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 최금숙 - 제16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한낮의 태양이 열기를 통째로 쏟아붓던 날, 지상은 거대한 가마솥처럼 끓어올랐다. 바람 한 점 없는 논둑 끝머리, 비린 물 내음이 진동하는 진창가에 시골 아낙의 수줍은 볼처럼 여뀌꽃이 단아하게 피어 있었다. 뙤약볕에 데이고 장대비에 할퀴어도 끝내 뿌리를 놓지 않는 꽃. 그것은 진흙 속에서도 제 빛깔을 지켜내는 생명의 불꽃이자, 끈질긴 생의 의지가 빚어낸 붉은 눈동자였다.
밭머리, 허리가 지면과 한 몸이 된 듯한 여인이 고구마밭을 다독이고 있다. 호미를 쥔 손마디에는 메마른 대지에서 기어이 생명을 길어 올리려는 절박함이 옹이처럼 박혀 있다. 감꽃이 질 무렵 식구들의 끼니를 가늠하며 쉼 없이 흙을 일구는 뒷모습은, 마치 세상을 등에 업고 고행을 자처하는 구도자의 형상이다. 등에 흐른 땀이 채 식기도 전에 다시 붉은 땀이 배어 나오고, 살림은 제자리인데 땀띠는 영토를 넓히듯 여인의 몸을 잠식해 들어간다. 허리를 비틀 때마다 살갗 아래 갇혀 있던 고통이 물집으로 끓어올랐다. 그것은 가여운 한 생애가 여름의 한복판에서 피워내는 아리도록 눈물겨운 화인火印이었다.
엄마는 삶이 비릿할수록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고통의 이음새마다 웃음이라는 투명한 실로 바느질을 했다. 그것은 차마 쏟아내지 못한 곡비哭婢의 눈물을 되삼키는 거룩한 역설이었고, 생의 옹색함을 자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고결한 비애였다. 그 미소는 가난한 집안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희망의 등불이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성소聖所였다.
사춘기 시절, 나는 그 미소 뒤의 침묵을 오해했다. 왜 엄마는 그 고단한 멍에를 홀로 짊어져야만 하는지, 왜 아버지께 소리쳐 항변하지 않는지, 딸은 그 고요한 인내가 답답했다. 그 침묵이 때로는 비굴한 굴복으로, 때로는 무기력한 체념으로 보여 모질게 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폭풍우를 온몸으로 잠재우는 엄마만의 방식이었음을, 그 침묵이 사실은 가장 치열한 항쟁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언어를 삼켰기에 그토록 깊은 침묵의 바다를 가졌을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던 철학자의 잠언을 엄마는 제 몸으로 먼저 써 내려가고 있었다. 말을 내뱉는 순간 공들여 쌓은 삶의 둑이 와르르 무너질까 봐, 자식의 앞길에 누설될까 봐 차마 뱉지 못한 말들. 고난의 틈바구니에서 마모된 자아를 서랍 속에 넣어두고 미소만을 꺼내 놓았던 묵언의 세월. 그 침묵의 심해에는 가족을 향한 지독하고도 숭고한 사랑이 산소처럼 흐르고 있었다.
미련한 딸은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자신의 생을 사는 대신 우리를 위한 제물로 스스로를 바쳤음을. 나는 엄마의 그때 나이를 훌쩍 지나고서야 비로소 보았다. 한 여인의 가슴 속에 가시밭길을 헤치며 새겨진 삶의 나이테와, 거친 폭풍우에 짓무른 생채기들을. 그것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시리고 암담한 옹이였다.
그 시절 여인들에게 삶은 형벌이자 숙명이었다. 전쟁과 가난, 가부장제의 완고한 굴레 속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침묵의 골고다를 올랐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 겉으로는 평화로운 시절이 되었으나,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국가의 연대기조차 그들의 이름 없는 눈물을 누락시켰다.
아궁이를 열어젖힌 듯한 여름 한낮, 파도 소리를 길잡이 삼아 양푼을 이고 밭으로 향했다. 열무김치와 된장에 풋고추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밭둑 너머 굽은 등에 가 닿아 있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흙바닥에 자취를 남기는 여인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좁은 어깨와 활처럼 휜 허리가 애처로워 발걸음을 재촉했다. 열두 살 소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은, 그 보잘것없는 한 끼로 엄마의 등을 잠시라도 펴게 해주는 것이었다.
“엄마!” 내 부름에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억지로 마디마디를 펴며 일어섰다. “우리 딸 왔구나.” 그 순간, 엄마의 등 뒤로 늠름히 서 있는 해송海松과 푸른 바다가 겹쳐졌다. 붉은 황토 이랑 위에 서 있는 엄마는 그대로 대지의 일부였다.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서 땀 냄새와 곰삭은 열무김치 냄새가 뒤섞인 밥을 나누어 먹었다. 엄마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얕은 숨을 내뱉었다.
“오메, 징하게 뜨겁다 잉. 등짝에 쌘한 물 좀 끼얹어주면 좋컸구먼.”
나는 부리나케 옹달샘으로 달려가 두 손 가득 물을 길었다. 투명하게 흔들리는 샘물을 엄마의 그을린 등에 살며시 흘려보냈다. 그 찰나, 나는 보았다. 등골을 타고 겨드랑이까지 번진 갖가지 색깔의 땀띠들이 향기 없는 꽃밭을 이루고 있는 것을. 그것은 몽글몽글 피어난 분홍 여뀌꽃 같기도 했고, 검붉게 익어 터진 오디 같기도 했다. 겹겹이 피고 진 그 열꽃들이 엄마의 등 전면에 성화聖畵처럼 그려져 있었다.
숨이 멎었다. 그것은 단순한 피부의 질환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인고의 결정체가 살갗을 뚫고 터져 나온 생의 비명이자, 신이 여인에게 내린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훈장이었다. "시원하다"며 모처럼 목소리를 틔우는 엄마의 등을 나는 떨리는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차가운 물줄기는 뜨거운 엄마의 등에서 순식간에 달궈져 미지근해졌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뜨겁고도 아픈 화원花園 위에 물을 붓고 또 부었다.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면서도 새벽이면 다시 호미를 쥐던 엄마. 백일홍이 백 일 동안 피고 지듯, 엄마 등의 땀띠도 여름 내내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하며 붉은 지도를 그려나갔다. 여인은 삶의 무게를 미소로 감추었으나, 몸은 정직했다. 땀띠는 숨겨진 진실처럼 피어올라‘살아야 한다, 버텨야 한다’고 온몸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그 작은 물주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삭혀낸 모성의 누룩 꽃이었고, 어두운 생을 비추기 위해 제 몸을 태운 등대의 불빛이었다.
세월의 강을 건너온 어머니는 이제 아흔을 훌쩍 넘기셨다. 굽은 등에는 여전히 꽃이 피어 있다. 이제는 붉은 열꽃 대신 세월이 묵힌 검은 문양이 숭고한 흑화黑花가 되어 내려앉았다. 육 남매를 건사하며 제 몸에 새겼던 그 화려하고도 슬픈 무늬들은, 이제 우리 삶의 길목을 밝히는 '화등花燈'이 되었다. 엄마의 등에 핀 꽃은 땀의 결실이자, 사랑의 극점極點이었다.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붉게 피어났던 그 '등꽃'은, 이제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옮겨 심겨져 내가 흔들릴 때마다 묵직한 향기로 나를 붙들어 준다. 인생의 시린 겨울이 닥쳐올 때마다 나는 엄마의 뜨거웠던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 등에 가득했던 붉은 꽃들이 내 삶의 남은 길을 비추는 불씨가 되어, 다시금 뜨거운 생의 항해를 이어가게 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