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어찌 따뜻한 봄날만 있을까. 살다보면 거센 폭풍우도 만나기 마련이다. 이 그림 속엔 바다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폭풍우가 불어닥치려는지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한데,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테라스 밖에 서 있다. 남자에게 등을 돌린 여자는 실내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화면 밖 관객만 응시한다. 이들은 대체 누구기에 이 궂은 날에 이러고 있는 걸까?
제임스 티소는 19세기 프랑스 화가지만 영국에서 부와 명성을 얻었다. 이주한 이듬해 런던에 저택을 구입할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상류사회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그의 그림은 비평가들에겐 환영받지 못했지만, 인기리에 팔려 나갔다. 이 그림은 티소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봄날을 담은 것으로, 모델은 화가 자신과 그의 뮤즈 캐슬린 뉴턴이다. 캐슬린은 22세의 젊고 매력적인 아일랜드 여성이었지만 사생아를 둘이나 낳은 이혼녀였다. 둘째는 티소의 아이로 추정되는데, 이 그림은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 티소 집으로 이사 간 무렵에 그려졌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하자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성공한 전문직 화가가 사생아를 둔 이혼녀와 함께 사는 건 당시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편견과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연인 간 사랑싸움의 한 장면을 포착한 이 그림에서도 티소는 캐슬린을 누구보다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화폭에 담았다. 배경의 폭풍우는 연인 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소소한 갈등을 암시한다. 침울해 보이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곧 화해할 작정인지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 제목처럼, 폭풍우는 지나가기 마련이다. 두 사람은 아무리 모진 비바람도 함께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폐결핵을 앓던 캐슬린이 28세에 사망하면서 둘의 행복은 6년 만에 막을 내렸다. 너무 가혹한 폭풍우였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