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담은 자화상[이은화의 미술시간]
귀스타브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1854년.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이 유명한 그림의 제목은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다. 후원자를 위해 그린 그림인데, 화가 자신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제목을 붙인 걸까?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의 비참한 모습을 종종 그렸던 쿠르베는 그림이 팔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34세가 되던 1853년 운 좋게도 부유한 후원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알프레드 브뤼야스다. 이듬해 5월 쿠르베는 브뤼야스의 초대로 남프랑스 몽펠리에로 가 그를 위해 몇 점의 걸작을 탄생시켰는데, 이 그림도 그중 하나다. 허름한 등산복 차림으로 언덕을 오르는 남자는 화가 자신이다. 화구통을 등에 메고 긴 작대기를 짚은 그는 자유로운 방랑자처럼 묘사돼 있다. 세련된 초록 재킷을 입은 남자는 브뤼야스다. 그는 하인과 개의 보좌를 받으며 길에서 만난 화가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있다. 하인도 고개 숙여 존경심을 표하는 반면, 쿠르베는 꼿꼿하게 뻗은 턱수염을 들이밀며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이 그림이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됐을 때,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돈 많은 후원자가 가난한 예술가에게 모자까지 벗으며 예를 갖춰 인사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 제목도 비평가들이 조롱의 의미로 붙인 것으로, 원래는 ‘만남’이었다. 쿠르베는 부자가 예술가를 존경하고 후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믿었다. 세상의 잣대는 부자와 빈자로 나누지만, 그는 천재성을 지닌 자와 아닌 자로 구분했다. 그만큼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안녕하다’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가난한 예술가가 편안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그는 혁명의 격동기 파리에서 활동했던 정치적인 예술가가 아니었던가. 어쩌면 그림은 편안한 세상에서 부자들의 후원과 민중들의 존경을 받으며 창작에만 열중하고픈, 화가 자신의 바람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