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먹으며, 정들고

이현숙 재미수필가

2018.01.11

이현숙
재미수필가


미국 LA는 여러 나라의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추석에는 중국의 월병을 선물로 받았고, 추수감사절에 가족들이 모여 칠면조와 햄으로 전통적인 저녁 식사를 했다. 
페루의 세비체나 베트남의 쌀국수 또 태국의 톰얌꿍,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원하면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음식에는 민족적, 지역적 특색이 담겨 있기에 흥미롭다. 
특히 한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난주에 멕시코인 제임스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의 아들과 딸 조카들까지 열 명의 가족이 긴 테이블에 앉아서 타말레스(Tamales)를 만들고, 그의 장모인 마리아가 앞치마를 두른 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얼른 손을 씻고 그들 사이에 앉아 반죽 그릇을 내 앞으로 당기며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타말레스는 멕시코의 전통음식이다.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걸려서 주로 명절 때 만든다.
소고기와 닭고기는 삶아서 몰레라는 소스로 양념을 한다.
전날부터 물에 불려 놓은 옥수수 잎의 가운데에, 옥수수가루와 만테카라는 돼지기름으로 반죽한 마사(Masa)를 펴 바른다.
그 위에 양념한 고기나 치즈와 할라페뇨 고추를 넣고 보자기로 싸듯 잘 여미면 된다. 
손바닥만 하게 만들어진 것을 찜통에 쪄내어 바로 먹기도 하고, 냉동시켜 보관한다. 
먹을 때 옥수수 잎은 벗겨 내고 옥수수떡에 쌓인 고기나 치즈와 고추를 먹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 가득 고소하게 휘감기는 감칠맛과 양념한 고기의 매콤한 소스가 곁들여지며 입맛을 돋운다. 

내가 처음 맛본 타말레스 이야기를 해 주었다.
미국에 와서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멕시칸 재래시장 구경을 갔다.
입구에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을 앞에 놓고 앉은 것을 보았다.
순간 그 안에 찐 옥수수와 고구마가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데려간 사람은 찜통에 담긴 타말레스를 하나 사주고는 앞서서 걸어갔다. 
한입 힘들게 베어 물었는데 씹으려 애를 써도 얼마나 질긴지 잘라지지 않아 삼킬 수가 없었다.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얼른 뱉어 가방에 쑤셔 넣고, 맛이 어떠냐고 물어볼까 봐 집에 올 때까지 안절부절 진땀을 흘렸었다.

남편은 오래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멕시코로 정상회담을 갔을 때의 일화가 생각났단다. 
미국 대통령이 왔기에 온갖 정성을 들여 만찬회를 열었다.
상석에 양국의 대통령 내외와 각료들이 앉았다.
그런데 음식을 먹던 부시 대통령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담당자가 놀라서 그에게 달려갔다. 
메뉴가 타말레스였는데 그가 껍질째 그냥 입에 넣은 것이다.
몸을 뒤로 돌려 입안의 것을 뱉어내고, 관계자가 껍질을 벗겨주어 위기를 모면했단다. 
멕시코의 전통음식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느냐는 질타보다 ‘뭐 이런 음식이 다 있어’ 하는 일그러진 표정이 캡처되어 한동안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했다. 

어릴 적 명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와 송편을 만들던 때가 기억났다.
곱게 빚어야 시집가서 예쁜 딸 낳는다는 말에 정성 들여 손을 움직였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감추어진 누군가의 비화를 들썩거리기도 했다. 
이웃이나 친지의 뒷말이 양념으로 가미되면 왜 그리 재밌던지. 손만큼이나 입도 바삐 움직이며 정을 나누던 그때가 떠오른다.
제임스의 가족도 3대가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며 나누는 사랑은 삶의 원천이고 역사와 전통을 나누는 소중한 의식과도 같다.
마리아가 내 손을 잡으며 “너도 이제 우리 가족”이라고 말하자 모두 손뼉을 치며 찬성했다. 
타말레스로 나는 히스패닉 제임스와 한가족이 되었다.
다음에는 메누도(Munudo·내장탕)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내 등을 토닥였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잦은 교류와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며 다른 문화를 쉽게 접한다.
특히 생활이 풍요해지면서 음식은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벗어나 건강식의 유행을 타고 관심을 끌고 있다.
나라마다, 지역에 따라 특유의 맛뿐 아니라 일상의 모습과 사고방식이 담겨 있기에 먹는 것만으로도 소통을 이끌어낸다.
또 음식으로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이어진다.
미국에 살지만 생일날이면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설날에 떡국이 빠지면 새해를 맞지 못한 듯 허전하다. 
추석날이면 한인타운에 있는 떡집의 송편 가격이 평소보다 두 배로 뛰어도 동이 난다.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날만의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는 것이 의식 속에 깊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음식을, 함께 먹으니 상대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고 친해져 한솥밥에 정이 생기는 것이다. 
환경과 모습은 달라도 먹고사는 방식은 비슷하다.
먹으며 정들고 서로의 삶을 알아가게 된다.
타말레스가 이어준 가족의 연이다. 
이현숙
재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