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 화가다. 여성은 전문 직업을 가질 수 없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화가 아버지 덕에 재능을 살려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이 그림은 그녀가 17세에 그린 것으로 자신의 서명을 넣은 첫 작품이다.
그림은 성경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수산나와 두 노인을 묘사하고 있다. 바빌론에 살던 수산나는 하느님을 섬기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남편인 요아킴은 부유하고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 그의 집에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재판관이었던 두 늙은 장로도 있었는데, 이들은 수산나의 미모에 반해 음욕을 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집 정원에 목욕하러 나온 수산나를 몰래 훔쳐보다가 그녀를 범하려고 했다. 화가는 바로 이 장면을 포착해 그렸다. 수산나는 두 장로의 겁박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공포감과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수직 구도는 그녀에게 가해지는 압박의 정도를 강조하기 위해 선택됐다. 수산나가 강하게 거부하며 소리 지르는 바람에 하인들이 달려 나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원로의 음모로 수산나는 간통죄를 뒤집어쓰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이때 예언자 다니엘이 나타나 공정한 심판으로 그녀의 결백을 밝히고, 거짓 증언으로 죄 없는 여인을 죽이려 했던 장로들이 오히려 처형당한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정의가 끝내 승리한다는 교훈을 전하고 싶었을 테지만 현실은 성경과 달랐다. 이 그림을 그린 이듬해 젠틸레스키는 자신의 그림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범인을 고발해 법정에 세웠고,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지만 실제로 형이 집행되지는 않았다. 다니엘 같은 심판자가 현실에 있을 리 없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수많은 수산나와 장로들이 존재한다. 언제쯤 죄 지은 자가 벌 받고, 선한 약자가 보호받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