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세일 전쟁’ 중인 12월

“매일 정신없이 밀려드는 세일 광고에싸다고 사고 누군가를 따라 또 사고 정신차리면 은행잔고 바닥이 보인다”

2017.12.14

이현숙
재미수필가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검은 금요일)는 대대적인 쇼핑의 시작을 알린다. 
11월 마지막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로, 미국인의 연중행사가 된 지 오래다. 
사고 싶은 물건의 품목을 미리 작성하고, 날짜가 가까워지면 무엇을 어디서 얼마에 판매한다는 정보를 눈여겨본다. 
매장을 돌며 가격을 알아보고 눈도장을 찍어 두기도 한다.
선착순 몇 명에게 거저 준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하기에 며칠 전부터 상점 앞에 텐트를 치거나 담요 등을 준비해 캠핑 나온 것처럼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새벽 5시에 상점문을 열자마자 밀물처럼 밀려들어 카트에 물건을 경쟁하듯 담는 모습과 물건을 놓고 심한 몸싸움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다는 TV 뉴스는 낯설지 않다.
50~80%의 파격 세일 제품을 차지하려 극성을 부리는 소비자들의 열성적 구매욕은 양손 가득 넘치게 들은 물건들이 말해준다. 

그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1924년에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이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한 후, 다음날부터 빅 세일을 한 것이 유력하다. 
이 날은 미국 연간 소비의 3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블랙(Black)은 적자(Red ink)가 아닌 흑자(Black ink)를 본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나눌 선물을 준비하게 된다.
이 시기에 판매자는 해를 넘기며 재고를 관리하는데 비용을 들이느니 싸게 팔아버리자는 생각과 지출이 많은 연말에 조금이라도 절약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상호 이익관계가 맞물렸다.
이런 윈윈작전이 세일 기간으로 확실히 자리 매김을 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이니 25년 전쯤이다. 
미국에 사니 그들처럼 블랙 프라이데이의 줄 서기를 해야겠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장난감 전문점인 토이즈 알 아스(Toys “R” Us)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아동용 자전거를 사러 갔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건물 벽을 따라 담요를 두르고 간이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준비해온 간식을 먹거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우리 뒤로 점점 불어나는 사람으로 위안을 삼으며, 한두 시간은 참았는데 12시가 넘으니 외투 속으로 찬바람이 스며들고, 다리가 얼얼하게 마비되었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점점 짜증이 나서 준비 없이 나간 것을 탓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 다시 갔지만 주차장이 꽉 차서 포기하고 며칠 뒤에 정가로 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밤새 줄 서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10년 전, 고등학생이던 조카 제시는 선착순 3명에게 주어지는 특권으로 700달러 정가인 노트북 컴퓨터를 100달러에 구입하는 행운을 누렸다. 
가족이 함께하는 추수감사절 저녁 만찬을 거절하고, 전자 상점 앞에서 목요일 아침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린 결과다. 
친구에게 400달러에 되팔아 300달러의 순이익을 챙겼기에 지금까지도 블랙 프라이데이가 되면 가족들의 대화에 첫 번째로 떠오르는 히어로이다. 

요즘에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세일인 ‘사이버 먼데이’로 이어지며 12월 내내 쇼핑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존은 ‘카운트다운 투 블랙프라이데이(Countdown to Black Friday)’ 페이지를 오픈해 매일 파격적인 가격에 상품을 선보였고, 소비자들이 분당 11만 달러어치의 쇼핑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밤을 새우며 줄을 서거나 다른 쇼핑객들과 몸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물건이 품절되어 빈손으로 돌아서거나 주차장을 빙빙 돌며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또한 컴퓨터에 익숙한 요즘 생활상을 보여 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내년 1월 중순에 결혼하는 사촌에게 줄 선물로 고민했는데 조카 지미는 55인치 TV를 온라인으로 절반 가격에 샀으니 다섯 가족이 100달러씩 추렴을 하자고 해서 걱정을 덜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온라인 쇼핑이 대폭 늘었지만, 아직 상점 앞에 밤새 줄 서기는 여전히 길다.
매일 신문과 TV 또는 이메일로 세일 광고가 밀려들어 온다.
싸다는 이유로 필요 없는 물건을 구입하게 되고, 옆에서 누군가가 구입을 하면 충동구매를 하게 되니 문제다. 
70% 세일이라는 광고를 보고 감탄하는 나에게 남편은 사지 않으면 100%를 절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제품이 정가에 판매됐고, 재고를 털기 위해 제한된 수의 제품들에만 세일이 적용됐는데 요즘은 거품 가격을 책정한 후 세일용 미끼 상품을 내 놓는다는 평을 듣는다.
또 인터넷 상으로 주문 후, 돈은 빠져나갔는데 물건은 배달되지 않는 사이버 사기를 당하거나 개인정보가 누출되는 부작용이 일고 있다. 

연말에 친지와 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선물이 필요하니 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여기저기 뒤져본다. 
세일이라는 글자에 현혹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지지만, 컴퓨터 화면에 가득 차오르는 물건을 눈은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간다. 
12월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일 거품 안에 둥둥 떠 지내다 보니 은행 잔고는 바닥을 보인다.
이현숙
재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