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영광을 돌려 드리나이다
유숙자
하루가 시작되는 순결의 첫 시간,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 있다. 긴 어둠을 거쳐야 참다운 빛에 도달할 수 있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고통과 기쁨을 함께 주셨다.
2006년은 내 생애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해이다. 37년 동안 아프던 허리가 깨끗이 나았다. 삶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경이었다. 삶의 무게가 내 머리 위로 무자비하게 짓누르고 깊은 밤 검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절망하며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내 고통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 감사와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삶을 온통 바꿔 놓은 이 기적. 흐르는 눈물 속에 계속되는 기도, “감사로 영광을 돌려 드리나이다.”
나는 첫아이 출산 직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당시 나의 주치의는 부인과만 취급하여 산과 분만은 다른 병원에서 행해졌다. 6주 만에 주치의를 찾아갔을 때, 체내에 태반이 남아 있다며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 했다. 그 수술은 단지 내 몸에서 불순물을 제거했을 뿐, 아픈 허리와는 상관없었다. 둘째 아기를 낳고 산후 조리를 잘하면 낫는다 하여 서울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J 병원 N 박사의 정기 검진을 받고 출산했으나 바라고 원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하게 고통스러울 때는 나도 모르게 다리를 절었고 꼼짝 못하고 누워 지낼 때도 있었다. 다만 좀 더하고 덜한 차이뿐 통증은 여전했다. 그 탓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몸이 아프니 잠이 오지 않고 잠을 자지 못하니 더욱 고통을 느끼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런 날의 연속은 나를 절망케 했고 심각한 불면증과 우울증세를 보였다.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살 때, 클레멘타인 처칠 병원에서 디스크 권위자에게 정밀검사를 받았다. 담당의사는 수술한다 해도 확률은 50%라 했다. 상태에 비해서 걷는 데 무리가 없으니 수술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1985년 LA로 이주해서 다시 검진받았을 때 의사가 절망적인 말을 했다.
“당신은 어쩌면 누워서 생활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담했다. 설움이 목줄띠까지 차올랐다. 눈을 감는다. 대학생인 두 아들이 떠오른다. 밝게 잘 자라 주었으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밥을 어떻게 짓는지, 라면에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남편은 어쩌나. 80이 넘으신 어머니는-. 멀리 있는 딸의 건강을 위해 늘 기도해 주시고 전화와 편지로 용기 주시는 어머니. 눈물이 줄줄 흐른다. 벼랑 끝에 있는 것 같은 막막함. 중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탈진되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다시 10여 년이 흘렀다. 진통제도 듣지 않는다. MRI가 아니더라도, 일반 X-Ray로도 척추뼈가 내려앉고 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뼈가 움직인다 했다. 수많은 검진을 통한 결과는 점차 더 나빠지고 있는 상태란다. 의사가 통증을 줄여주는 코디숀 주사를 권했다. 첫 번에 3대, 2주 후에 4대를 맞았다. 별로 효과가 없었다
강산이 세 번 이상 변하고 나의 오랜 아픔과 영혼의 외침이 뜨거운 맥박처럼 요동쳤지만, 내 외모에서는 지병이 읽을 수 없다니 감사요 은혜였다. 전신마비로 펜을 입에 물고 시를 쓰는 S 시인은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다”고 고백을 하여 내게 충격과 위로를 주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사야 38 : 17) 이 말씀을 굳게 잡고, 주께서 긍휼 베푸시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한껏 물이 오른 갈맷빛 이파리들이 맑은 하늘 사이에서 보기 좋게 흔들린다. 푸른빛을 잃지 않는 저 청청함을 내 영혼의 빛깔로 삼고 싶다. 아직 밝게 보였으니 나머지 삶도 그런 모습을 잃지 않아야겠다. 설혹 더 큰 고통이 온다고 해도 밝게 흔들림 없이, 늘 푸른 소나무같이 의연하게 살리라. 감사하는 마음에서 감사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튼실한 나무로 뿌리를 깊게 내리리라. 나보다 더 힘든 이들에게 사랑의 전화, 정성이 담겨있는 한 장의 카드를 준비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든 간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2006년 새해. 그해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놓으신 해였다. 항상 내 아픔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하던 P 장로님 내외분께서 신유 은사가 특별하신 C 목사님께 안내 했다. 그 교회는 교인의 60%가 불치병을 앓았다가 나은 성도들이고 병을 고치기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환자가 많았다. 체험 신앙인이 많은 교회였다.
수요일, 기도원에서 내려오신 목사님께서 내게 안수 기도를 해주셨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목사님께서는 분명한 어조로 <하나님께서 낫다고 하십니다.> 하셨다. 3번의 예배에 참석했는데 마지막 금요기도회 때 나는 성령 체험을 했다. 37년 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허리디스크가 씻은 듯 낫는 순간을 맞았다.
세상이 밝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어제의 그 빛깔이 아니고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고 푸르렀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 고통이 사라지니 몸이 가벼워 날아 다닐 것 같다. 아,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애초에 어른으로 태어나 세상을 처음 보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평안하고 좋은 세상이 있었구나 싶었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온 방을 헤매며 울며 드린 기도가 얼마였던가. 나를 위해 금식도 마다치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의 제단을 쌓았던 사랑하는 친구 K 권사, 많은 중보 기도자들의 끊임 없는 기도와 가족의 기도, 나의 간절한 소망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근원적인 목마름을 풀 수 있었던 기쁨. 내 삶에 연둣빛 새싹이 힘차게 돋아난다. 무성한 잎을 달고 꽃을 피우며 튼실한 사랑의 열매를 맺기 간절히 소망한다. 어려움과 고통을 기도로 바꾸어 나갈 때 우리가 지향하고 꿈꿀 수 있는 영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살아 있는 동안, 고통받는 사람의 위로자가 되고, 아픈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자가 되게 하소서. 단절과 상실, 좌절과 소외의식 속에 사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쉬는 않는 자가 되게 하소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오직 감사로 영광을 돌려 드리나이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