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Detour) /김영화

 

 “어, 우회하라고?” 이 지점 부터 5번 고속도로를 막았으니 돌아가라고 네비게이터가 말한다. 오늘 목적지는 보니타 등대(The Point of Bonita Lighthouse). 우리 집에서 404 마일을 5번 북쪽을 향해 운전 해야 한다. 캐스테익 (CASTAIC)에서 우회했다. 해 뜨기 바로 직전의 가장 어두운 새벽이고, 짙은 안개로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이다. 큰 길이 나오길 바라면서 캄캄하고 꼬불꼬불한 자드락길을 수 없이 오르고 내렸다. 우리 차 앞 뒤로 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처음 가 보는 미지의 길이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깊은 숲 속을 얼마나 오래 지났을까? 시간을 보니 한 시간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3~4시간 걸린 기분이다. 그 때, 동쪽 산위에서 불덩어리 같은 해가 작열하게 솟아올라 새까맣던 산자락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와 ~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한 일출에 우리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쁨의 환호성이 터졌다. 산 넘어오는 낮은 자락의 작은 마을은 테마극장처럼 나무에 메달아 놓은 전구들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하늘의 별들은 적막한 깊은 산 위로 쏟아지고 있다.

 

  사전에 우회(detour)하다는 말은 ‘곧바로 가지 않고 무언가를 피해서 돌아서 가다.’라 고 써 있다. 생각해보니 근 반세기의 나의 이민 생활에도 수 없이 많은 우회를 했다. 부푼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 시카고에 도착했다. 춥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첫째 아들을 낳았다.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정착하려 했던 계획을 바꾸었다.   작은 승용차에 트레일러를 달고 가는 와이오밍(Wyoming)주의 눈이 쌓인 산 중턱에서 차가 뒤로 밀려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견디며 오래곤 주로 이사했다. 얼마나 무모한 젊은 시절이었던가! 오래곤 주에서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가주로 이사를 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실수와 우회를 했다.

 

  계획했던 시간에 San Francisco, 금문교의 서쪽에 있는 등대(The point of Bonita light house)에 도착했다. 해상 300 피트 높이의 등대로서 1855년에 완공되었다. 1874 년에 스팀 사이렌으로 안개 경보를 위해 지어진 건물을 1906년에 등대지기를 위한 집으로 개조했다.

 

주차장에 내려서 약 0.5 마일을 걸어 들어가는 길에 몇 미터 안 되는 바위 터널을 지난다. 연 갈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사이프러스 나무와 파란색 바닷물이 절묘하게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풍경이다. 터널 입구의 주황색 이끼는 작은 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 바닷가 가까이에서 바다 사자들이 한가롭게 놀고 갈매기와 여러 종류의 새들이 바위에서 은빛 출렁이는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강한 모래 바람을 맞으며 금문교 서쪽 주변을 걸었다. 주변의 철조망에 사랑의 약속으로 걸어 놓은 수많은 열쇠들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쇠를 걸어가며 우회함 없는 사랑을 지키겠다고 약속을 하였을 것이다. 나름 손가락 걸며 한 약속보다 더 굳은 맹세로 했겠지만 수 없이 싸우고, 헤어지며 우회해서 지키기도 하고, 영영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하니 녹슬어진 열쇠들이 쓸쓸해 보인다.

 

  오늘 우리가 고속도로에서 우회하여야 했던 것처럼 우리 인생길에도 예고 없이 다른 길로 돌아가야만 할 경우가 많다. 우회로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네 삶이 평소5번 고속도로처럼 막힘없이 곧 바르게 쭉 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늘처럼 막일 때가 있다. 어떤 장애물이 내 앞을 막을 경우가 있고 의도적으로 중간에 계획을 바꾸어 우회 하기도 한다. 걸림돌을 넘을 수 없다면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계획하지도 않았던 일이 갑자기 우리 길을 막을 때는 당황하게 된다.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므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회하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실수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게도 한다. 때로는 오늘처럼 상상도 못했던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일출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기뻐할 날이 오기도 한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도 한다. 가끔씩은 반짝이는 별과 오색찬란한 전구들로 장식한 아담한 테마극장 같은 곳을 지나게 하는 우회하는 길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