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여자 린다 / 이명란 - 제 26회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
옆집과 우리 집은 낮은 담장 하나로 이웃하고 있다.
무르팍 높이 만큼이나 될까 이 낮은 담장이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이사짐을 풀고 난 후 어느 날 코뿔소 같은 옆집 여자를 보았다. 어찌나 첫인상이 무섭고 안 좋던지 당장 담장을 높여야겠다 했건만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낮은 담장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갈색머리 여자와 그 세상을 살아 내야만 하는 검은 머리 여자가 나란히 살고 있다.
20여년전 마주했던 그녀, 거칠고 퉁명스러운 이웃집 그 여자를 대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친절한 이웃을 고대했건만 그 둔탁한 몸에 신경질적이고 괴팍하기까지 한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번은 우편물이 그 집 우체통으로 잘못 배달되었는지 그 낮은 담장 너머에서 휙 하고 던져 버리는 그녀를 보았다. 어찌해야 할지 갑갑한 날도 많았다. 그러나 전해주는 방법이 형편이 없었던 것뿐이지 결과적으로 그 편지를 임자에게 잘 전해주긴 한 것이었다. 중요한 우편물이었는데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잊고 살던 진실 한가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그 흐름 뒤에는 분명 변화되어 달라진 결과물이 함께 온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피부가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이웃집 여자 린다와 커피 한잔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그녀의 집에서 말이다. 그때도 그녀는 그 버르장머리 없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넘어오란 손짓을 했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무슨 일인가 싶어 함부로 반가워할 수도 없었다. 간단하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물론 눈치껏 하는 어림짐작의 대화였지만 `Are you OK`를 몇 번이나 물어보는 걱정 어린 눈빛이 너무도 생소했다. 혹시나 전날밤 속상한 일이 있어 식탁 앞에 앉아 한없이 울고 있던 나를 본 것은 아닌지 싶었다. 관심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의 부엌 창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우리는 같은 언어로 그러나 제 각각의 의미로 서로를 알아 갔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는 바디 랭귀지가 최상의 소통이었다. 그리고 결국 두꺼운 갑옷에 무서운 뿔을 달고 있는 코뿔소를 닮은 그녀도 사실은 말도 안 되게 유순한 초식동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는 중천에 떠 있건만 오늘도 여름이라 하기에는 서늘하다. 마당 귀퉁이에 일궈 놓은 한 줌 텃밭에서 귀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깻잎을 보러 나갔다. 담장 너머 이웃집 여자 린다와 눈이 마주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또 그 버르장머리 없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넘어오란 손짓을 한다. 아마도 새로 시작한 퍼즐을 끝냈나 보다.
린다는 퍼즐의 여왕이다. 그 두툼한 손가락으로 작은 퍼즐 조각을 잘도 집어 맞춘다. 얼마 전부터 1000피스짜리 퍼즐을 시작한다 하더니 거의 끝내고 있었다. 그 의기양양한 눈빛에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굿 잡`을 쏴 주었다. 햇살 찬란한 에메랄드 빛 바다와 그 바다를 끼고 있는 산등성이에는 모형 같은 형형색색의 집들이 끼워 맞춘 듯이 서있는 이탈리아 포지타노(POSITANO)의 풍경이었다. 아름다웠다. 어쩌면 린다가 한순간이라도 머물고 싶었던 곳은 아닐까 마음이 아련하다.
가장자리부터 메꿔 나가는 것이 분명 쉬울 텐데 린다는 그녀의 무지한 뚝심처럼 가운데 그림 조각부터 끼웠다 빼기를 반복하며 인상을 쓰곤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느 명상가의 하루처럼 한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퍼즐을 완성해 낸다.
그녀 나이 열일곱, 철부지 사랑놀음에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되고 동시에 맞은 배신과 곧 이은 아이의 죽음 그리고 끝내 맞은 파경. 두려움에 눈물조차 여유가 없었다. 그 끝도 없는 나락의 바닥에서 그녀는 또 다른 사내의 품에 의지하였지만 그곳에는 폭력과 보라빛 멍자국만 선명한 더욱 지독한 절망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의 저주가 분명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의 호흡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이 깊고 습한, 가슴속에 뚫린 동굴에서만 허락된 신음이었다.
단추가 잘못 꿰인 탓 이었을까 계속된 불행과 상처 증오와 후회 그리고 그로 인한 총체적인 결핍이 그녀의 삶을 파산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린다는 세상의 문을 닫은 채 살게 되었다.
충동적이었으며 무지했던 그러므로 일그러진 삶의 파편들, 그 망각되지 못한 상처들의 굴레에 갇혀 살아야 했던 이웃집 여자 린다. 제대로 천천히 어른이 되었더라면 그녀의 가슴에는 어쩌면 옹달샘이,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깊고 습한 동굴의 어둠을 갑옷으로 입고 살지는 않았을 것을, 연민의 감정이 물결친다.
그리고 그녀의 담장 너머에 살고 있는 내게도 새로운 이곳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영어라는 언어가 참 단순치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특히나 `Idom`이라 하는 관용어구(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새로운 뜻을 생성하는 어구)의 사용이 많은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귀가 열리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언어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생활의 모든 면을 책으로 배워온 나에게 이민 생활이라는 것은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영어공부와 같았다.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치다 보니 하루하루 생채기를 달고 산다. 가끔씩은 한국 지하철에서 보았던 방글라데시인들이 생각난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명문대를 나온 사람도 아닌 그저 언어가 서투르고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일 뿐이다.
그러한 날 중의 하루였다. 아들 녀석의 중학교(Intermediate) 졸업식과 딸아이의 초등학교(Primary) 졸업식이 한 날 한시에 있다고 한다. 난감한 일이었다. 이민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기도 했지만 부탁할 사람 하나 마땅치 않은 이곳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이것이 바로 린다의 이웃집에 사는 검은 머리 그녀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들 녀석을 학교 입구에 내려주고`바삐 오겠노라` 한 마디 남기고 딸아이의 학교 향했다. 눈물 한 모금이 찔끔했다. 평탄하게 살아왔던 나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담장을 넘듯 건너온 지금의 이 시간과 상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머리가 파래진다.
초등학교의 졸업식 이었음에도 더디 끝났다. 서둘러 아들 녀석의 학교로 와보니 졸업식은 끝나고 여기저기 사진에 찍히는 기쁨들만 가득했다. 가슴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들을 찾기에 마음이 바빠졌다. 그때 낯선 모습들이 나를 보고 손짓을 한다. 저쪽 편에서 원피스를 입은 뚱땡이 린다가, 코뿔소 린다가 내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전 나의 넋두리를 마음으로 듣고 있었나 보다. 택시를 불러 타고 왔단다. 부모한테조차 외면당했던 린다, 그녀의 어머니는 살던 집을 린다에게 미안함으로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거의 20여 년을 정부주택에서 생활 보호대상자로만 살아왔던 린다가 낮은 담장이 있는 그 집의 주인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차고에는 차가 한 대도 없다. 자동차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곳에서 그녀에게 차는 필요치 않았다. 그런 린다가 택시를 타고 그녀의 동굴에서 나온 것이다.
처음 이사를 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병원을 갈 일이 생겼었다. 급한 마음에 이웃집 린다에게 도움을 청하였었지만 짜증 나는 말투와 마지못해 준 Yello Book (전화번호부책) 한 권이 전부였다. 그러했던 그녀가 오늘 우리 아이를 위해 택시를 타고 원피스를 입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지난 일 년간의 그 시간은 분명 무심히 지나가지는 않은 듯하다.
아침나절의 속상함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한 기쁨과 감동이었다. 아들 녀석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컸으나 두 아이들의 졸업식을 잘 마쳤으니 당연히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분명 거기에는 더 깊은 환희도 있었다.
어느 날 검은 머리의 동양 여자가 이사를 왔는데 창문 너머의 그 여자는 매일 저녁마다 울고 있었다고, 어디에도 쓸모없는 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도움을 청하기도 한 그 동양여자가 처음에는 귀찮고 이상하였었다고 하지만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고 훗날 린다는 말했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연민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 또한 그녀에게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나 보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동양인 여자가 혼자 아이 둘을 열심히 키우는 모습이 창문 너머 그녀에게는 결핍의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이런 나의 결핍이 오히려 보라빛 멍으로 타버린 그 여자, 린다의 무겁고도 공허한 결핍을 채우는 첫걸음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이러니컬한 생각이 드는 저녁이다.
한국에서라면 근처에도 안 갔을 그런 여자가 이제는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어버렸는데 무슨 상관이랴, 각자의 결핍이 서로를 채워 살게 한 것 그것이면 충분한 것을.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갈색머리 여자와 이곳 뉴질랜드에서 험난했던 세상살이를 훈장으로 여기는 검은 머리 여자가 도란도란 함께 늙어가고 있다. 그 나지막한 담장을 사이에 두고.
저녁에 부는 바람이 좋다. 데크에 나와 보니 옆집 창문 너머로 고개 숙인 린다가 보인다. 그녀는 오늘도 퍼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