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욕보이지 말라

 

 

  삼 년 전, 한국에서 행복전도사라던 최 아무개씨가 자살로 삶을 마무리한 사건이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 그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루프스를 앓고 있었다는 정도다. 이름도 낯선 루프스, 그 고통의 크기를 함부로 가늠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녀의 별명은 행복전도사였다. 환갑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로 긍정의 삶을 외치던 사람이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초록색으로 보라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다니면서 에너지를 발산하던 사람이었다.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말라던 그이의 강연을 나도 몇 차례나 들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88만원 세대’니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의 자조가 회자되던 시기였다. 그런 때여서 인지 희망을 전도하던 그녀의 인기는 고공으로 치솟았다. 그런 그녀가 돌연 동반자살장이라는 어이없는 선택을 했고, 사람들에게는 희망 후유증을 남겼다. 

  최씨는 유서에 자신의 고통을 칠백 가지라고 썼다. 옹졸한 사람이다. 나도 당장 일천 가지 고통을 기록할 수 있다. 예사롭지 않은 병에 걸렸었고,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막내를 남겨 놓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숱한 불면의 밤도 보냈다. 내게 일천 가지 고통이 없었다 할 수 있으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크게 느끼는 법이다. 나의 깨달음은, 일천 가지 고통을 헤아리는 대신 일천 가지 감사를 되새기는 일이 더 쉽더라는 것이다. 

  남을 위한 충고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 충고를 자신에게 안착시키지 못할 경우 그것은 하나의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희망이란, 온갖 굴욕을 참아내며 살아 온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참으로 숭고한 메시지가 아닌가!  

 

  미국의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던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연쇄 강간범으로 LAPD에 고발되었다. 그는 흑인 청소년들의 희망이었고 멘토였으며, 오바마에 앞선 흑인 사회의 우상이었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코스비 가족’이라는 시트콤의 인기로 안방에 들어온 코스비는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던 배우다. 그는 미국 최대 거부 반열에 오른 명사답게 가난한 아프리카 출신 주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사업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2002년에는 인권과 자유의 상징인 ‘자유의 메달(Liberty Medal of Philadelphia)’을 받기도 했다. 자유의 메달은 일개 시(필라델피아)가 수여하는 상이지만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여 제정된 상징성으로 인하여 수상자들의 자부심과 명예는 가히 미국 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아버지 조시 부시 대통령, 워런 버핏, 현직 오바마 대통령 등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 영예의 무게감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이제 그 메달은 위증의 유죄를 안음으로써 더 이상 ‘양심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빌 코스비는 콰루드라는 환각제로 40명이 넘는 어린 여성들을 제압하여 강간을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명사(名士)’가 된 것이다. 미국 시민과 필라델피아 시 정부는 그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회수하여 우롱당한 희망과 실족한 정의를 바로 세우길 바란다.

 

  빈손으로 태어나 애써 살아가는 우리다. 현실에 기죽지 않고 끝내 꼿꼿이 살아내는 일, 그것만이 민초들이 이해하는 희망으로 통하는 길이다. 어설픈 그들, 다시는 희망을 욕보이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