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타운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


한인타운은 지켜져야 한다. 이 명제를 참이게 하려면 타당한 이유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인타운은 이민 선배들의 오랜 노력과 분투 끝에 얻어낸, 당시로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인타운 안에 노숙자 임시 보호소가 들어선다 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인타운 북쪽 구역에 자리잡고 있던 방글라데시 출신 주민들이 그들의 세를 확장하기 위해 한인타운 절반을 나눠 달라는 청원을 하여 LA 시에 받아들여졌다. 한인 커뮤니티에 비상이 걸렸다. 이제 투표로 가부를 결정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한편에서 투표를 독려하고 한편에서는 노숙자 임시보호소 설치를 반대하느라 한인들이 시위를 펼치고 있다. 분노한 한인 뿐 아니라 한인타운에 애정을 가진 타민족 주민들도 발 벗고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작금의 한인타운 사태를 보도한 한국언론의 시각에 마음이 좋지 않아 한마디 한다. 한국의 언론은 이 문제를 님비현상으로 지적했다. 그들의 편견과 무지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님비란 영어로 Not in my back yard라고 한다. 내 앞마당에 혐오시설 등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이기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님비를 정의했으니 한인타운 사태로 돌아가 보자. 한인타운 안에 노숙자 시설을 두지 말라는 주장이므로 표면적으로는 님비로 보인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내용은 달라진다. 이 시설은 노숙인의 쉴 곳을 마련하는, 노숙인을 배려한 정책이 아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노숙인들에게 텐트를 나눠주고 한곳에 모아두려는 것이다. 즉 행정 편의를 위한 임시시설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항구적 주거시설도 아닌 이 일에 막대한 예산 손실도 발생한다. 이 예산은 주민의 세금이다. 화장실 등의 시설이 준비되는 것도 아니다. 이곳의 청결과 미화가 망가질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더구나 노숙자 임시쉘터 예정지인 윌셔와 7가 사이, 버몬트 애비뉴 공영주차장 주변은 학교와 비즈니스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곳이 시 소유 부지라는게 강행 이유지만, 이렇듯 비즈니스 중심가가 아니어도 대안으로 삼을만한 부지는 여러 곳에 있다. 이대로 간다면 주변의 한인 비즈니스는 문을 닫게 될 것이고 한인타운은 서서히 사라져갈 것이다. ABC 방송국 기자가 한인 시위대 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우리는 노숙자를 환영한다. 그러나 가세티의 일을 추진하는 방식은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한다. 그는 한인 커뮤니티를 무시하고 있다.” 그의 인터뷰는 쉘터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다. 가세티 LA 시장과 허브 웨슨 LA 시의장은 이 문제에 관해 한인커뮤니티에 어떤 의견도 묻지 않았다. 이는 님비가 아니다. 우리의 권리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항의다.

이 와중에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에서 한인타운의 절반을 나눠 갖자고 나섰다.

이들은 자신들 커뮤니티 확장을 위한 물밑 작업을 10년 전부터 해왔다고 한다. 우리끼리 할 얘기지만 이 문제에서는 10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람은 분노에 익숙하다. 쉽게 잊는 것에도 매우 익숙한 민족이다. 이 싸움이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시간을 이길 장사(將士)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10년을 두고 그들이 목적을 향해 나가는 동안 아무도 오늘의 사태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동안 시 의회에 친한파 의원이 사라졌고, 친이슬람 친 방글라데시 의원들이 자리를 늘렸다. 누군가 눈치챘었다 해도 당장 자신에게 어떤 이해도 없어보였기 때문에 눈감은 채 지났던 것이다.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급히 뜨거워지고 급히 식는 민족이다.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은 근시안적이다. 10년 앞, 100년 앞을 내다보는 정책은 찾을 수 없다.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가 자신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서 10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는 사실과 대조된다. 미국 사람 사이에서 한인은 아시아의 유태인으로 불린다.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고 돈에 관한 한 악착같다는 뜻이다. 돈에 대한 애착만큼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도 앞장서야만 한다. 민주 국가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은 투표다. 그들이 10년 전부터 진행해 온 일을 우리는 기습적으로 당했다. 이제 오직 투표 절차를 남겨 두었을 뿐이다. 아니 투표라는 중대한 절차가 아직 남아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우려와 분노를 표출하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방식은 투표 이외엔 없다. 냄비근성과 위기불감증, 무사 안일주의로 투표에 실패한다면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한인타운은 어느 날 사라져 버릴 것이다.

오는 19일 방글라데시 커뮤니티 분리 안에 투표해 주기 바란다. 정답은 NO 이다. <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