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될 수 있는 미래의 꿈

                                                               유숙자

산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전제로 한다.

인생은 끝없는 모험이기에 인간은 언제나 새로움을 잉태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발걸음을 내디딘다. 굽이굽이 도는 인생길이 있어야 사는 맛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의욕도 생기게 된다. 물질적 풍요는 어느 기간 편안하고 만족할지 모르나 차츰 무료해지고 나태해져 마침내 권태를 몰고 오게 한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 콩코드(샌프란시스코 인근)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여기가 천국인가 싶을 정도로 주변이 아름답건만, 안일한 일상의 반복은 삶을 지루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지 않아 자살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거친 물결이 바위를 때려 포말로 부서지는 짜릿한 아픔도 있고 훈풍에 돛단 듯 잔잔한 흐름도 있어야 삶의 묘미가 있겠으나 변화 없이 평온키만 하면 매일 그날이 그날이다. 그들은 자극을 찾아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변태의 생활을 즐기며 삶의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비정상적일수록 오래가지 않는 법, 영혼의 충족과 감사가 없는 생활은 삶의 흥미를 잃게 되고 삶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른다.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서 사는 부유한 사람 중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불로소득을 꿈꾸던 직장인들의 비정함의 한 예를 본다.

작년 가을 3억 1,500만 달러의 수퍼 로또 당첨자들이 직장 동료의 제소로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려야 했다. 오렌지카운티 슈피리어 코트는 가든 그로브의 한 병원에 근무하던 조나단 라크루즈가 7명의 당첨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관련, 추후 재판을 열기로 했다.

그들 동료 8명은 항상 함께 로또를 샀고 당첨되면 상금을 똑같이 나누기로 약조했다. 문제는 조나단이 결근 한 날 샀던 로또가 당첨되었다. 그날 조나단의 몫으로 아무도 돈을 대체하지 않아 구성원에서 빠졌다. 조나단은 본인이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으나 늘 함께 로또를 샀기에 비록 결근했더라도 자신의 몫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7명은 조나단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다정했던 동료 사이에 법정 공방이 벌어지게 되었다. 현재 처한 상태로 본다면 조나단은 권리가 없음이 분명하나 오랫동안 함께 정을 나눈 직장의 동료로 생각하여 성의 있는 분배를 했더라면 이 각박한 세상에 미담 한 가닥 남겼을 것이다.

 

우리 큰아들은 로또를 외면한다. 그의 사무실에서 재미 삼아 매주 로또를 사는데 단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단다. 그 이유는 '불행하게도 로또에 당첨될까 봐’였다. 젊고 의욕적인 나이, 뜻을 품고 모험과 도전을 향해 달려야 하는 시기에 로또에 당첨된다면 자신의 인생은 맥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꿈과 도전과 성취는 사라지고 안일만 남을 터이니 이보다 더 큰 불운이 어디 있겠는가. 수고와 땀을 흘리지 않고 얻은 열매는 감동도 성취의 만족도 느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피력한다. 아들의 생활 철학이 멋지다.

 

근자에 수퍼 로또의 잭팟 당첨금이 6,100만 달러로 올라 또 한 번 도시 전체가 로또 열기로 달아올랐다. 로또를 취급하는 상점마다 행운을 거머쥐려는 사람들로 장사 진을 이루어 길가까지 사람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대낮에 직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에 사로잡혀 모두 거리로 나온 것 같다.

한 지인의 말이 재미있다. 로또를 사면 그 순간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행여 내게 돌아올지 모를 행운을 기대하며 단 며칠 간이라도 가능성을 꿈꿀 수 있기에 행복하다고. 깊숙이 넣어둔 종이 몇 장이 백만장자의 꿈을 가져다줄는지, 휴지인 체로 버려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흥분으로 들뜰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모여드는 미국이다. 이곳에서는 땀 흘려 일한 만큼, 수고한 만큼 보람을 결실로 얻는 곳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정도이고 많은 사람의 삶의 방식이다.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들의 표정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질투의 여신도 함께 오는지 부러움 속에 잘살 것 같은 사람들이 파경을 맞으며 파산에,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는 것을 본다.

 

생활 철학이 없는 사람이라면 갑자기 주어진 거액에 정신 차리지 못하고 허둥댈 것이다. 관리할 능력도 없고 절제와 자제력을 상실한 상태에서의 물질은 삶을 파멸로 이끌 뿐이다. 쉽게 들어 왔으니 쉽게 나간다. 욕심은 정신적인 것에 두어야지 물질적인 것에 두면 항상 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만일 부자가 된다면 가난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 돕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흔히들 말한다. 일단 내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생각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도전 없이 안일하게 주어지는 삶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흐리고 무감각하게 만든다. 무위도식하며 사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 뻔하지 않은가. ‘깨어 기도하라’라는 말씀이 우리를 긴장케 한다.

 

내 생의 과정을 전부 알 수 있다면 그것이 장밋빛 삶이건 고난의 연속이건 살아갈 의욕이 없을 것이다. 현재가 미래를 향해 열려 있기에 어떠한 정황에서도 살 게 되어 있고, 삶의 비전을 가질 수 있다. 여건이 맞지 않아 못하고 있는 그 많은 하고 싶은 일들과 보람을 가져다주는 일들, 소망이 있는 삶, 이런 것들을 찾아 헤쳐가고 그것이 하나하나 이루어질 때 삶의 묘미를 터득하게 되지 않겠는가. 끝없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대지를 향해 꾸준히 달려 나갈 때 귀하게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의식 있는 행동과 절도 있는 삶을 추구할 때 현실이 될 수 있는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2007)