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따른 잡음과 오해

누가 한강(漢江)에 돌을 던지는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있다. / 사진=오마이뉴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있다. / 사진=오마이뉴스

소년처럼 호기심 많고 늘 진리에 목마른 수필가 김호성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면서 카톡으로 언론인 손상대 씨가 쓴 글을 보내줬다. 이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한강은 역사를 비틀어 노벨상을 받았다.
② 스웨덴 한림원이 한국 역사에 무지해서 노벨상을 주었다.
③ 문학적인 가치성도 중요하지만 역사의 팩트에 접근하는 게 더 중요하다.
④ 앞으로 5.18이나 4.3의 실체적 진실을 써보기 바란다.

손 씨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왜곡된 사관을 가진 작가에게 노벨상을 준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손 씨의 주장에 대한 필자의 반론은 이렇다.

가) 문학은 역사를 비트는 것이다.

사진과 미술(회화)의 차이점은, 사진이 대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면 그림은 대상을 비틀어서 새롭게 창조한다. 이런 표현 기법을 데포르마시옹이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건 순수문학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이다. 픽션(문학)과 논픽션(역사)을 혼동해선 안 된다.

나) 스웨덴 한림원의 관심사항은 한강의 문학이지 한국의 역사가 아니다.

다) 실체적 진실 규명은 언론이나 사법의 영역이지 문학의 몫이 아니다.

라) 손 씨는 문학과 역사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차이점을 간명하게 설명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인류 최초의 문예비평서라고 일컬어지는 ‘시학’에서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운문을 쓰느냐, 산문을 쓰느냐가 아니라, 역사가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시인은 일어날 법 한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다루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다루기 때문에 시는 역사보다 더 중요하고 철학적이다”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문학은 사실·비사실을 가리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허구의 세계를 창출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문학적 허구가 역사적 사실보다 더 리얼하고 역사의 이면, 곧 사실 속의 진실을 발견케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의 유럽 정벌기를 그 어떤 전쟁사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음미하게 한다. 필자는 세계사 책이 아닌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프랑스대혁명의 감동과 전율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게 문학의 위대한 힘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실과 허구를 혼동해선 안 된다. 역사와 문학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문학 작품을 두고 역사를 왜곡했느니, 폄훼했느니 하는 논란은 이 같은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2400년 전에 이미 개념 정리가 끝난 문제를 가지고 21세기인들이 새삼 거론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결론을 말하면, 하나의 문학 작품을 평가하는 준거로, 작가의 역사관을 상정해서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고 무익하다. 궁극적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는 독자가 내리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 때, 사람들의 목을 무참히 자르던 단두대, 기요틴도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들면 몸서리치게 아름답다.

기요틴이 역사라면 황혼의 아름다움은 문학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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