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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 ―피천득(1910∼2007)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수필가일 뿐이랴. 수필집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데, 피천득은 선구적으로 딸 바보 아빠였으며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여기 ‘꽃씨와 도둑’은 시인 피천득의 재능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오늘의 소득은 수필가 피천득이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이 아니다. 수필에서 만난 비밀을 시에서도, 이렇게 다른 듯 같게 읽게 된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자.

피천득은 수필가로 유명하다. 그의 수필집 제목은 ‘인연’인데, 이 책은 수필계의 고전이자 스테디셀러로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많이들 읽었을까. 피천득의 수필집에는 가난하지만 유복할 수 있는 비밀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이란 것이 대단히 거창하지도 않다. 요약하자면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하는 자세가, 피천득이 강조하는 삶의 비밀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 참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피천득의 수필집은 계속 읽힐 것이다.

자, 시에는 우선 ‘마당’이 있는 집이 있다. 마당에는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다. ‘마당’과 ‘꽃’은 고즈넉한 분위기, 마루에 앉아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을 암시해준다. 이제 눈을 돌려 방 안을 보자. 방 안에는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만’ 있다. 책이 있는 방과 ‘책들만’ 있는 방은 몹시 다르다. ‘책들만’ 있다는 말은, 이 집의 주인이 책만 읽으며 살아왔다는 점을 암시한다. 집의 주인은 시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집과 주인은 책과 동행하는 행복한 고독을 알고 있다. 그는 다시 꽃을 바라본다. 곧 씨앗을 받을 계절이 올 것이다. 그때 다시 와서 꽃씨를 받겠다고 다짐한다. 아주 단순한 구조이지만, 이 시는 마당과 책이 있는 삶을 배경에 깔고 있다. 더없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여기 돈 냄새 따위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이런 책과 꽃의 세계는 우리와 매우 멀다. 먼 것을 시가 왜 모를까. 아주 멀기에 ‘가깝고 싶다’고 시가 말한다. 더불어, 시를 읽으며 우리의 마음도 ‘가깝고 싶다’고 말한다.


나민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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