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백 년의 지혜’를 읽고 / 이정호
한국 방문때 머무는 집 근처 교회에서 김형석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 분이 쓴 책을 구입했고 사인도 받았다. 백살이 넘은 교수가 삶에서 경험한 어떤 지혜를 말할 것인가가 궁금했고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은 지상 신문에 연재한 것을 정리해서 펴 낸 책이라고 한다.
그 교수는 100세를 넘어 살고 있어 그의 부인도 오래 살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회갑 때 쯤해서 심한 뇌졸증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기적같이 목숨은 구할 수 있었으나 언어 기능은 상실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면서 20년의 세월을 간호했다고 한다. 병원치료를 단념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 마지막 기도를 드렸는데 의식이 없는 줄 알았던 아내가 기도가 끝났을 때 또렷이 “아멘”이라고 했다. 그것이 놀랍게도 20여년 만에 들려준 그녀의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김형석 교수는 아흔이 되면서 외로움을 더 느꼈다고 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노인들은 많다. 그들은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그런데 그는 자신있게 그 고독을 극복해 냈다고 말한다. 그 원동력은 일을 위하고 사랑하는 열정이라고 한다. 그 일에서 오는 위로와 보람이 고독한 심정과 시간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 일은 보수나 소유를 위한 일이 아니고 친구들과 사회에 무엇인가 남겨주고 싶은 사명감 비슷한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은 남을 위하고 사랑하는 힘이 고독을 극복하는 원천이 된 것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의무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한다. 나무는 홀로일 때는 영향이 크지 않다가 같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게 되면 그 공동체는 역사의 주인이 된다. 그 숲이 한 산을 차지하면 위대한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지성인의 사명이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큰 딸 H는 1960년에 미국 유학을 갔다. 가까이 있는 교회에서 유학생들을 위한 저녁파티에 갔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이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후에 그 부인 집에 가게 되었고 여러 가지 한국 애기를 나누다가, 하나밖에 없는 그 집 아들이 6.25전쟁 때 한국에 출전했다가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의 하늘은 한없이 맑은데,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면 부모님과 함께 와보고 싶다는 편지가 뒤늦게 전달된 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 아들이 쓰던 방도 둘러보게 되었고 딸은 기숙사로 돌아와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진보로 자부하면서 폐쇄적 이념에 붙잡혀 있는 정치인들,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어 열린 미래로 가지 못하는 보주주의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거짓과 악을 버리고 진실과 선을 위하는 삶이다. 인간 사랑이 역사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쉽게 가르쳐준 것이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종교적 교훈이다. 인간애의 구원이다. 사랑은 공존의 가치와 질서이며 인간 완성의 희망과 이상이라고 말한다.
김형석 교수의 글은 대체적으로 어려움 없이 쉽게 읽힌다. 그가 말하는 것을 다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읽고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그가 저술한 다른 책을 읽어 보고 싶다.
김형석 교수의 "책임과 의무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명감"을 감지하는가 아닌가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바싹 다가옵니다. 그 분의 지혜를 선생님의 수필로 전해받아 더욱 진지하게 성찰하게 됐어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