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집 / 문미숙 - 2026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길 건너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다. 평소에는 무심했었는데 번듯한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생각들이 복잡하다. 이십여 년 동안 베란다에 쌓인 짐들도 심란하다. 창밖 풍경을 밀어 올린 마천루 같은 새 아파트를 올려다보다가 베란다에 눈길이 머문다. 천장 구석에 풍장인 듯 버석한 거미 한 마리가 구석에서 대롱거린다. 거미의 몸피가 오래전 염을 했던 고모 같기도 하다. 바스러질 듯 형체만 남은 거미를 손바닥에 올려 바라본다. 제문을 소지하듯 창밖 바람에 실려 보낸다.

고모네 집은 뒷산이 병풍처럼 두른 곳이다. 기와가 올려진 작고 오래된 집은 내가 태어난 곳과 지척이라서 내 어릴 적 추억은 고모 집 울타리 안에 더 많이 쌓여 있다. 저물녘이면 산자락이 내려와 길을 만드는 풍경이 좋았다. 그 풍경을 따라 사위 붉어지면 적막이 손님처럼 찾아오곤 했다. 베란다에 머문 시선을 거두고 지금은 빈집으로 사는 고모네 집으로 향한다.

주인 없는 빈집은 치매를 살았던 고모처럼 기울어져 있다. 독채 옆에 창고가 전부였던 집은 고모가 살면서 하나씩 덧대어졌다. 뒤란으로 슬레이트를 올린 창고가 들어서고 그 옆에는 별채를 지어 아궁이를 놓아 자식들의 방을 들였다. 정지 옆에도 감추고 싶은 살림살이를 넣을 수 있는 헛간을 거미집처럼 덧댔다.

고모부가 일찍 돌아가시고 세 아들 모두 타지로 보내 홀로 남은 고모는 세간들과 함께 늙어갔다. 늘 웃는 얼굴이었지만 구멍 난 거미줄처럼 어딘가 모르게 허허로워 보였다. 소식도 없이 객지를 떠돌다 죽은 막내아들의 유골을 선산에 묻을 때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모는 그해 겨울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리곤 그 후유증으로 치매를 앓았다. 어쩌면 고모는 유골이 되어 돌아온 막내아들 때문에 스스로 치매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솔들을 건사하느라 뭔가를 자꾸 덧대야만 했던 고모의 시간은 막내아들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고샅길을 돌아 고모 집 앞에 선다. 대문을 지키고 있던 나무가 주인을 잃어서인지 앙상하다. 사람의 손길을 잃은 마루에는 먼지가 뿌옇다. 마루까지 길게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에 기댄 고모의 의수가 졸음인 듯 기울어져 있다. 자식들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했던 고모는 농기계에 한쪽 팔을 빼앗기고 말았다. 의수를 하고서도 늙은이가 뽀얀 처녀 손을 선물로 받았다며 웃어넘기셨다.

오래 닫혀있던 정지문을 연다. 돌쩌귀 소리가 미끄러진다. 정지바닥 한쪽에는 생전 고모의 종아리처럼 비쩍 마른 장작이 삭아 간다.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고여 고모의 속을 썩이던 아궁이의 검은 물자국이 세월의 무상함으로 다가온다. 까맣게 그을린 정지에 온통 거미줄이다. 죽은 듯 매달려 있는 집거미의 다리 하나가 허공을 잘라낸 듯 없다. 어디에서 잃었을까. 거미와 고모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정지문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든다. 고모의 헛웃음이 거미줄에 걸려 흔들린다.

정지문 밖 뒤란 감나무 사이로 시절 인연인 듯 개밥바라기별 환해진다. 산 그림자를 따라 고모 집을 나선다. 고모의 의수가 노을빛에 생기가 돈다.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것 같다. 고모가 남긴 것은 빈집의 의수가 아니라 의수를 하고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삶의 줄을 치는 거미였다.

거미는 용도에 따라 집을 짓는 실, 먹이 저장하는 실, 여기저기 이동하는 실을 뽑아낸다는데 고모도 거미처럼 가족을 위해 이런저런 삶의 실을 뽑아냈지 싶다. 때로는 그 삶의 실이 바람에 날리고 끊겨도 다시 짓고 지었을 고모의 거미집, 그곳에는 의수가 외롭게 산다.

의수를 빈집에 두고 오는 길, 고층아파트 속에 오래된 내 보금자리가 보인다. 나는 거미집 같은 저 낡은 집에서 어떤 거미줄을 치며 살아왔을까. 생의 거미줄을 뽑아내 횅한 고모의 가슴이 한 줄기 바람처럼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수상소감]

 

진눈깨비가 유리창에 닿을락 말락 바람에 실려 하늘로 자꾸 올라갑니다. 갈길 모르는 나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추워지면 눈이 되고 포근하면 비가 되겠지요. 그 사이에 있는 것도 괜찮다 싶을 무렵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세상은 춥지만 하얀 눈처럼 포근하라는 당부로 들렸습니다.

오랜 사랑이었습니다. 글쓰기와 독서만큼 나를 매료시킨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세상에 소개하는 것은 늘 부족했습니다. 안개 속을 걷다가 돌아서면 다시 그 길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길은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먼 이국에서 전해 들은 당선 소식은 모든 걸 녹였습니다. 

문득 ‘거저 받은 것 거저 주라’는 스승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세상에 줄 수 있는 것, 그것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제자를 돌보신 공덕에 작은 답이 된 듯하여 기쁩니다. 문학으로 만난 동인들과 나의 가족 영곤, 은강, 은교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내 문학의 자양분이신 부모님.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신 문영필, 전순덕 여사께도 이름 불러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심사평]

언어를 매개로 하는 문학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감성과 사유를 구조화한다. 수필 또한 경험 사실을 토대로 언어의 자유로운 상상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삶은(수필) 허구를 뛰어넘는 위대한 과정이지만 문학이 되기 위해서 날것 그대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경험 현실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 기표 사유의 수용이라든가 수사적 입장 또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전북도민일보》 응모작 다수는 이러한 방향에서 비켜서 있었다. 소소한 일상을 일기처럼 낱낱 기록한 응모자도 있었고, 주관사의 요구조건에 벗어난 응모자도 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작품도 엿보였다. 심사자는 최종심에 오른 3명의 작품 중 2명의 작품 〈스위치〉와 〈거미의 집〉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두 편 모두 고백적 진술에서 벗어나 문학으로서의 수필 특성을 잘 살리고 있었으며 비유와 이미지 등이 적절히 구사됨으로써 의미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스위치〉는 남편이 운영하는 떡집 기계에 손가락이 끼는 사건에 따른 정황 묘사와 심리 묘사를 담담하게 유기적으로 펼치는 상당한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수미상관 구조 또한 주제를 의미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으나 현재, 과거, 현재로 이어지는 맥락의 단조로움이 아쉬웠다.

〈거미의 집〉은 청상과부가 된 고모의 지난한 삶을 그려낸다. 응모작에 등장하는 “고모”는 결국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상징화되면서 ‘어머니’라는 이름이 삶을 지탱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때 한쪽 팔을 잃은 고모의 “의수”는 희망과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이겨내는 도구로 작동하면서 가족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서사가 내재된 상관물로 기능한다. 가족 서사의 특성상 자칫 감정의 과잉에 빠질 수 있음에도 적절히 절제한 것은 물론 맥락의 진행에 따른 비유적 이미지와 입체적 구성 등이 무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더하여, 기울어진 거미집은 고모의 집으로 치환 묘사되며, “마천루”처럼 들어선 새 아파트와 현재 거주하는 화자의 낡은 집의 대비를 통해 화자의 집 역시 거미집으로 점층 이미지화되면서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이며 그 공간은 어떤 의미로 우리 곁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거미집=고모의 집=화자의 낡은 집’이 되는 구조이다. 이렇게 인간의 집과 거미의 집을 물리적 동일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안과 밖,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이라는 상대적 사유를 엇걸어놓는다.

신춘문예 특성상 한 편만을 선해야 하는 아쉬움을 감내하며, 심사자는 고통과 슬픔을 절제된 감정으로 형상화하고 사유를 덧입혀 입체성을 더한 〈거미의 집〉을 당선작으로 선했다. 이 작품은 타 신문사 신춘문예 수필부문 최종심 두 편 중 한 편에 선정된 만큼 이미 검증된 작품으로 보이지만 단어(동의어)의 선택에 대한 부분은 더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낙선자께는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당선자에게는 가능성을 보고 선한 만큼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정진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 배귀선(문학박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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