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있는

                                                                                         유숙자

얼마 전 영국 BBC 인터넷판은 찰스 스캔론 특파원이 서울에서 보내온 기사로 한국의 성형수술 열풍에 대해 비꼬았다. 기자는 한국의 성형수술이 보편화 되어 있음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표현의 이면에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정신 차리라는 소리도 들어 있어 불쾌하게 생각하기 이전에 자성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야 좋을 줄로 안다. 한마디로 지성은 사라지고 겉치레에 치중하여 그것을 도구 삼아 편안하고 여유 있는 삶을 꿈꾼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국을 방문할 때면 빈부와 관계없이 허례허식에 끼운 같은 사회현상이 피부에 닿았는데 외국 기자의 눈에는 더욱 생소하게 비쳤던 같다.

 

친지는 아들의 신붓감을 서울에서 데리고 왔다. 결혼 손녀를 보았는데 인물 좋은 저의 엄마를 전혀 닮지 않았다. 아기가 돌이 가까웠을 무렵 며느리의 친구가 놀러 왔다가 아기를 보더니 어쩜 너의 엄마 어릴 때를 뽑아 닮았니.’ 웃음을 참으며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친지는 빚어 놓은 것같이 예쁜 며느리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긴 아기를 때마다 행여나 했는데 짐작이 맞아떨어져 쓴웃음이 나오더라 했다.

 

어느 해였나 서울을 방문했을 ,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정문에서 은사님과 만나기로 했다. 마침 그날 비가 내려서 일찍 도착하여 백화점 안쪽에 있었다. 조금 있자니 특이한 광경이 눈이 띄었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거의 모두 버버리 코트에 버버리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버버리 회사에서 판촉 상품전이라도 여는 줄로 생각했다.

 

의문은 사라졌다. 5 식당에서 점심을 하려고 들어서는 순간 눈에 보인 것은 버버리 군상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하는 여자마다 버버리코트를 입고 있었고, 당시 홍수처럼 유행하던 사스 신발을 신고 있었다. 사스는 주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을 위해 발이 편하도록 특별히 고안해서 만든 신발이다. 버버리 코트에 물이 스며드는 사스 신발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유니폼처럼 너도나도 같은 차림으로 나온 것이 신기했다.

 

이곳에서 열린 어느 모임의 송년회 많은 여인이 모피코트를 입고 안으로 들어가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코트 담당 종업원이 모임의 대표격인 분께 물었다.

모두 코트를 맡기지 않고 입고 있지요?’

저분들은 모두 모피코트 디자이너들이라 자신의 작품을 입고 보여 주어야 한답니다.’

재치있는 대답으로 민망스러움을 면했으나 개성문제 외에 과시욕이 덧붙여진 사례이다.

 

우리나라를 다녀온 미국 사업가 분이 서울의 호텔 수준이 가히 세계적이라고 극찬했다. 그분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사업을 하는 분인데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호텔 내부에 한국 고유의 전통을 쉽게 없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고 한다. 한국적인 냄새가 없다는 것이다. 최고의 시설은 좋으나 순수하게 한국식으로 꾸며진 방을 없고 거리를 나와도 한국에만 있는 거리 문화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은 거리 전체가 특색있는 건축물 일색인데 서울은 평범한 세계 속의 도시 같은 인상을 준다고 했다.

 

최근에 다리가 불편하여 4개월가량 집에만 있었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꼼짝 못 하고 앉아 있자니 하루가 무척 길었다. 그때 친구가 시간 죽이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지,’ 하며 한국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다 주었다. 각기 다른 작가들이 편의 드라마를 연속으로 있었는데 주제의 설정과 극의 내용이 천편일률이었다. 현실성이 모자란 무리한 전개가 주를 이루었다. 우리 고유의 정서를 표현한 감동 있는 드라마는 어쩌다 정도이고 흥행 위주의 감칠맛에 연연했다. 뭔가 자극적이고 색다른 소재를 택한다는 것이 기억 상실증 일변도였다.

 

작가는 자신만이 표현할 있는 독특한 영역이 있을 테고 거기서 그의 개성이 드러날 것이다. 어느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 해서 같은 소재의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만드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증나게 뿐이다. 살기 어려운 세상이어서 눈요기라도 풍성하게 해주려는지 재벌가의 이야기가 배경을 이루는 것도 빼놓을 없다.

재벌의 총수는 그리 허약한지. 자녀가 부모와 이견을 보일 때면 의레 쓰러지거나 쓰러지는 시늉을 하여 자녀들을 긴장하게 하고 억지 복종을 강요한다. 십중팔구 고혈압이나 심장병 같은 지병을 앓고 그것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것은 낡은 이야기의 설정이다.

 

세상살이의 힘듦을 술로, 완력으로 풀려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것을 자라나는 2세들에게 영향을 같아 조심스럽다. 어려움에 처하게 고뇌하고 번민하며 지혜롭게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시청자들은 그것이 비록 드라마일지라도 공감하며 힘을 얻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억지 전개가 없는 밝고 건강한 드라마였으면, 가족이 함께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있는 그런 홈드라마라면 안온하고 차분한 우리들의 정서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성이란 얼마나 고고한 것인가. 개성이 없는, 그저 유행에 휩쓸리기만 하는 사회, 그건 정말 매력이 없다. 개성이 없다는 것은 자신을 표현할 거리가 없다는 것일 테고 유행이라고 맹목적으로 따라 답습하는 것은 자존심 결여의 결과일 것이다. 과연 자존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까? 다시 생각해 일이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