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불 어치의 행복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 부잣집 마나님이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사는 것보다, 더 큰 충만감을 단돈 6불로 즐기시는 분이 계시다. 바로 시아버님이시다. 연세가 82세이신데 몇 년 사이에 건강이 부쩍 나빠지셨다. 단단하시던 체력과 웬만한 계산은 암산으로 척척 넘겨 버리시던 총명도 수문을 열어 놓은 댐처럼 한순간 싸악 빠져나가 버리고, 세월의 이끼로 검버섯 핀 얼굴과 지탱하기 힘겨운 육체에 기억력마저 희미해지셨다.
그래도 잊지 않고 매주 두 번, 좋아하는 햄버거 대신 3불 어치 복권을 사고 발표되는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신다. 그 며칠 동안 ‘당첨이 되면’이라는 꿈속에서 즐거워하신다. 비록 지금까지 큰돈은커녕 본전도 못 건졌지만, 실망도 안하고 항상 ‘다음번에는’으로 윤색된 기대감으로 대박 터지기를 기다리신다.
목요일과 일요일 아침, 일찍 울리는 전화는 분명히 아버님이 거신 것이다. 밤새 어찌 참으셨는지 대뜸,
“얘야, 번호 불러라.”
하시면 신문을 뒤적여 당첨번호를 천천히 불러드린다. 제대로 받아 적으셨는지 걱정이 되어 읽어보시라고 확인해 본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 시험 보듯 신중하게 되받아넘기시는 아버님의 리듬에 맞추어 번호를 읽다 보면, 미처 마무리 인사를 할 새도 안 주고 서둘러 전화를 끊으신다. 빨리 한 줄 한 줄 차례로 맞혀 봐야 했기에…. 혼자서 책상에 앉아서 대단한 의식을 치르듯 몇 번씩 되짚으실 것이다.
식구들이 많아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일일이 선물을 살 수 없기에 번호를 뽑아 일인당 15불상당의 선물을 준비한다. 지난해 작은아들이 뽑은 5번이 바로 할아버지였다. 둘째 고모를 담당하게 된 큰아들은 무엇을 사야할까 며칠 내내 고민을 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여유를 부렸다. 큰아들이,
“너 할아버지 뭐 사 드릴 거야?”
“응, 로터리 티켓.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잖아.”
담담히 이야기해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가족들 모두가 인정하는 아버님의 유일한 오락이자 취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쓸데없는데 돈을 낭비한다고 싫어하는 어머님 눈치가 보이셨는지 슬쩍 전화하셨다.
“얘! 이번엔 상금이 밀려서 엄청나다는구나. 복권 좀 사 와라.”
“네. 그런데 아버님. 상금 타시면 어디에 쓰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어디다 쓰긴. 너무나 많지. 엄마랑 여행도 가고, 고향에 가서 선산도 손질하고, 제집 한 칸 못 지닌 자식들 하나씩 장만해 주고, 손자들 학비 대주고, 또 차도 한 대씩 굴리게 해주고 싶다. 그동안 뭐 했는지, 참.”
“그런데 아버님. 만약 복권에 당첨되시면 저한테 제일 많이 주셔야 돼요.”
“왜?”
“당첨 번호도 매번 알려 드리고, 복권도 사드리잖아요. 전 투자자예요.”
“그러마.”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구두계약을 했다.
평생 가족들의 생계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이 지니신 모든 진액을 다 빼 내주시고 빈껍데기로 남은 분. 가지고 계신 재산이 많지 않아 자식들에게 떡 시루 떼어 내주듯 한 뭉텅이씩 나누어 줄 수 없음을 한탄하신다. 이민 생활에 허덕이는 자식들이 안타까워 헐값에 팔아치우고 온 한국 땅값의 차액을 두고두고 마음 쓰려 하신다. 이젠 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한계점을 통감하며 마지막 기대로 복권에 집착하고 의지하신다.
부모의 마음은 가난한 자식에게 효도 받는 애잔한 기쁨보다 차라리 부자인 자식에게 버림받는 아픔을 감수하고픈 내리사랑이란다. 하나라도 더 집어주고 싶은 심정이시리라.
지난주에 아버님이 갑자기 혼절하셔서 달려갔었다. 우황청심환을 드시고 손발을 따드리니 한 시간쯤 후에 정신을 차리셨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또 놀라게시면 제가 복권 안 사 드릴 거예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며 괜한 응석을 부려보았다.
“응, 안 사주면 내가 사지 뭐.”
농으로 받아넘기신다.
3불 어치 안에는 시아버님의 소박한 꿈이 담겼기에 손에 꼭 쥐면서 행복해하신다. 당첨되기를 바라는 아버님과 달리, 사 드릴 때마다 나는 다음번을 기대하며 기다리시게 당첨이 안 되기를 바라는 나쁜 며느리가 된다. 3불로 사는 행복이 아버님에게 끊임없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