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그 자랑스런 내 친구
김학
나와 한글은 나와 아내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다. 내 나이 일곱 살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사귀기 시작한 게 한글문자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듬뿍 들만한 66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새로 사귄 친구는 영어란 녀석이었는데, 그 영어란 녀석은 쉽사리 친해지지 않았다. 토종 말인 한글에 비기면 영 낯설었다. 언제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질감과 거리감을 느껴야 했다. 서로 피부색이 달라서 그런 것일까.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10년 동안이나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가까워질 수 없었다.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익혔지만 필요할 때 귀를 열면 그 말이 잘 들어오지 않고, 입을 벌려도 그 말이 술술 나오지 않았다. 10년공부 나무아비타불 격이라고나 할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또 중국어란 녀석과도 만나게 되었다. 그 녀석과는 대학시절에도 2년이나 더 사귀었지만 그 녀석 역시 낯설기는 영어란 녀석이나 오십보백보였다. 피부색이 같은데도 우리말과는 달랐다. 내가 이 외국어들을 배울 때 지금처럼 외국 나들이가 자유자재로 이뤄졌더라면 열심히 배워서 한글 못지 않게 활용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외국나들이를 꿈도 꾸지 못했을 때였기에 필요한 언어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시험점수를 높게 받으려고 외국어공부를 했었으니…….
대학 후배 J군은 대만 유학을 다녀온 교수에게 별도의 강사료를 지불하면서 과외로 중국어를 배우더니 지금은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거들먹거리며 잘 살고 있다. 딸도 데려다 북경대학에 진학시키는 등 한글보다는 오히려 중국어로 밥벌이를 하며 산다. 방송계 후배 R군은 2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고 있다. 그도 역시 한글보다는 영어를 더 많이 활용하며 밥벌이를 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떠날 때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유창해졌을 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에서나 한글을 만나면 반갑고 고맙다. 이 한글이 없었다면 나는 문맹(文盲)이 되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수필가로 등단하여 문단에 얼굴을 내밀고, 여러 권의 수필집을 냈으며, 여러 개의 문학상도 받고,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문학단체를 맡아 운영한 것도 따지고 보면 한글이 내게 베풀어준 크나큰 시혜가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을 펼치다 보면 한글의 전신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른들이 노심초사해서 만든 글이 바로 위대한 내 친구 한글이니까.
한글은 지구상 400여 개의 문자 가운데 제작자는 물론 제작원리와 이념이 정리되어 있는 유일한 문자라고 한다. 그러기에 유네스코가 우리 한글을 1997년 10월 1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것이다. 세계에는 6,500여 종의 언어가 있다. 유네스코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문자가 없이 말뿐인 6,100여 종의 언어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아주려고 연구한 결과 한글이 최고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문맹퇴치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이라는 사실은 또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언어학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채점한 결과 400여 가지 세계 여러 나라 글자 가운데 한글이 1등을 차지했다는 사실도 자랑할만한 일이 아닌가.
어떤 이는 한글을 지구의 상용문자로 만들려면 우리나라 기독교가 세계 170여 나라에 파견한 만 2천여 선교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하여 해외파견 선교사의 도움을 받자는 이야기다. 참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컴퓨터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래 전에는 원고지에다 볼펜이나 만년필로 글을 썼는데, 몇 년 전부터는 컴퓨터를 활용한다.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한글은 이 컴퓨터와도 궁합이 잘 맞는 과학적인 글자다. 훈민정음을 만들 때는 컴퓨터를 상상조차 못했을 텐데 오늘날 컴퓨터 자판에서 모음(母音)은 오른 손으로, 자음(子音)은 왼손으로 칠 수 있는 게 이 지구상에서 오직 한글밖에 없다니 놀랍다.
컴퓨터 자판에서 영어단어를 입력시켜 보라. 한글과는 달리 자음과 모음을 입력시킬 때 왼손오른손 구분 없이 자판을 두드려야 한다.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그뿐이 아니다. 핸드폰의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디지털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지 않던가. 한 손으로 핸드폰을 조작하여 문자메시지를 보낼 줄 아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젓가락으로 쌀이나 콩을 잘 집을 수 있고, 손가락으로 주산을 놓아 계산을 잘하던 그 손가락으로 이제는 컴퓨터 자판과 핸드폰의 문자메시지를 능수능란하게 조작할 줄 안다. 그게 바로 배달겨레의 후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올 것인가.
한글에는 높은 철학이 담겨져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발음기관의 움직임과 작용, 음성학적 특질을 본떠 만든 게 한글이니 말이다.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와 하늘·땅·사람의 존재구조를 담고 있는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소설가 펄벅은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했던 모양이다.
어느해던가 10월 2일 충청북도 청원에서 열린 제1회 청원국제에세이문학페스티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때마침 그곳에서는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피부병에 걸려 그곳에서 넉 달이나 머물면서 약수로 목욕을 하고 나았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세종대왕을 자랑하는 그곳의 문학행사 이름이 도리어 세종대왕의 마음을 언짢게 한 것 같아 아쉬웠다. 왜 행사이름에 '에세이'니 '페스티벌'이란 영어단어를 빌어다 알파벳이 아니라 한글로 표기해야 했을까. '에세이 페스티벌'이란 영어 대신 '수필문학축제'라고 하면 국제화가 안 되는 것일까. 영어단어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도 그게 진짜 우리말은 아닌데…….
사실 한글이 이렇게 푸대접받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 되었다.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이름들과 신문이나 잡지의 특집기사 명칭도 영어를 사용해야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거리의 상점 간판이나 회사 이름까지도 알파벳을 즐겨 사용한다. 외래어가 야금야금 한글의 영토를 파먹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요새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핸드폰 문자메시지에서 우리말 아닌 변종 한글을 멋대로 사용하면서 한글은 자꾸 이상야릇하게 구겨지고 있다. 공자가 요즘의 중국에 나타나면 개량된 한자를 몰라 문맹이 될 수밖에 없듯, 세종대왕이 우리나라에 나타나더라도 한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통역관을 동반해야 할 것 같아 안타깝다.
성인들이 제 나라 제 고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듯이 위대한 한글도 제 나라 제 백성들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게 당연한 것일까? 그게 세계화라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한글과 친하게 놀 수밖에 없다. 아니 놀아야 한다. 옛날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