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리에서 / 지소현 - 제43회 강원문학상 당선작

 

 

마지리(馬池理)는 내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다. 발음 자체가 매끄럽고 리듬감 있어서 마치 유럽의 어느 화려한 문화예술 도시 같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세련된 느낌과는 달리 하늘에 맞닿은 산등선 외에는 눈길 줄 곳 없는 평창의 작은 산촌이다.

나 어렸을 적에는 겹겹이 어깨를 포갠 크고 작은 산 발치로 31번 국도인 신작로가 읍내와 영월로 이어져 다른 세상의 존재를 증명할 뿐, 캄캄했었다. 신작로와 잇닿은 고산, 시동, 아파실, 솟골, 깊은 골짜기에는 화전민들이 살았다.

우리 집은 솟골 어귀 신작로 가에 외딸게 있었는데 항상 열려 있는 사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들어와 마루에서 쉬어갔다. 그리고 읍내에서 자전거로 한나절 길을 달려온 우체부가 골짜기로 가는 편지들을 맡겨놓기도 했다.

우편물 속에는 빛바랜 신문도 있었다. 이장을 지낸 작은아버지가 구독자였다. 고등학생인 나는 때때로 작은아버지의 방치된 신문을 차지했다. 국어 선생님께서 논리적인 글을 익히려면 신문 사설을 정독하라고 권유해 욕심을 낸 것이다.

어느 날이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글 한 편을 만났다. 제목과 글쓴이는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도 다시 보고 싶은 대목이 있었다. “정감록에서 ‘영월, 평창, 정선’에 철마가 울면 평화가 온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철마는 기차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입증 가능한 논리적 글에서 발견한 신비주의적 예문이 너무나 특별해 오려서 노트 뒷장에 붙여 놓기까지 했다.

나는 정감록(鄭鑑錄)을 읽은 적이 없었다. 다만 조선 시대 예언서이며 풍수지리설과 변혁을 바라는 민중 심리가 녹아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광산 개발이 활발한 영월이나 정선에서는 커다란 기적 소리가 수시로 울렸다. 그러나 평창은 철도가 설치될만한 건더기가 없었다. 외부 침략에 시달려 온 조상들은 절절하게 평화를 염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이든 간절한 바람을 포기할 수 없어서 마지노선으로서 평창의 철마를 들먹인 것 아닐까. 마치 복권 한 장에 가난 탈출 꿈을 거는 간절함처럼 말이다.

오직 신작로만이 세상을 향한 확대경이었던 마지리에서의 나의 성장기! 마을에는 70년대 말에 전기가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흑백텔레비전 안테나가 온 동네 지붕 위에 솟을 무렵 그곳을 떠나왔다. 큰오빠가 사는 평창읍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 후에 나는 결혼과 함께 춘천에서 제2의 고향을 만들었다.

살면서 가끔 심란한 일로 뒤척이다 잠든 밤이면, 꿈에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 집이 보였다. 마흔 즈음, 자가용에 두 아들을 싣고 잊히지 않는 그곳을 찾아갔었다. 간절하게 그리웠던 집은 흔적조차 없었고 부모님의 재산목록 1호였던 근처 3천여 평 밭에는 시멘트로 배수관을 만드는 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들들 얼굴에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없는 산골 풍경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녀석들을 솟골 계곡 너럭바위에 앉혀 놓고 전설을 들려주며 분위기를 돋우려고 애썼다.

‘옛날 나씨(羅氏)가문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갓난아기 방에서 병사들의 소리가 나고 3일이 지나자 벽 시렁에 아기가 올라가 있었다. 집안에 장수가 있으면 역모죄로 몰려 3대가 멸족을 당할 수도 있었다. 두려웠던 가족들은 의논 끝에 아기를 압사시켰다. 3일 후,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면서 연못이 생겼고, 그곳에서 말이 났다. 아기 장수 몫으로 하늘에서 낸 용마였다. 주인 잃은 말은 3일간 사납게 울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시동 골짜기 입구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다. 사람들은 말을 그 자리에다 묻어 주었고, 지금까지 말이 난 못과 무덤이 있으며 마을 이름도 마지리(馬池理)가 되었다.’

그렇게 나 혼자만 즐거웠던 가족 나들이 후에 또다시 20년이 지났다. 여유로운 60대에 이른 어느 가을날 홀로 고향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번성의 일번지였던 신작로가 고즈넉한 놀이터처럼 비어있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교통망 구축으로 자동차 전용 도로가 산허리를 뚫고 곧게 뻗었기 때문이다.

천지개벽 현장에서 40여 년 전 정감록을 들춰낸 신문의 글이 떠올랐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예언의 성취현장도 생각났다. 이 역시 평창동계올림픽이 낳은 것으로서 경강선의 평창역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철마의 울음소리가 평창 산천을 휘감아 돌고, 역사상 세계 최대 규모였다는 그해 겨울 대회는 평화 올림픽이라고도 불리지 않던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나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나는 한적한 신작로에 우두커니 서서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를 곱씹었다. 용마와 아기 장수의 전설을 믿으며 느릿느릿 살았던 유년기, 커다란 시멘트 흄관을 실어 나르던 구불구불한 신작로, 산허리를 가로지른 곧고 넓은 길, 평화를 부른다는 철마의 울음...

삶의 주기마다 다른 모습으로 마주친 마지리(馬池里)였다. 하지만 구름을 이고 부채꼴로 늘어선 산등성이만큼은 항상 포근했다. 무엇이 이처럼 한결같이 나를 품어 줄 수 있을까. 태가 묻힌 고향이야말로 영원한 안식처임을 새삼 알았다. 그 소중한 땅이 포함된 평창이 세계사에 이름도 올렸으니 너무나 자랑스럽다. 내 가슴에는 마지리가 가장 찬란한 유적지로 새겨져 세상 끝날까지 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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