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마음>

 

엄마는 T.V에서  최헌의  노래만 나오면 기분이 좋으셨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어데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소리 . 구성진 목소리와 가사가  엄마의 마음에 닿는 모양이었다.  오동잎과 무슨 사연이 있는 걸가. 부친이 65세에  세상을 떠나셔  24년간 홀로 세월을 보내셨기에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에  가을 바람 따라  님과 함께 여행이라도 하고 싶으셨나 보다.

손자가  재롱을 떠는것을 보거나 성장하는  모습을 볼때면     엄마의  손길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새삼  느껴진다. 엄마는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란 분으로 마음이 여리고 착하신 분이다.나는 어렸을때 엄마를 따라 친척집을 방문 하거나   외출을 하다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다정한 목소리로 너는 어쩌면 엄마를 닮았냐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석  순하게도  생겼다고 덕담들을  해주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칭찬인지  바보 스럽다는  말인지   이해 할수가  없었다.

     엄마가 주신 마음의 선물인데 어떻하겠는가.  생각하면 크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한  엄마의 성품은 고귀 하기만 하다.  무더운 여름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수도가에 엎드리라고 하며  목물 시켜 주시던 어머니 , 커다란 양품그릇에 시원한 얼음 깨어  설탕석어 수박냉차를  해주시면 시원하게 마시는 것을 보고 행복 하셨던 어머니,추운 겨울  난로를 수리하는 철공소에서  어린 아이가  일하는 수리공이 불쌍 하다고 집으로 데려다  길렀던 어머니시다.  그런가 하면 숙부님 내외가 일찍 세상을 떠나 사촌 형제까지 맡아 길렀고 식구 속에   오가는 손님이  많았으나  불평 마디  않하시고  사람사는 곳에 사람이 꼬여야 한다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신  분이다.

 어린시절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인천에서   아버지 계신  함경북도 청진으로 올라 가셨다.  부친이  그곳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만주 목단강 으로 이주하여    생활 하던중   8.15 해방이 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집과 모든 가구를 버리고  우리식구는 부친을 따라 뜨거운 여름날 석탄운반 기차에 몸을 실려 압록강을 건넜다.  압록강을 건너자   잠시 기차는 멈추었다. 사이 내가 목이 마르다고 부친은 물을 구하라 갔다 돌아오는 찰라에 기차는 서서히 떠나고 있었다. 물병을 들고 달려오는 아버지를 보며 소리치던 엄마 ,석탄차 제일 마지막간 탔기에   기차가 달리지만   아버지가 달려오는 것을 볼수 있었다. 아버지의 달리는   속도도  만만치 않았던지  다행히   기차를 잡고 올라탔다.  한숨을 엄마는 얼마나 놀랐을까. 옛날 기차는 느렸나 보다. 지금처럼 성능이 좋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이산 가족이 됬을 것이다.  우리 식구는 몇일 동안의 악몽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인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아마 5 아니면 6 정도 됬을 것같다.

엄마가  17세에 나를 낳아 주시고  어린 나이의 엄마로 나를 끌고 이북과  만주를 남편따라    어려운 삶을 꾸려  갔으니 마음의 고통이란  말할수 없이   들었을 것이다.

 남달리 배운것도 없고 성격도 온순한 울엄마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나의 이민생활을 통해    엄마의 만주 객지생활의 어려운 삶에  공감이 간다.

  아버지는  대동아 전쟁을  거치면서 어려운 역경속에 경험을 통하여  세상을 습득하신 분이다.  성격이 무뚝뚝한 분인데도 사업에는  상술이 있어  후에 성공한  사업가로   많은 형제들 그리고 자식 들을 챙겨 주시고   공장 직원들 한사람 한사람을 보살펴 주신 분이다.   지금  말하자면 경제 민주화를 하신분이며  고용주와 고용인의  동반성장을 주장한 분이다.

와중에 울엄마는 장손인  나를   경제적으로 힘을 실어주려고  애를  꽤나 쓰신것 같다. 당신 나이들어  수족 못쓰면  어떡할래요 . 노후 대책에 대한  울엄마의 걱정을 들을  아버지가 아니었다.   나는 예술도 길고 인생도 줄만 알았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봐서 일가 ,   그저 걱정없이  하루하루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  뿐이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 어느날 저녁 늦게   울엄마와 아버지는  전쟁이 벌어젔다. “  장사하면 해요, 남는것도 없는데 고생만 죽어라 하고  화가난 엄마는  자신의 노후 대책을 세우라는   주장 이었다.  너희들 꿂기지 않을거야하며  큰소리 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 역시 물러갈 기세는 아니다.    엄마는   아버지를 이기려고  고집도  부리지 않으셨다.    미래에 대한 식견과 며누리로서의  자질을 가지신 분으로 대가족을  유감없이 이끌어 오신  마음이 넓은 호수와 같은 어머니 시다.

 계속 세상은 변하고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고  급변하는 물질문명에 인간의 마음마저  싸늘해 지고  있다. 지난날의 엄마의 생애를  조명하며   잠시나마   엄마의 마음에  빠저본다.  나실 괴로움 잊으시고 기를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달도록 고생하시네

 여보 당신 고집도 어지간 하군요. 말좀 듣구료  지금도  엄마의 목소리가 귓전에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