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고르며

 

                                                                                        

수첩을 새로 바꿀 때가 되었다.

아무것으로도 채우지 못한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한 해를 보냈더라도 새해에는 한번 더 헛바람이라도 넣어 보려는 시도를 해 보기로 한다.

 

해가 바뀌면 수첩에는 멀어 진 사람들의 이름이 지워지고 새로운 전화번호와 이름으로 채워지는데 이제는 의료계 종사자들의 연락처가 대부분이다. 내과, 안과, 치과 등, 마치 인턴쉽 하는 인턴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전문의들을 찾는다. 의술이 세분화되며 같은 전공이라도 여러 전문 분야가 나뉘어 있어서 미국에 사는 노인들은 바쁜 병원 순례의 여정을 사는 날 동안 멈출 수가 없다. 

 

새해가 되면 수첩 말고도 바꿔야 하는 것이 또 있다. 그날그날의 일을 간단히 메모할 수 있는 플래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사용했었다는 프랭클린 플래너,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가 즐겨 썼다는 몰스킨 플래너, 가죽 커버에 고무줄로 허리를 묶어 편리하고 보기 좋은 시아크도 자주 산다. 그런 값비싼 수첩에 걸맞는 일과가 이제 내게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플래너를 산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스케줄을 훑어 보니 ‘어제와 같은 스케줄’ 등의 한 줄짜리 기록이 즐비하다. 그래도 나는 해가 바뀌면 문방구가 있는 대형 마트를 돌며 가장 마음에 드는 플래너를 고르며 그곳에서 반나절쯤 시간을 보낸다. 그곳 특유의 분위기와 종이 냄새를 즐기며 마침 새 플래너를 반드시 구입해야 할 때가 되었으니 어쩌랴 하는 포스를 취한다.

 

가끔 문방구 코너에서 진지하게 플래너를 고르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새해에 대한 꿈은 어떤 것일까 헤아려 본다. 새해에는 다시 한번 새바람을 마음에 가득 채워보려는 것이 젊음이리라. 젊음은 이뤄야 할 것이 많고 계획도 많으니 그만큼의 좌절과 시행착오도 많을 것이다. 이제는 올 한 해를 건강히 무사히 넘기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인 나이가 되었어도 나는 해마다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서 진지하게 플래너를 고른다. 

 

평생 쓰던 일기를 접고 플래너를 사용하게 된 또 하나의 동기는 길게 일기를 써 내려갈 일상이 사라지고 탁상 달력 하나면 족한 백수의 스케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플래너 한 칸만 채우면 되는 하루로 나의 일상을 미리 조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플래너 한 칸이 하루의 일과를 기록하는데 여백이 부족했던 일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 때문이다. 언제 누구를 만나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들과의 일을 반드시 기억해야 될 인적자산 정도는 아직 내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제 내가 뭐 했지? 그저께 어디 갔었지 물어볼 사람도 마땅찮은 지금은 더욱 그렇다. 나보다 건망증이 심한 남편이 크게 도움이 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누굴 만났지, 뭘 먹었지 하며 함께 치열하게 고민했던 나날도 있었다.

 

자서전을 쓸 일도 없는데 하루하루의 일을 잊어버려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나 자신 나의 일상들을 까맣게 기억 못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늙었는데 어쩌랴 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런 유혹도 몰려오지만 아직은 매사를 늙은 것을 핑계 삼고 나이 들었다는 것을 내 무의식에 순간순간 입력하며 지낼 필요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해가 바뀌면 수첩에서 몇몇 이름만 지우고 새 번호들을 끼워 넣었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에는 서둘러 내 곁을 떠난 이름이 많아져서 아예 수첩을 개비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시 떠난 것이 아니고 영원히 떠났기에 더는 그들의 연락처를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가까이 더 없는 인연을 이어 왔어도 한번 끊긴 그들과의 소통의 통로는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엄중한 법칙 앞에 한없이 무기력하다. 

 

다 쓴 수첩도 없애지 않고 보관한다. 어느 날 문득 그 옛날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