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리고 흥선 대원군 

 

각종 예측이 빗나가며 도널드 존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역대 어느 후보보다 구설수가 심했고 자질이 의심되었던 후보지만 민심은 그에게 기울었다. 애초에 박빙 승부일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트럼프는 경합지역에서의 승리를 싹쓸이하며 초반부터 가뿐히 힐러리를 따돌리고 승리를 예감하게 했다. 선거운동 막판에는 공화당 진영에서 조차 후보 교체론이 있었지만 이단아 트럼프의 행진을 막지 못했다. 이제는 트럼프가 과거의 막말 생활을 청산하고 백악관의 프로토콜에 걸맞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종교인들과 앵그리 화이트(Angry White) 계층의 표가 트럼프 진영으로 몰려갔다고 한다. 보수 종교인 입장에서는 8년간의 민주당 정권 하에서 괴기한 법안들(동성혼 합법, 마리화나 상용 등)이 통과되면서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 사회정체성 혼란 등이 야기되는 것을 보았고, 백인 노동자층은 민주당의 월가와의 유착,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로 인한 노동자 계층의 불안, 힐러리의 공직을 이용한 사유재산 모으기, 이메일 스캔들로 불거진 힐러리의 거짓말 릴레이 등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선거는 진작부터 최선은 없어 보였다.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최악을 피해가자는 자조가 돌았다. 그 결과 제멋대로에 악동인, 정치 무경력자 트럼프를 세웠다.

 

그러나 사생활과 정치를 구별하는 미국인이다. 자연인 트럼프의 사생활은 더 바닥이 없을 만큼 드러났다. 그의 사생활 비록이 추가로 공개된다고 해도 학벌 좋고 잘 생기고 유능하여 기대를 모았던 빌 클린턴이 재임 중 엽기적인 백악관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보다 충격은 덜할지 모른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그가 임기를 마쳐 준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는 날 미국민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낼 것이다. 

문제는 그의 정치공약이다. ‘진보적인, 너무나 진보적인’ 민주당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가 고전적 보수주의자 트럼프를 선택하기는 했어도, 그 선택은 이미 선(善)을 상실한 상태에서의 실존적 선택이었다는 것을 트럼프 당선자는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초강경 이민정책이나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을 표방한 외교정책은 수정되어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나 국수주의로 가는 것은 국제무대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국수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해간다. 

 

트럼프 당선자의 국가주의적 공약은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연상시킨다. 19세기 조선에는 흥선대원군이라는 개혁가가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먼저 백년 이상을 지배해 왔던 실세 안동 김씨를 몰아낸다. 그는 “나는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고(고른 인재등용), 태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기득권 철폐), 숭례문을 3층으로 높이고자(왕권강화) 한다.”며 자신의 정치이상을 실현해 나갔다. 대원군은 집권 초기, 철저히 양반의 기득권을 박탈하며 백성의 엄청난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균형잡기에 실패한 대원군의 이상적인 국가제일주의 정책은 양반과 백성 모두에게 외면받고 수포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미국제일주의와 빈민층 일자리 보장을 강조한다. 듣기에 미국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하다. 국가제일주의를 주창하고 쇄국정책을 편 대원군의 정책도 집권초기에는 꽤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국가 운용은 일반적인 총론으로 되는 게 아니다. 경험 많은 기성 정치세력의 각론도 귀담아 들어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그의 공약들이 포퓰리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으로 미국은 어쩌면 더 부유한 국가가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억지력을 상실한 세계는 테러가 빈발할 것이고 IS같은 불법집단은 세력을 더욱 확장할 것이다. 질서가 무너진 집단에서 혼자만 살아남기는 불가능하다. 선거기간 내내 집중포화의 대상이 된 한국의 예만 보자. 풍전등화 상태에 있는 한반도의 평화를 외면하여 한국이 친중국화한다면 이는 미국에게도 재앙이 된다. 미국은 아시아의 마당을 잃게 될 것이고 더불어 중국의 직접 위협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국을 고려한 현명한 정책이 수립되기 바란다.

 

트럼프의 반이민 공약으로 이민단체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아 난민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삶의 의지를 꺾겠다고 한다. ‘청소년추방유예(DACA)’가 중단될지 모르고 입양인시민권법안(ACA)이 무산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결과는 반이민을 넘어 반인권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부모 따라 이민을 온 청소년들이나 입양인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가 되었을 뿐 선량한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뿐 아니라 상원 하원의석까지 모두 장악했다. 안정된 강한 리더십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프론티어의 나라 미국에는 트럼프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돕는 국민이 있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고 매력이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에는 각 진영에서 공방전을 벌이지만 일단 승패가 결정나면 다시 하나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치유력 좋은 국민성을 가졌다. 국가의 지도력은 국민이 마음을 모으는 데에 있다고 한다. 민심이 떠난 정권이 유지될 수 없듯이, 강력한 대통령을 만드는 것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공력으로 가능한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미국의 저력을 믿는다.  (2016.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