피 맛에 이런저런 품평을 쏟아내지만 전혀 그런 말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씁쓸한 검은 물일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구수한 향에 빠져 맛과는 상관없이 자주 마신다는 것이다.
   가끔은 커피 향을 찾아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입은 쓰지만 코끝에 와 닿는 향에 취해 오랫동안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 한다.
   작가 발자크는 한때 외도한 사업 때문에 많이 진 빚을 갚기 위해 장편소설을 수없이 썼다고 한다. 그 많은 글이 커피에서 나왔다고 할 만큼 그는 커피 광이었다. 그리고 음악가 바흐도 조금 특이한 커피칸타타란 곡을 작곡했다. 그 시대 커피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렇듯 예술가들은 커피를 통해 상상력을 얻었을까? 짐작하건대 아마도 맛보다는 향이 사람의 감성을 깨우치는 마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 전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난 책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한번 꽂힌 책은 꼭 산다. 그러나 그렇게 사서 쌓아놓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도 꽤 있다. 책 욕심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요즘 서점은 갖가지 소비 공간이 들어선 그야말로 멀티 공간이다. 느리게 즐기던 서점은 아닌 것 같다. 난장처럼 쌓여진 책들도 사람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청소년들은 서점에 와도 그 안의 화려한 소비 공간으로 먼저 발길이 가고 드문드문 어린아이들이 놀이공간처럼 앉아 책을 뒤적이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하지만 겉모습은 좋아 보이나 어수선할 뿐이다.
   옛날 말에 문자향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에서 나오는 향기를 말한 것이다. 문자에 무슨 향이 있겠는가? 문자향이란 좋은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서점에 문자향이 있는 양서가 점점 줄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서점에는 실용서가 넘치고 학생들의 참고서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런 많은 책 더미 속에서 향기 나는 책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문자향이 가득할 것만 같은 베스트셀러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점점 대형서점의 현실이 심각하기만 하다.
   학교 다니던 시절 고서점을 잘 갔다. 그때는 헌책들을 많이 구입해서 보았다. 우선 고서점에 가면 책속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오래된 특이한 향이 난다. 주인의 버림을 받았지만 또 다른 자리에서 소박하게 잘 정리되어 있고 그 가치를 발휘한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는 사람에게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때로는 정말 문자향이 넘치는 귀한 책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세속의 향을 품은, 겉표지 뜯겨진 잡지를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고서점에는 좁지만 긴 의자가 있었다. 낡은 의자지만 꼭 앉고 싶은 편안함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고서점의 그 오래된 책 향이 그립고, 한적한 느림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커피 향과 문자향이 함께 하면 어떨까? 그러니까 서점과 커피전문집, 주위에 찾아보면 커피 전문점이 있는 서점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책다운 책이 많이 있는 아니 문자향이 넘치는 그런 서점의 귀퉁이 작은 커피 집, 책을 구경하고 사러 온 사람들에게 구수한 커피 향이 잠시 여유로움을 주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데 정작 문자향이 넘치는 책들로 채워진 서점을 소망하지만 글을 쓰고 있다는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문자 향을 찾아보기 힘든, 그냥 쌓여있는 그런 책만을 써 온 것은 아닐까?
   갑작스런 고민에 들어선다.




정광애 님은 《에세이문학》등단. 수필집: 『어느 햇빛 좋은 날』『꽃아 피지마라』『현대수필
100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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