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 부부는 아담과 이브다. 신에게 복종하지 않을 자유를 가졌던 그들은 결국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타락과 원죄의 상징이 된 아담과 이브는 오랫동안 서양미술의 단골 주제였다. 20세기 화가 파울 클레도 이 커플을 그렸다. 그런데 그가 그린 커플 이미지는 너무도 우스꽝스럽고 생경하다. 왜 이렇게 표현한 걸까?
구상과 추상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던 클레는 어느 미술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화가다. 그의 그림은 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하면서도 위트 있는 표현과 다채로운 색채가 특징이다. 스위스 태생이지만 독일에서 수학하고 명성을 얻은 클레는 42세 때 혁신적인 바우하우스 조형학교 교수가 되었다. 이 그림은 바우하우스 교수로 부임하던 해에 그린 수채화다. 성서에 나오는 인간 창조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을 보면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자라고 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이브는 땋은 머리를 한 어린아이 모습이다. 반면 아담은 크고 각진 얼굴에 콧수염과 귀걸이를 뽐내는 성인 남자로 묘사돼 있다. 아담은 푸른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반면, 오드아이를 가진 이브는 화면 밖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화가는 분명 부부를 묘사했겠지만 부녀처럼 보이기도 하고 암수 한 몸의 운명 공동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 뒤쪽에는 붉은 커튼이 달린 무대가 보인다. 그러니까 어울리지 않는 이 커플은 극장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삶의 목적이나 가치관이 같아야 행복할 수 있다. 함께 있어도 지향점이 다르면 그 관계가 오래가기 힘들다. 그림 속 커플은 한 몸이지만 어울리지도 않고 바라보는 곳도 다르다. 클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붙어 있는 아담과 이브를 통해 행복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부부들의 감춰진 욕망과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