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펜을 들어야할 때다

 

 저벅저벅 장화발 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바삭바삭 낙엽 밟는 소리 같기도 한 낯선 음향이 새벽잠을 깨웠다. 약간은 겁먹은 채로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 밑의 마른 땅이 점점이 젖어가고 있다. 아직 빛이 닿지 않아 어둑한 곳까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동공이 점점 커지니 나무 한 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검초록의 나뭇잎에 비가 듣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우기가 시작된 모양이다. 이곳에 살지 않는 이가 이 기쁨을 알까. 나는 서둘러 잠옷을 여미고 커튼을 젖혔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바깥으로 활짝 밀었다. 후두둑 후두둑 분절되어 들리던 빗소리가 솨아 하는 연속음으로 바뀌어 있다. 일순간 찬 공기가 방안으로 들이 닥친다. 잠깐의 놀라움을 밀어내고 심호흡을 했다. 고즈넉한 기운이 찾아왔다.

캘리포니아의 비는 동남아시아의 스콜처럼 위협적이지 않고 서울의 비처럼 어둡지 않아서 좋다. 일 년 내내 건조한 사막지역을 적시는 비라 곤충이며 땅 속 벌레며 모두 뛰쳐나와 비를 맞는다. 새들도 날개를 적시며 날곤 한다. 좀 크게 내린다 싶은 비에도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우기가 깊어지면 이런 비가 며칠씩 계속될 것이다. 가끔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치면 거리의 신호등이 고장 날 것이고, 출근길이 더뎌지겠지. 사람들은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으며 사거리의 차량들은 무심한 듯, 한 대씩 신호등 고장 난 거리를 지날 것이다. 미국에 와서 가장 크게 놀라웠던 광경이다.

 

 창턱에 몸을 기대고 비를 맞는다. 이층 창틀에서 떨어지는 비가 코끝에서 튄다. 눈을 감아 본다. 동요의 후렴구처럼 간결한 빗소리가 새벽 공기를 안았다. 날로 혼탁한 조국에도 씻김굿 같은 소낙비 한차례 내려주면 좋으련만.

 

 태평양 건너 조국에서 들리는 소식에 연일 마음이 아프다.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태풍의 핵이 되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나본데 이것을 기회로 사회 선동자들이 팔을 걷고 나선 모습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을 비난하고 원색적인 욕설도 공중 앞에서 해댄다. 다 옳다 치자. 대통령이 백 번 잘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판에도 격식이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칭하여 박근혜 씨라고 부르다니,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나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다. 누군가(또는 어떤 일)를 비평하거나 비판할 때 그 행위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지식인의 제1덕목이다. 더욱이 일반인도 아니고 펜의 힘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을 저잣거리 아낙 부르듯 한다면 그의 의도가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그(통칭으로써)가 언급한 박근혜 씨는 우리의 대통령이다. 5년 전에 그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해도, 박근혜 씨는 현재 박근혜 씨가 아니다. 쿠데타를 일으킬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언론과 언론인에게 바란다. 펜의 힘을 지닌 지식인에게 바란다. 풍전등화같은 나라의 앞길을 직시해 주시기를. 민심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어느 기관도 아니다. 언론사다.

 

 나는 스피드 떨어지는 주간신문을 만들고 있지만,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신문을 만든다는 사실로도 자부심을 안고 산다. 일본에서 조사된 것이지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직업 세 가지를 물었는데, 축구감독, 아티스트, 신문사 편집장이었단다. 축구감독은 경기를 이끌어 갈 때 발산되는 카리스마에서 점수를 얻었고, 정신적 자유가 부러움을 사서 아티스트가 뽑혔다. 신문사 편집장은 가장 신뢰할만한 직업으로 점수를 얻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힘을 방증하는 징표다.

 

 지금 양심을 저버린 일부 식자들이 교묘히 자신의 주장을 포장하여 대중선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을 누가 막을 것인가. 양식 있는 언론사와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이 펜을 들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0.28.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