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과 힙합바지
누구에게나 몸과 마음이 한껏 자라던 시절이 있다. 부모들이 입혀준 삶의 기성복 안에서 발산되지 못한 자아 때문에 반항하던 때이기도 했다. 비록 함량 미달이지만 스스로는 성숙했다고 믿었기에 인정받고 싶은 것이 자식들의 마음이었다. 그 세대를 거치며 자라왔지만 ‘그래도’라는 사회적 통념의 틀에 자식들이 맞추며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이 또한 부모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생긴 미묘한 감정의 대립이 세대차라 표현되며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에 자연히 부딪히게 된다.
세월이 지나 나 자신이 부모가 되고 보니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자식 키우는 일이 수학 공식이나 교과서처럼 일률적일 수 없을뿐더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요즘 아이들은 이해가 안 되니 원… 우리 때는 어디 꿈이나 꿀 일이니….”
올망졸망 칠 남매를 키우며 하시던 엄마의 넋두리를 그대로 되뇌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말도 대물림이 되는가 보다.
십 대인 아들 둘을 키우는데 가끔 돌출된 행동을 하지만 그래도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꼭 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다른 낌새가 느껴졌다. 초반에 기를 잘 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손아귀에 다시 잡아넣으려 조금 강하게 반응을 보였다. 그런대로 따라와 주리라는 기대와 달리 가만히 있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삐죽삐죽 빠져나가려 했다. 감정의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어릴 때는 새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도 엄마가 사다 주거나 고른 옷을 군말 없이 입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불평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자기들끼리 가서 산다고 돈만 달라고 한다. 며칠 전 큰아이가 모아둔 용돈으로 바지를 샀다. 힙합 스타일의 검은색 진바지인데 바지통이 넓고 깊어 바닥을 쓸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량기 있는 아이라고 단정을 짓던 나였는데 내 아들이 바로 그런 것을 입겠단다. 그것까지도 십 보 양보하려 했는데, 기장이 길다며 단을 안으로 접어 넣고 스테이플로 군데군데 꾹꾹 박아 버렸다. 내 눈에도 거슬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쁜 아이로, 그렇고 그런 부류로 인식을 할 것으로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세탁소에 가져가 고쳐 입자고 제안하니 수선비로 5불은 줘야하기에 그냥 입겠다며 능청을 부렸다. 바지 값보다 고치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엄마는 용납이 안 된다고 우기며 세탁소에 갔다.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아들의 기가 꺾일 것 같아서였다.
그냥 내놓기 멋쩍어 선수를 치며 한마디 했다.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다 그렇다우. 유행이라나 뭐라나. 이러는 것도 한때라 생각하구려.”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는 세탁소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돌아서다가 그분들도 전에 우리를 보면서 똑같은 말씀을 하였겠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여중생 때로 기억된다. 둘째 언니의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집에 방문하던 날이었다. 부엌에 진동하는 기름 냄새만큼 집안에 기대감이 가득 찼었다. 온다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장발 머리에 검은 안경의 청년이 현관문을 밀고 들어섰다. 어른들의 당혹스러운 시선과 우리들의 감탄 어린 눈길이 동시에 그의 몸으로 쏟아졌다.
큰길가에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경찰이 있어서 골목길로 돌아오느라 늦었다는 변명을 길쭉한 정종병과 함께 내밀었다. 장발과 통기타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대명사였다. 정치 경제적으로 과도기였던 때에 현실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표출하는 한 방편이었다.
“요즘 애들이란 도대체 쯧쯧….”
엄마는 저녁상을 차리는 내내 같은 말씀을 반복하며 혀를 차셨다.
부모님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섰던 형부가 지난 여름 여행 차 LA에 왔었다. 십 년이 넘는 공백 기간 동안 서로가 많이 변해 같이 늙어 가는 듯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개방적이고 애정표현이 대담해진 요즘 젊은이들로 화살이 돌아갔다.
“멀건 대낮에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니… 민망해서. 어디다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니까….”
우리 땐 상상도 못 했던 방종과 혼란스러움을 당연하다는 듯 누리는 그들을 보면 당황하고 기가 막힌다고 했다. 세월이 정수리 부분을 스쳐 지나가 옆 머리카락을 빌려 살짝 덮은 모습에서 그 옛날 멋진 장발의 흔적은 지워진 지 오래다.
자라나는 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에 튕기듯 앞으로 나가는 것 같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는 자신이 겪어왔던 감정을 시간 위에 내려놓고 후퇴해 가고 있다. 답답하고 고루하던 의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자식들에게 같은 단속과 간섭을 하는 내 모습에서 지난날의 엄마를 만나게 되니 말이다.
사춘기 시절 한 번쯤 또래의 유행에 휩쓸려 보는 것도 그들 나름의 특권일 것이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도 그 과정을 거쳐 어느 틈엔가 제 위치를 지키며 사회의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풍습과 도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우리 자식들은 더 많은 혼란을 겪어야 할 것이다. 정서적이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중문화권의 틈새에서 곱절의 어려움을 이겨 나가야 하기에 우리의 틀에 맞추려 강요하지 말고 인정해 주어야 하리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기다리고 바라봐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다짐하지만 순간적인 감정이 먼저 나를 지배할 때가 많다. 세탁소로 돌아가 바지를 도로 찾아올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그래도’라는 내 적정선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들도 크면 나와 비슷한 위치가 되어 고민할 때가 있으리라. 그때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