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트 뵈클린 ‘죽음의 섬’(세 번째 버전), 1883년.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사후 세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은 사후 세계의 모습을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있는 바위섬 모습으로 표현했다. 같은 제목, 같은 구도의 그림을 무려 다섯 점이나 그렸다. 경험하지 못한 죽음의 세계를 화가는 어떻게 그릴 수 있었던 걸까. 왜 그토록 죽음이란 주제에 집착했던 걸까.

바젤 태생의 뵈클린은 독일에서 공부한 뒤 평생 독일과 이탈리아, 스위스를 오가며 작업했다. 1876년부터 9년간 피렌체에서 활동했는데 ‘죽음의 섬’은 이 시기에 그려졌다. 1880년 53세 때 자신의 후원자를 위해 첫 번째 버전을 완성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화가 자신이 소장했다. 남편을 잃은 마리 베르나라는 여성이 이 그림을 보고 크게 감동해 두 번째 버전을 주문했고, 뵈클린은 그의 요청에 따라 섬으로 향하는 배 위의 여성과 관을 추가했다. 죽음에 대한 암시와 동시에 애도의 의미였다. 가장 유명한 건 3년 후 그려진 세 번째 버전으로, 바위산 묘사가 가장 섬세하고 생생하다. 한때 독재자 히틀러가 소장했다. 몽환적인 죽음의 섬은 실제 존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피렌체의 영국묘지와 몬테네그로에 있는 신비한 바위섬 등을 조합해 화가가 상상한 이미지다.

뵈클린이 죽음이란 주제에 집착했던 건, 살면서 죽음을 너무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열네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다섯 명은 어린 시절 사망했고, 다른 세 명도 아버지를 앞서 죽음의 강을 건넜다. 작품에 영감을 준 영국묘지도 신생아 때 죽은 딸 마리아가 묻힌 곳이었다. 죽음이 두려운 진짜 이유는 남겨진 이들의 상실감과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뵈클린은 1888년 죽음의 섬 대신 돌연 ‘삶의 섬’을 그리기 시작했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보여주는 그의 신작은 화가 자신처럼 남겨진 자에 대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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