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을 접는 마음

 

어릴 적 즐기던 색종이 접기는 한국의 정통적인 유희다. 놀잇감이 많지 않던 시대에 장난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교육적으로도 손과 눈의 협응력을 발달시키기에 적합했었다. 종이배를 접어 시냇물에 띄우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실어 보냈다.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에 날리며 높아져 가는 꿈을 키웠고, 총과 칼이 되어 전쟁놀이를 한판 벌이기도 했다. 접어서 여러 가지 조형을 만드는 재미가 있지만, 틀려도 풀어서 다시 해볼 수 있고 언제든지 원형으로 환원하는 신축성에 그 묘미가 있다.

 

내가 종이접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7년 전쯤이었다. 막내 시누이 아들이 십만 명 중 하나꼴로 걸린다는 불치병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불행에 모두 어찌할 줄 모르고 넋이 나갔다. 시누이 남편은 의사이면서도 자식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좌절했고, 시누이는 면역성이 약한 아이를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간호했다. 시누이 부부는 눈앞에서 자식이 겪는 고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아픔을 삭이며, 등을 돌려 울음을 삼켰으리라.

 

돌이 지나 한참 재롱을 부리며 저지레를 할 나이인데 항암 치료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차마 눈을 맞출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팠다. 독한 약에 취해 늘어져 있을 때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 차라리 안심되는 것은 그 칭얼거림이 살아있다는 확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듯 긴장하며 불안해하는 속에서 조카의 두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삼실처럼 뒤엉킨 만 가지의 감정이, 명치끝을 태우는 착잡함을 담고 있기에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민하였다. 그러다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떠오르며, 믿고 싶은 마음에 매달려 보기로 했다. 얕은 한마디의 말이나 금방 흥미를 잃게 될 장난감보다는, 내 마음 깊숙이 담겨있는 사랑과 엮어낼 수 없는 위로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좋은 한 방편이라 생각됐다.

 

예쁜 색의 종이를 모아 정성껏 접어 나갔다. 한 마리가 만들어지는 동안 그 접는 손길마다 놓치지 않고 온 마음을 실으며, 쌓이는 학들에게 한 가지씩 임무를 부여해 주었다. 통증을 낚아채 먼 곳에 버리고 희망을 한 움큼 물어오기를, 슬픔을 담고 날아가 기쁨을 한 아름 안고 와 주기를, 곱게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평온을 지켜 주고, 가족들이 겪는 절망과 시름 등 감정의 철썩임을 잠잠하게 가라앉혀 주기를 기도했다.

보름에 걸쳐 완성되었기에 조심스레 시누이에게 전해주니 뜻밖의 선물에 고마워했다. 그 종이학이 마력이나 신통력을 발휘해 조카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나하나 접는 과정에서 정성이 쌓여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온 가족의 애간장을 녹이더니 해가 거듭될수록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눈에 뜨이게 건강해졌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실감 나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고, 머리도 똑똑해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들의 추천으로 전문 의학지에 그 아이의 치료 과정과 현재의 상태가 올려졌다.

 

가끔 시누이에게 농담 삼아 내가 접어 보낸 종이학 때문이라며 한바탕 웃고 말지만 누구보다도 어린 나이에 병마와 싸워 이겨냈고, 앞으로도 꾸준한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 어렵고 불편함 속에서도 명랑하게 자라주는 조카가 대견스럽다. 굽이굽이 찾아 들었던 힘든 고비를 강인한 정신력과 신앙에 의지해 결국 자식에게 건강을 찾아 준 시누이 부부 또한 존경스럽다.

 

이젠, 옛이야기 하듯 가볍게 나눌 수 있는 여유로움에 너무나 감사한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그 느낌이 손끝에 남아 있는 것은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만족감과 한 생명이 삶의 고리를 연결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어 준 것 같은 기쁨 때문일 것이다. 요즘도 가끔 예쁜 종이를 보면, 종이학을 자연스레 접게 되는 것은 마음속에 바라는 꿈과 희망을 학의 날개 위에 얻고 싶어서일 것이다.

 

                                                2007년 첫수필집 <사랑으로 채우는 항아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