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굿 닥터의 바람이 분다

“한국 드라마 ‘굿 닥터’ 리메이크작미국서 합격점 받고 풀 시즌 제작자부심 느끼며 방영시간만 기다려 ”

2017.11.02

이현숙
이현숙


미국에 ‘더 굿 닥터’의 바람이 분다.
‘더 굿 닥터’는 미국의 3대 방송사인 ABC에서 9월25일부터 매주 월요일 황금시간대인 밤 10시에 방송하는 드라마다.
몇 달 전부터 버스와 전철 또 정거장과 고속도로변의 빌보드판 등에 포스터가 붙고, 방송과 온라인에서는 수시로 예고편이 나와서 주위의 관심을 끌었다.
홍보예산만 150억 원이고, 예고편의 조회 수가 2개월 만에 3천만 뷰에 달했단다.

남편은 혹시 본방송을 놓칠까 봐 미리 녹화를 예약했다.
자폐증을 앓는 천재 의사가 주위의 편견을 극복해내며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의학 드라마라는 내용에 관심이 간단다.
영화광이지만 드라마는 잘 보지 않던 사람이라 의외였다.
며칠 전 손자가 자폐증(Autism)이라 상담을 받는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천재 아인슈타인은 신발끈을 매지 못했다는 말로 은근히 손자를 그쪽으로 몰아갔다.
나는 손자가 게임 중독으로 인해 그 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어 사회성이 부족하고 타인과 의사소통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니 생활방식을 바꾸면 좋아질 것이라며 병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참이었다.

‘더 굿 닥터’의 첫 회는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앓는 주인공 숀 머피가 미국 산호세 세인트 보나벤처 병원으로 가는 여정으로 시작했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서 의사 숀 머피의 천재성을 보이며 속도감과 긴장감 있게 펼쳐졌다.
그 후 반응이 뜨거웠다.
18~49세 시청자를 대상으로 집계한 시청률에서 2.2%를 기록하며 타 방송국의 경쟁작들을 멀찌감치 제쳤다고 한다.
미국 연예지 할리우드리포트는 ‘더 굿 닥터’의 기록은 ABC가 방송한 월요일 드라마의 첫 시청률 중 21년 만에 최고라고 했다.
그동안 방영된 의학 드라마와 차원이 다르고 특히 자폐증을 앓고 있는 환자나 그 가족에게 희망을 줬다며 SNS에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단다.

제2화가 시작하는 화면에 자막이 뜨는데 코리안이라는 단어가 지나갔다.
어머머, 뭐지? 순간이라 자세한 내용을 읽지 못했다.
언제나 어디서든 코리아라는 소리가 들리거나 글자가 보이면 온몸의 세포가 자동으로 반사작용을 한다.
길에서 현대나 기아 자동차를 봐도, 고속도로 옆의 큰 광고판에 삼성이나 LG 사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니 이것도 중증의 병이 아닐까. 드라마를 보며 궁금증이 가라앉지 않아 핸드폰으로 ‘더 굿 닥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2013년 KBS2 TV에서 방영한 ‘굿 닥터’를 리메이크(remake)한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미국 지상파 TV의 프라임타임대에 편성된 한국 드라마 1호가 된 것이다.

리메이크란 이미 발표된 작품을 다시 만드는 것으로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지만 대체로 원작의 의도를 충실히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
리메이크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할 정도로 성공률은 미지수다.
몇 년 전에 올드 보이(Old Boy)가 미국판 영화로 리메이크되었지만, 흡입력이 없는 평범한 내용으로 변해 실망했듯이 원작과 비교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각색의 힘도 큰 작용을 했다.
미국 프로덕션 3AD의 대표가 의학 드라마 하우스(House)의 작가인 데이비드 쇼어의 참여를 끌어냈다.
쇼어는 “‘하우스’에 괴짜 의사가 나온다면, ‘굿 닥터’는 착한 의사이기에 기존 의학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의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아 매력을 느꼈다”고 인터뷰를 했다.

보통 드라마는 여성들이 주 타깃이다.
어떤 모임이든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그중 한두 명은 한국 연속극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난다.
인터넷에서 영어자막을 읽으며 보는데 경치와 배경음악 그리고 스토리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한정적인 사람들에 의해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다르다.
원작에 충실하게 줄거리를 잡으며 현지에 맞는 정서와 여건을 가미함으로써 미국인의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끌고 있다.
언어와 배경이 낯설지 않아서 드라마 내용에 빠질 수 있어서인지 여성뿐 아니라 남성 시청자와 넓은 연령대를 흡수한다.
물론 그 안에 삶과 죽음이라는 명제가 깔렸고 생명을 지키려 일분일초를 다투는 간절한 투쟁이 긴장의 끈을 조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 굿 닥터’는 합격점을 받고, 풀 시즌 제작이 확정되었다.
한국적인 따뜻한 감성과 정이 흐르는 드라마가 미국 메이저 방송에 많이 방송되면 좋겠다.
손자 때문에 기울였던 관심은 접어두고 한인 배우가 나오지 않지만, 자막의 코리안 드라마(Korean Drama)가 기본 틀이라는 내용에 자부심을 느끼며 방영 시간을 기다린다.
만나는 사람에게 ‘더 굿 닥터’를 보라며 입 선전을 하느라 바쁘다.
원작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보면서 두 드라마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드가 한국에서 인기인 것처럼 미국에는 ‘코드 Korean Drama’의 바람이 불었으면 한다.
이현숙
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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