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 / 이융재 - 2024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겨울 갈대는 서슬을 비우며 홀로 여문다. 모두 떠난 빈 들판 한 자락에서 바람 따라 술렁인다. 퍼렇던 서슬은 모두 스러졌다. 젊었던 허벅지는 연약해지고 허리와 머리도 하얗게 흔들린다. 꺽지와 쏘가리, 잠자리와 나비도 떠나가고 없다. 그들이 놀고 간 돋을 양지를 찬바람과 겨울 햇빛이 서성대고 있다. 뒤돌아보지 않고 모두 떠나갔다. 내어 주고 흔들리는 것이 어찌 갈대뿐이던가? 나에게 다가온 정년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공을 세우고 이름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나는 게 하늘의 도'라고 했다. 내가 비록 공도 이름도 이룬 것은 없지만 그런대로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설령 전직의 명예라는 이름은 가질지언정 과거의 직장에서 했던 일은 화제에 오르지 않아야 한다. 이제는 봄옷을 입고 여름을 살아야 한다. 나는 제 철에 맞는 재주도, 주변머리도, 여름옷도 없지 않은가.

이제는 봄옷을 다려야 한다. 아침마다 사무실에 일찍 나와 책상을 정리한다. 아직은 꽤 남았지만, 퇴직하는 날 쉽게 빈손으로 일어서려고 조금씩 미리 옮겨놓는다. 이른 시간이라 청사에는 숙직한 직원 외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만의 공간은 호젓함과 느긋함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나에게 안긴다.

사십 년 가까운 시간의 궤적은 제법 무게를 갖는다. 버리고 비우며 산다고 나름대로 애쓴 것 같은데도 이 정도이다. 눈이 어두워 보자기를 알맹이인 양 쥐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대개는 헛것이었다. 버려야 할 것들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과의 관계조차 그런 게 아닌가 싶어 두렵기도 하다.

가장 오래 눈길을 주는 건 역시 명함이다. 명함은 인연이 만드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만든다고 했다. 많기도 참 많다. 소식이 끊기거나 기억이 안 나는 사람이 더 많지만, 내게 왔던 이름들을 함부로 버릴 수 없어 집으로 가져갈 상자 속에 넣는다. 제 몸과 함께 태울 때까지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이름이 박힌 명함들도 고스란히 남았다. 평직원, 일선 군청의 간부, 도청의 중간 간부, 일선 군청의 부책임자일 때…. 변화도 많았다. 세상을 양손에 쥔 것 같은 성취도,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좌절도 있었다. 북쪽 고을도 갔고, 남쪽 고을도 인연을 맺었다. 헤아려 보니 여덟 고을에 길을 만들었다. 구부리고 움츠렸던 세월이 지금 돌아보니 평평하게 흘러온 시간이었다. 살아온 인생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가느다란 직선 하나일 것이다.

사는 건 그 선마저도 조금씩 지워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하나씩 지우는 것이다. 이 책상에, 이 사무실에, 이 건물 청사에 한 사람이 머물다 간 흔적을 지워가는 것이다. 내가 떠난 뒤 금세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우고 이 책상에 자신의 일상을 덧칠할 것이다. 조금 감추고픈 편지 한두 장 들어있던, 열쇠가 달린 서랍에는 또 누군가가 향내 나는 사연을 고이 넣어둘 것이다.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이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하얗게 지워지고 말 것이다.

어찌 이곳에서뿐일까. 세상에서의 나 역시 그렇게 조금씩 흔적을 지워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뭇없이 흐려지는 것이리라. 그 자리에 또 누군가 서서 삶을 노래하는 것이리라.

한 페이지를 접는 계절이 겨울이라 좋다. 무성했던 나뭇잎과 알토란같던 열매를 전부 거두어들이고 흔적이 남지 않은 시간이라서 다행이다. 행여 눈이 쌓인 소나무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갈 수도 있을 터이니.

낯설고 빈 책상을 둘러본 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낡은 나의 몸을 기대게 해준 의자에 수고가 많았다고 인사한다. 미리 조금씩 정리해둔 덕분에 따로 들고 나갈 건 없다. 스스로와 약속한 대로 바람인 듯 나서면 그만이다. 외투를 집어 든다. 오늘은 기억의 모든 걸 비우고 양손에 추억만 담는다.

천천히 걸어서 사무실 문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후배 몇 명이 청사 바깥까지 전송하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미리 부탁한 대로 해달라고 눈짓으로 눌러 앉힌다. 끝내 바람 닮은 뒷모습이기를 소망한다. 문을 나서는 순간, 진공의 공간에서 모든 소리가 멈춘다.

청사 곳곳에 묻어둔 청춘이 따라나서겠다고 아우성친다. 하지만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청춘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이곳에 벽으로, 천장으로, 바닥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청사 정문에 서니, 퇴직하던 날 눈 내린 히말라야시더 등걸에 기대어 하염없이 울던 옛 선배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울지는 않으리라.

울음으로는 지금을 위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쿵쿵 소리라도 낼 듯, 큰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새로운 세상이 와락 안긴다. 아침에 출근할 때와 달라진 건 없겠지만, 이 순간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리라.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본다. 처의 승용차에 몸을 맡긴다.

정문을 나서니 갈 곳이 없다. 오른쪽 아니면 왼쪽, 낯선 골목에 들어선 아이처럼 잠시 우두망찰이다. 이런 흐릿한 정신으로 집에 바로 갈 수는 없으리라. 이쁜이와 순득이가 지키는 집에 불쑥 들어서면 개들이 놀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낼 생각도 없다. 불러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의 시간에도 신세를 지고 싶지 않은 결벽 때문이다. 가야산 깊은 자락, 백운동의 구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보아야겠다.

사랑하고 미워하던 것들과의 안녕이다. 그동안은 열심히 살아왔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아니, 자신을 너무 다그치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끝내 돈과는 불화했고, 출세로 가는 길에서 발걸음은 늘 어긋나 있었다. 여전히 가난하고 내일의 밥을 걱정해야 하지만, 다시 산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갈대는 논둑 한 자락, 잎 떨어진 풀숲 속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린다. 모두가 떠나고 물빛만 감도는 겨울 하늘을 향해 마지막 남은 은실 발을 쏘아 올린다. 지나간 추억을 잊지 못해 한 가닥 추위에도 몸을 추스른다. 끝내 그의 날개는 학처럼 고고하게 빛나며, 깃은 제비처럼 가볍고 날렵하기만 하다. 새로이 씨앗 하나 내리고 빈 곳을 채운다. 바람이 부는 대로 자신을 낮추고 친구와 무리 지어 영글 것이다.

나의 이름도 계절에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 금성은 뜨는 시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나도 새벽에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을 보면서 일터에 나갔다가, 해진 뒤에 서쪽 하늘의 영롱한 개밥바라기의 붉은빛을 바라보며 일터에서 돌아왔다. 사랑과 미움은 옛일로 보내고, 한탄과 시름은 뒤로 돌리련다. 애꿎은 금성의 처연한 빛 속으로 그 모두를 녹여 보낸다.

이제 겨우 다리 하나 건넜다. 내일이면 또 저 하늘에 사다리 걸고, 호미 하나 들고 오르리라. 태양이 가까운 곳까지 등뼈가 녹아내리도록 오르는 모습을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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