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며 사는 기쁨

                                                                                     김 학

 

 

 

 

나는 일요일을 기다린다. 요즘엔 일요일을 기다리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일요일을 기다렸는지 분명한 기억은 없다. 텔레비전의 '1박2일' 같은 인기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나 인기 '주말연속극'을 보고 싶어 그런 것은 아니다. 종교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때 반가운 사람이 나를 찾아오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일요일 저녁 8시쯤이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서울 잠실에 사는 사위 안 준의 전화다. 몇 마디 의례적인 안부를 묻고 나면 사위는 바로 큰 외손자 병현에게 전화기를 건넨다. 일곱 살짜리 병현이와 통화를 하면 딸네식구들의 근황을 손금 보듯 알 수 있어 좋다. 낮에 할머니 집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제 동생 병훈이 소식, 아빠엄마의 일정 그리고 가족들의 건강상태까지도 훤히 알 수 있다.

병현이가 처음 전화를 할 때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니라 전주할아버지 전주할머니라고 불렀다. 전화를 할 때도 "전주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전주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생략하고 그냥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말문을 연다. 왜 호칭을 생략하는지는 아직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전화를 하고나면 병현이가 무척 의젓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목소리도 그렇고 병현이의 말씨 하나하나를 곰곰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미국에 사는 둘째아들의 장남 동윤이는 이제 갓 세 살이다. 그러니 그 아이와는 아직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가끔 둘째아들이나 며느리와 통화를 하다 보면 동윤이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마다 동윤이가 어서 커서 나와 통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나는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병현이와 통화할 때도 네 동생 병훈이를 바꾸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 그 아이 역시 말문이 트지 않은 두 살짜리니 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며 사는 일은 즐겁고도 기쁘다. 기쁜 기다림이 어찌 그것뿐이랴.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의 마음,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익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마음, 출산을 기다리는 임산부의 마음, 제대날짜를 기다리는 병사의 마음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친손자 동현과 외손자 안병현은 동갑내기다. 동현이는 8월 5일 생이고 병현이는 12월 20일 생이니 넉 달 남짓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두 아이가 어울려 노는 걸 보면 동현이가 꽤 어른스럽다. 동현이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한글을 다 읽을 줄 알고 구구단도 줄줄 외운다. 동현이가 한글도 읽을 줄 알고 구구단도 외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병현이도 열심히 노력하여 글자를 읽고 구구단도 외울 줄 안다. 앞으로도 두 아이들이 이렇게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발전하면 좋겠다.

나는 두 아이들에게 생일이나 어린이날, 성탄절이 되면 동화책을 사 보내곤 한다. 다른 손자들이 자라도 또 그럴 것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언젠가 KBS1텔레비전의 '퀴즈대한민국'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쟁쟁한 어른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등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폭넓은 실력을 쌓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나는 내 손자들도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친손자 동현이는 일정한 시각에 고정적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지는 않는다. 어쩌다 제 아빠랑 함께 있을 때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처음엔 동현이와 병현이 두 아이의 목소리 구분이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구분하지 않고 전화를 걸어 준 시각을 보고 판단한다. 일요일 저녁의 전화는 외손자의 전화이고, 불규칙한 시각에 걸어 준 전화는 친손자의 전화라고…….

지금은 어린이나 어른 누구나 전화료 아까운 줄을 모르는 세상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전화료를 아끼려고 별별 지혜를 다 짜냈다. 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낸 어떤 어머니가 서로 이렇게 약속을 했더란다.

"내가 너에게 전화를 걸어서 신호가 세 번 울린 다음 전화를 끊을 테니 바로 이어서 너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신호가 세 번 울리면 끊어라. 그러면 전화료도 올라가지 않고 서로 무사히 잘 있다는 소식을 알 수 있지 않니?"

기막힌 절약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이런 통화를 하는 이들이 있을까? 나도 비슷한 방법으로 핸드폰요금을 아끼고 있다. 큰아들이 핸드폰회사에 다닌 까닭에 내가 큰아들 핸드폰 번호를 누른 뒤 끊으면 큰아들이 즉각 나에게 전화를 걸어 준다. 큰아들의 핸드폰 요금은 회사에서 면제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손자들과 자유자재로 통화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산다. 기다리며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