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밤새 안녕’ 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느낀다. 제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제리는 오래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 내가 만난 적이 없는 시누이의 절친이다. 결혼 전부터 남편과 한 달에 한번정도 그 집을 방문해 식사하며 시간을 나누는 사이다. 오늘은 그녀가 너무나 허약해 침대 위에 누워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사간 타코도 입맛이 없다고 했다. 양말 위로 보이는 앙상한 발목과 자주 빛 피멍이든 종아리는 87세가 넘은 그녀가 하루하루 삶과 싸운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래는 지난주에 방문하기로 했었다.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그녀의 며느리가 전화를 했다. 시어머니가 몸이 않 좋아 병원에 가야하니 오늘 약속을 취소해야겠단다. 오후에 방광염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나마 안심을 했다.
그녀가 퇴원하고 몸을 추스렸으려니 하고 오늘 방문한 것이다. 물을 약이라 생각하고 드세요. 화장실 가기 힘들고 불편해. 시아버지도 친정엄마도 방광염으로 고생을 많아했었다. 두 분의 병시중을 들었기에 그 심정을 이해했다. 침대가 자신의 온전한 세상인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자신의 소변이든 통을 비우게 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물병의 물은 줄어들지 않아 옆에 지키고 앉아 반강제로 권하고 했었다. 양로병원에 있던 친정엄마도 성화에 못 이겨 한 모금 마시고는 나중에 화를 냈다.
기저귀가 젖어가는 느낌도, 누군가가 바꿔 줄 때까지 기다리며 느끼는 척척한 불쾌한 느낌도, 막상 반 기계적으로 귀찮다는, 왜 적셨느냐는 질책이 느껴지는 손길에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다. 내 마음을 니가 아니.
평상시 화를 내지 않는 엄마의 외침에 나는 그만 바닥으로 주저앉고 싶었다. 그후로 나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제리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늙어가는 것은 서럽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은 더욱 서러울 것이다. 차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얼마나 더 제리를 만나러 올지 모르지만 앞으로 더욱 자주 와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살아 있는 모두가 겪어야 할 길이고, 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 말이 더 서러워 또 울었다.
2년 전, 12월 23일 제리의 남편 에밀리오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도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에밀리오가 멀지 않은 것 같다고 했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 그는 천국으로 갔다. 슬픈 날이다. 가슴이 멍먹하다.
공감가는 심리묘사, 감정이 이입되어 스며듭니다.
좋은 글, 늘 감동있는 글 표현이 좋고 간결한 문체며
정서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따뜻하면서도 건강한
균형감있는 두 다리 마음으로 이렇게 서게 하네요.
어느 듯 나, 거기 어디쯤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