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삶과 수필 외연의 확장

이성숙 산문집 ≪고인 물도 일렁인다≫

(소소담담, 2017)

조정이

whwjddl0773@hanmail.net





1. 들어가며


  수필은 작가의 경험이 재료가 되는 글쓰기이다. 그래서 일상의 소소함이나 가족 이야기가 소재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일상성에 머물다 보니 수필이 독자로부터 소외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고 잘 읽히지 않는 책이 되어버렸다. 소재의 빈약으로 피로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숙의 산문집 ≪고인 물도 일렁인다≫를 읽어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필과는 다르다. ‘수필집’이라 하지 않고 ‘산문집’이라 이름 지었다. 이는 수필이 서정성에 갇히지 않고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가의 글쓰기가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이성숙은 개인의 경험은 물론 사회문제로 확장된 글쓰기가 주를 이룬다. 산문집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이 ≪크리스천 헤럴드≫의 ‘티타임’에 실렸던 칼럼이라고 하니 작가의 글쓰기가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에 가깝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작품 전체의 글이 길지 않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가독성이 높아 잘 읽힌다. 그렇다고 해서 글의 무게가 가벼운 것도 아니다.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작가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수필문학계에서는 아직도 ‘서정성’만이 마치 문학인 것처럼 여기고 외연을 확장한 글쓰기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성숙의 작품은 이러한 문학성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소재의 다양성으로 작품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을 지닌다. 첫 번째 산문집인데도 불구하고 글이 고여 있지 않고 바다로 향해 전진하는 힘이 느껴진다. 애써 수필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수필답게 하는 글이다.



2. 기독교적 세계관과 윤리 의식


  작가 이성숙은 50여 해를 살아오면서 자신의 욕구는 반영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기독교 신문에서 편집장을 맡으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작가의 종교는 기독교이다. 작품 곳곳에 성경 이야기, 십자가, 기도 등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성숙을 만나게 된다. 기독교의 바탕은 사랑이다. 이성숙의 삶도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긍정적이다. <행복 호르몬>에서 “행복은 관념이 아니다. 훈련이다.”라고 했다. 이성숙은 행복조차도 누군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부단한 훈련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성숙은 행복할 자세가 되어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자기 주도적이다. 


 나는 이제 나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려 한다. 이 땅의 모든 자녀 또한, 그의 말씀에 힘입어 명품으로 자라기를 간절히 구한다. 사회적 패러다임이 아무리 변해도 말씀은 요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심은 요동하지 않는다>에서


  이성숙은 크리스천으로서 믿음이 깊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삶에 대한 자세가 남다를 수 있다. 기도 속에서 자란 아이가 어긋날 수 없듯이 사랑으로 대하면 누구나 감동할 수밖에 없다. 자녀가 잘 성장하기를 바라며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아이는 물론 이 땅의 모든 자녀가 명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고 타자와의 관계 확장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번개로써 만민을 징벌하시니>에서는 미국의 동성혼 합법화 여부는 하나님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동성혼 합법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한다. 이성숙은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주장을 펼칠 때는 거침이 없다. 번개는 신화 속에서도 두려움의 존재다. 동성혼 합법화는 곧 번개로써 다스려야 할 만큼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한다. 성 소수자에 대한 인정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며 살고자 한다. 이성숙의 의식세계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성숙의 의식에 깔린 사랑은 윤리적인 면을 통해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어미 새의 공격>에서 거실 유리문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부딪히는 일이 생겼다. 작가는 어미 새가 새끼 새를 위해 품어주고 먹이를 주는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어미 새는 해코지 하는 줄 알고 비명 같은 울음을 지르며 공격한다. 작가는 사진을 찍는 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을 깨닫고 서둘러 부엌으로 가 쌀을 찧어 마당에 뿌려 준다. 먹이를 준다는 행위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어미 새의 행동이 우리네 어미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이성숙은 새를 바라보며 어미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주위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은 현대인들에게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야만 살 수 있는 구조이다. 작은 새의 아픔까지 공감하는 부분에서 이성숙의 인간성과 윤리의식을 엿볼 수 있다.



3. 카르페 디엠의 실천


  수필은 고백의 문학이다. 고백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는 일이다. 하지만 이성숙의 작품집에서 고백의 작품은 몇 되지 않는다. 과거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해지려는 작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겠다. 이는 이성숙이 갑상선 암 수술을 하고 힘든 회복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삶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은 것 같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짜증이 도를 넘고 성미는 자꾸 포악해진다. 중학생인 큰애는 철이 좀 든 것인지 나의 황폐해진 심정을 이해하려 드는 것 같지만, 막 초등학생이 된 작은 녀석은 슬금슬금 나를 피해 다닌다. 어느 날엔가 녀석이 큰 애에게 밥 달라 조르는 소릴 들었다...(중략) 감당하며 살아내게 하소서. 수술을 기다리던 그 참담하고 싸늘했던 밤, 나는 바로 이 아이를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하지 않았던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살려 달라고. 그 밖에 무엇을 더 바랄게 있었던가.


-<감당하며 살게 하소서>에서


  큰 병에 걸려 본 사람은 지금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자녀가 어리다면 더욱더 절실하게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기를 소망한다. 수술을 앞두고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이성숙은 암 병동을 빠져나온 후 인생이 한결 풍부해졌다고 한다. 아이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할 수 있는 현실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이젠 긴 회복기를 거쳐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팠던 시간이 이성숙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만이 자신의 가치를 만든다>에서 이성숙은 과거에 집착하는 과거 지향형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한다. 현재를 잘 살아내다 보면 미래는 덤으로 온다고 믿고 있다. 미래는 현재가 모여 이루어진다.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작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주어진 현재를 신명 나게 살기로 한다. 현재만이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알고 주어진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방점을 찍는다. <도전하라고>에서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거다. 열매는 하늘이 주실 것이다”라고 한다. 이성숙의 삶은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를 즐기며 카르페 디엠을 실천하고 있다. 



4. 소재의 다양성과 외연의 확장


  이성숙의 산문집 ≪고인 물도 일렁인다≫에서는 소재의 다양성이 특징이다. 수필 쓰기 대부분이 내 안에 머무르면서 신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성숙의 작품은 사회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미국에 살면서 느꼈던 동성혼 합법화 문제라든지 고국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놓치지 않고 작품에 담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 호칭 문제,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 난민 문제, 광복절에 대한 소회, 장년의 재취업 문제, 미래 산업 문제까지 이성숙의 글쓰기는 여러 영역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이처럼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독서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이성숙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틈틈이 독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녀 교육에도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이성숙의 독서습관이 ≪고인 물도 일렁인다≫는 것에 잘 녹여져 있다. 흔히 수필가들이 소재가 없어서 글을 못 쓴다는 말을 많이 한다. 수필 쓰기가 경험에 기대어 쓰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경험한 것에서만 소재를 찾는다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일상이 어제와 비슷한 경우가 많고 우리 삶이 그렇게 역동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방법밖에 없다.

<난민 문제, 인권인가 주권인가>에서 이성숙은 시리아 난민의 문제가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성숙의 글쓰기 세계는 나에게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문제인 환경문제까지 종횡무진 누빈다. 우리나라에 밀려드는 난민에 대한 태도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핏줄 의식이 강한 탓이라고 꼬집는다. 전쟁으로 인한 난민 문제도 있지만, 지구온난화로 누구나 난민의 처지에 놓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나라마다 난민구제에 대한 방안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희망을 욕보이지 마라>에서는 한국의 행복 전도사 최 씨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2002년 인권과 자유의 상징인 ‘자유의 메달’을 받고 존경받았던 미국의 국민 아버지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환각제를 이용하여 어린 여성 40명을 강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작가 이성숙은 공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공인으로서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욕보이는 행동이라고 쓴소리도 잊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역사 국정교과서가 독재를 미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미국식 교육과 한국식 교육>에서는 책임을 요구하는 미국식 교육과 우리나라 부모가 자식을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점을 이야기한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5. 나오며


  이성숙의 작품은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나에게 머무르지 않고 관계가 밖으로 확장되어 있다. 그래서 소재가 풍성하다. 작가는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생활의 경험과 독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성숙은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고국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작품을 보면 애국심마저 느껴진다. 소재가 다양한 글은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성숙의 산문집은 간결하고 수필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하겠다. 

  그동안 읽었던 수필과는 다른 수필을 만나 읽는 내내 즐거웠다. 나와 내 주변을 맴도는 이야기는 더 이상 독자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소재의 빈곤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성’에 함몰되어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수필 쓰기의 현실에서 이성숙의 ≪고인 물도 일렁인다≫가 귀감이 될 만하다. 이성숙은 오랜 시간 작가를 꿈꾸다가 첫 산문집이 그녀의 꿈을 이루는데 단초가 되었다.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앞으로 첫 산문집이 초석이 되어 더 나은 글로 거듭나길 바란다.

 


*<수필미학> 2017년 여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