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안긴 봄
며칠 전 차를 몰고 가다 꽃가게의 진열장 안에 노란 개나리꽃이
큰 항아리에 탐스럽게 꽂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돌려 주차장에 세우고,
주머니를 뒤져 돈을 추려 보았습니다.
손안에서 바스락거리며 이미 예정되어 있던 사용처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봄맞이’를 하고픈 여심은 제 마음을 계속 충동질을 했습니다.
“괜찮아. 봄을 품으려는데 어느 정도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니?”
스스로 위안을 하며 보무도 당당히 꽃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주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자석에 이끌리듯,
눈 안 가득 차오르는 노랑의 무리로 향했습니다.
차마 손을 뻗어 만질 수 없는 봄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느껴졌죠.
미국 땅에서 고향의 봄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온몸에 가는 소름이 끼쳤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헝겊으로 만든 가짜 꽃이었습니다.
무언가 쿵 소리를 내며 내 발등으로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은 더 큰 무게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봄의 전령사. 개나리꽃…
3월이면 꽃샘바람의 새침함에 목을 움츠리고, 따사한 햇살로 찾아들며,
봄을 기다리던 마음에 흐트러지게 피어오른 노란 꽃은,
인내심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곤 했었습니다.
쾌적한 온도의 환경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문명의 이기 속에 살면서,
그 편리함에 젖어 혹독한 겨울의 추위 뒤에 찾아드는 봄의 환희가
얼마나 많은 깨우침을 주는지, 삶의 진리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 무안해 망설이다 안개꽃 한 다발을 샀습니다.
대신 노란 포장지에 싸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섭섭함을 달래려구요…
겹겹이 하늘거리는 노랑 포장지에 둘러싸인 안개꽃은 오랜만에
내 마음속의 여자를 울렁거리게 했습니다.
비록 내가 원했던 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답니다.
삶에 찌들어 움츠러든 마음에, 그날 그날의 무의미함에 떠밀려 가는 세월 속에
접어 두었던 봄의 향기를 맡아보렵니다.
따스함에 아지랑이 하늘하늘 피어오르듯,
골짜기 깊은 옹달샘의 살얼음 녹듯,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생명체들처럼 활짝 기지개를 켜듯,
생동하는 봄의 정기를 흠뻑 빨아들이고 싶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내 품에 들어 온 봄.
너무나 소중해 꼬옥 안아봅니다.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