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등의 방정식/현경미

 

꿈결인가. 등이 따뜻하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정신을 가다듬자 내 등에 맞닿은 그의 등이 느껴진다. 침대 위아래에서 잠이 들었건만 등과 등 사이 바람 한 톨 비집고 들 틈 없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인가 서로 다른 높이에서도, 등을 돌리고도 편안하게 각자의 잠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등을 돌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러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치 우리만의 세상이 끝장나기라도 하는 듯 애틋하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둘만이 존재하는 듯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던 신혼의 단꿈을 꾸던 때였다. 서로의 앞만 바라보느라 등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등이 있어도 등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조금씩 거리가 느껴졌다고 할까. 등과 등 사이 거리가 마치 그와 나, 마음과 마음의 거리라도 되는 양 서운함이 밀려들고 불안이 끼어들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꿔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의 근원이었을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능한 한 빨리 해답을 도출해야 한다는 성급함이 우리를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무모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해내려고 덤볐으니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진리는 굳이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져만 갔다. 이걸 해도 저걸 해도 딱 맞아떨어지기보다는 번번이 우리는 어긋나기 일쑤였다.

키 높이가 달라도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저 서로의 눈높이에 맞춰주기만을 고집하는 나날이었다.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주기는커녕 서로에게서 등을 떠밀어내는 날이 더 많아져 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등을 돌렸다. 더러는 서로 보이지 않는 곳을 탐하기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등이 보일세라 아예 문을 잠그고 마음을 꺼버린 채 잠이 들었다.

말 한마디에 등골이 오싹해지는가 하면 행동 하나에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서로의 말과 행동에 지나치리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렇게 그와 나의 등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좀 더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와 나는 등을 굽힐 생각은 하지 않고 언제나 뻣뻣하게 서서 먼저 다가와 굽신거려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좀 더 부드러운 내가 되어주기를, 나는 한없이 너그러운 그가 되어주기를 서로 바라고 바랐다.

우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애꿎은 등만 못살게 굴었다. 등을 돌렸다, 뻣뻣해졌다, 밀치기를 반복했다. 더 나은 방향이 있다는 것도 접점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한 치 양보도 없는 시간을 보내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등이 휘었다. 툭, 하고 언제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팽팽한 고무줄 같았다. 끊어지는 순간, 되돌아 돌진해온 줄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마저도 잊은 채 각자의 자존심만을 위해 버티고 버텼다.

달라도 너무 다른 그와 나. 시간이 더해져 갈수록, 하나에서 열까지, 생각도 생각의 방식도 다 달랐다.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는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달라서 부딪칠 때마다 서로 맞다, 틀리다 우길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등과 나의 등 사이에는 정비례도 반비례도 아닌 그래프가 생겼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모양이 아닐 수 없었다. 급기야 내리꽂혀 버둥거릴 때면 어처구니없다가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며칠 전 둘레길에서였다. 다리도 등도 둥글게 휘어진 노부부를 만났다. 손과 손을 꼭 잡은 채 서로 나란히 서서 걷고 있었다. 더뎌 보였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등과 등이 나란히 서서, 서로 의지하며, 한 곳을 향해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저 힘은 무엇일까. 저들에겐 있는데 우리에게 없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등도 다리도 둥글어지는 동안 각자에게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기에 가능했을까. 꼿꼿하던 것들이 둥글어지자면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어떤 해답이 있을 것만 같았기에 물음에 물음을 더하며 노부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등이 둥글어질 만큼도 아니고, 펄펄 뛰어오를 만큼 힘찬 나이는 더더욱 아닌 우리다. 그렇다 할지라도 간혹 등이 뻐근하고 통증이 일기도 한다. 이만큼이라도 욱신욱신 살아내고 보니 누구의 등이라도 안쓰럽다. 공치기에서 힘을 빼는 것에만 걸리는 시간이 십 년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어지간히 힘이 빠졌을 법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팽팽하기만 하던 것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는 것 같다. 절반쯤은 포기요. 나머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걸 터득한 것일 테다.

어느 사이엔가 달라진 풍경이다. 예전과는 달리 등의 높낮이가 달라도, 등을 돌려도, 아예 등이 보이지 않아도 불안할 것도 서운할 일도 아닌 요즘이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온갖 것들이 녹아내려 등과 등 사이를 메우는 듯 어떤 얄궂은 믿음이 다져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둘 사이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증명하기엔 난해하기만 한 방정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만 같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그와 나 사이 등의 방정식. 모든 부부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천수만의 부부에게는 수천수만의 등의 방정식이 존재하겠기에 딱 꼬집어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 해답이 있을 터. 누구라도 명쾌한 해법 하나쯤 도출해주었으면 좋겠다.

함수 그래프를 떠올려 본다. 도저히 마주할 수 없다는 듯 각자 앞만 보고 내달리는 엑스축과 와이축, 등을 돌려 서로를 향해 다시 왔던 길을 조율해 가다보면 그들이 만들어낸 사면체에 원점이라는 접점이 있다. 이 순간만큼은 엑스축 와이축 어느 한 쪽도 자기만을 고집하지 않기에 한 치 기울어짐도 없이 화평해 보인다. 누구나 꿈꿀 수는 있지만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아닌 듯, 고난도 문제처럼 다가온다.

누운 채 등을 돌린다. 곯아떨어져 있는 그가, 그의 등이 낯설고도 애처롭다. 잠결인 척 등을 쓰다듬는다. 그를 안는다. 잠 속에서나마 힘을 뺀 우리는 비로소 접점에 다다르게 되려나. 그를 향해 등을 돌려 마주하는 일이 마치 지구를 돌아오기라도 한 듯 아득하게 느껴지는 이 새벽, 우리는 접점 어느 언저리쯤 와 있는 것일까. 순해진 남편의 등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서로에게 스며든 온기가 방을 채운다.

 

-당선소감

'외로움 터널 끝 글쓰기 즐거움 다시 찾아와'

자꾸만 웃음이 난다. 지난날 다른 장르에서 당선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유독 기쁨이 컸다. 등단하고서 오랜 시간이 걸려 첫 동시집을 출간한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이라 그런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가 좋았다. 글 쓰는 동안은 나무도, 풀도, 무심히 지나가는 실바람까지도 함께 어울려 친구가 되었다.

이런 나에게 글쓰기를 멈춰야만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창작의 즐거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단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만, 글을 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런 회의(懷疑)의 시간이 십 년 하고도 몇 해가 더 넘어갔다. 정말 한 톨 미련도 없이 글쓰기를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그런데 희한했다.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글쓰기의 즐거움이 다시 내게로 찾아온 것이다. 세상에 홀로 서 있는 듯 외로움의 긴 터널을 갓 빠져나왔을 때였나 보다. 즐거운 글쓰기를 다시 꿈꿀 수 있겠구나, 여기게끔 해주신 분이 ‘문장’ 발행인 장호병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수필의 오묘하고도 드넓은 세상을 알게 된 건 곽흥렬 선생님의 수필 세계를 접하면서였다.

되돌아보니 고마운 분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창작 공부 시간에 늘 격려와 채찍을 아끼지 않는 문우들, 사랑하는 가족들, 특히나 가까이서 마음 써주는 동생 경주, 손이 많이 가는 내 곁에 있어준 지인들, 선생님들 모두 모두 고맙고 고맙다.

한창 날갯짓하려는 두 딸의 꿈을 응원하며, 등의 방정식을 함께 풀어가야 할 남편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당선의 기쁨을 안겨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현경미 씨 △1970년생 △대구 거주 △중학교 교육복지사

-심사평

'유려한 문장 솜씨·독특한 비유법 돋보여'

심사위원의 손에 들어온 응모작은 모두 319편이었다. 살아오면서 체험한 것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로 형상화시킨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만 아는 난해한 글, 전문용어를 남발한 글, 추상적인 표현의 글은 읽기가 거북했다. 누군가를 비방하는 내용, 은근히 자신을 자랑하는 불편한 글도 눈에 들어왔다. 사람에겐 인격이 있듯이 문장에도 문격이 있다. 자신과 가족의 자랑보다는 차라리 실수담을 쓰는 글에 독자들은 더 친근감을 느낀다. 그래도 예리한 관찰력,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아름다운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글도 보여 반가웠다.

심사위원들이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選)한 작품은 ‘등의 방정식’이다.

수필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 누구나 겪는 이야기는 식상하여 독자들이 외면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수필 ‘등의 방정식’은 요즘 현대인들이 고뇌하는 문제를 제시해 놓고는 시간을 두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묘미가 있다. 기실 결혼 초년엔 서로 마주 보기 바빠 상대의 등이 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다 차츰 설렘과 떨림은 물론 이해 양보 배려심까지 까마득히 잊게도 된다.

오랫동안 남편과 침묵하며 등을 돌리고 살던 글쓴이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답을 터득한다. 생각해 보면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한 문제임에도 짐짓 애써 모른 체했는지도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 등을 보이지 않고 마주 보는 것’ ‘서로의 등을 떠밀어내기보다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 늦긴 해도 남편과의 등 돌리기는 이제 끝이 난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작품 ‘등의 방정식’은 전면에 흐르는 유려한 문장 솜씨와 독특한 비유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독자의 뇌리에 사고할 수 있는 여유와 가슴 깊이 스미는 여운을 남기는 수작(秀作)이다.

수필 ‘부지깽이’, ‘큰 걸음 작은 생각’, ‘단추 혹은 빛’도 심사위원의 관심을 끈 작품이었다. 수상자에게는 축하드리고, 최종심에 오른 세 분은 정진하여 다음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강현순·허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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